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동짓날 밤 자정이 되면 소리 없이 나타났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놈, 그놈이 또 나타났다. 워낙 바쁜 척하는 놈이라 그놈의 모습을 제대로 본 사람은 없다. 그래도 나는 어김없이 그놈이 올 것으로 생각하여 모든 불을 끄고 침대에 앉아 그놈이 오기를 기다렸다.
자정이 되었지만 그놈이 왔다는 기척이 없다. 벌써 왔다 가버렸나? 혹시 올해는 건너뛰는 것은 아닌가? 비록 잠깐 동안이라지만 일 년 만에 그놈의 꼬리라도 볼지 모른다는 기대가 어그러진 건 아닐까? 침대에서 일어나 더듬거리며 책상 앞 의자에 앉아 다시 얼마간을 기다렸지만 어둠과 침묵만이 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기대를 접고 촛불을 켰다. 초저녁부터 읽다 만 시집이 두 팔을 벌린 채 책상 위에 엎드려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시집 뒤통수를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때 방 안에 수상한 기운이 흐른다. 촛불이 크게 한 번 흔들렸다. 그놈이 나타난 것이다. 여전히 모습은 볼 수 없다. 그러나 분명 그놈은 내방 어딘가에 있다. 긴장한 탓인지 아니면 그놈이 묻혀온 동짓달 추위 때문인지 콧물이 흐른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었다.
어둠을 여는 것은 촛불이었지만 침묵을 깨는 것은 그놈이었다.
“무엇 때문에 너네 인간들은 별에 이름을 붙이고 뭘 얼마나 안다고 주제넘게 등급을 매기는지, 정말로 입을 삐죽거리지 않을 수 없네. 크다고 일 등급이면 자네 앞에 있는 그 얄팍한 시집은 별 한 개도 받지 못할 것이고 밝다고 일 등급이면 불야성 고시원이 별 일곱 개를 받아야 하는 거지. 참말로 코웃음만 칠 수밖에 없네.”
그놈은 촛농을 타고 내려와 촛농 속에 숨어 내력 없는 말을 저 혼자 주절주절 어린 왕자 호두 까먹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촛농 같은 콧물을 훌쩍거릴 것 까지는 없네. 어둠이 어둠을 낳고 어둠이 분열하여 또 다른 어둠을 만들고 다시 어둠과 어둠이 만나 더 짙은 어둠이 생성되어야 비로소 나의 존재가 드러나는 이유는 어둠이 빛을 다 삼키지 못하고 빛 가닥이 목구멍에 걸려 있다는 것을 온 천하에 보여주려고 하는 거네. 밤이 어둡고 하늘이 까만 것은 별을 보고 등급이나 매기라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네. 목구멍에 걸린 빛 가닥을 토해내는 과정이지. 아직 더 독한 어둠이 필요하다네. 그 촛불부터 꺼주게나.”
그놈이 지껄이는 말속으로 내 온몸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다시 한번 촛불이 크게 움직인다.
“아 참, 깜박 잊고 갈 뻔했는데, 앞으로는 나를 별똥별이라 부르지 않길 바라네. 이왕 이름을 지으려면 좀 더 폼 나는 이름을 지어 줄 수는 없었나? 나는 별이 싼 똥이 아니라 내가 별을 싸놓고 냄새나서 도망쳐 나온 거라네.”
그놈이 사라졌다. 흐르는 콧물이 나를 일으켜준다. 티슈를 뽑아 콧물을 닦고 그놈에게 지어 줄 마땅한 이름을 찾으려 시집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