“초사흘 자정에는 초승달을 냄비 삼아 라면을 끓여 먹고, 보름날에는 보름달을 끌어와 당구를 치고 놀았지.”
“자네의 허풍은 여전하구만. 초승달은 초저녁에 잠시 떴다 사라지는데, 한밤중에 무슨 초승달이 있다는 건가?”
“그러니까 내가 초승달이 뜨고 지는 때도 모른다는 거지? 그러고 보니 자네는, 당구공이 최소한 세 개는 있어야 당구를 치는데, 보름달 하나로 당구를 쳤다는 말도 믿지 않겠군.”
“당구공이 몇 개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름달을 당구공으로 쳤다는 것이 허풍의 포인트 아닌가?”
“그렇다면 자정에도 초승달이 있다는 것과 초승달로 라면을 끓였다는 것 중에 어느 것이 허풍의 포인트인가?
“자정에는 초승달이 없으니까 초승달로 라면을 끓였다는 것은 성립할 수 없는 거지. 전제가 무너졌잖아. 그래서 허풍이라는 거고.”
“허허, 아직도 그 허울 좋은 허풍 지식에 갇혀 있단 말인가?있는 것과 없는 것, 겉과 속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철학자라고 하면서 헛소리 하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그 허접한 ‘논리’라는 것에 빠져 있단 말이야. 달 표면에 보이는 거뭇거뭇한 부분이 내가 당구 큐대로 쳐서 초크가 묻은 것이라 해도 자네는 믿지 않겠지? 안타깝네.”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달이 없는 그믐날에는 뭐 했는가?”
“그믐날에는 말이야, 쥐도 새도 모르게 백설공주, 인어공주, 신데렐라, 황진이, 클레오파트라를 불러 파티를 했지. 근데 있잖아, 인어공주가 클레오파트라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더라.”
“인어공주가 레즈비언이었어?”
“뭔 소리야. 인어공주는 남자잖아! 사람들은 인어공주 아랫도리의 진실을 그럴듯하게 가려놓았지만 우리 같은 귀신들은 다 아는 거잖아!”
“나는 처음 듣는 소린데. 그러면 인어공주가 아니라 인어왕자라고 해야 하잖아!”
시끌벅적했던 카페에 갑자기 정적이 흐른다.
“그래,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지. 귀신계에 온 걸 환영하네. 우선 그 거추장스러운 진리의 가면과 진실의 누더기 옷부터 벗어던지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