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운동복을 입고 밖을 나섰다. 시간은 오후 7시 반. 뛰고 오면 아마 금방 9시가 되겠지? 잘 시간에 가깝게 뛰면 숙면에 도움이 안 된다던데. 그렇다고 러닝을 쉴 수는 없었다. 오늘까지 쉬어 버리면 5일을 쉬어 버리게 되는 셈이다.
오늘은 평소와는 다른 루틴을 거쳤다. 원래라면 퇴근 후 러닝을 하고 늦은 저녁을 챙겨 먹을 텐데, 2주 정도 그렇게 하니 소화 안 된 몸으로 매번 잠을 청한 탓인지 몸이 너무 피곤했다. 얼굴이 퉁퉁 붓는 건 덤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뛰러 가기 전 먼저 저녁을 챙겨 먹었다. 양배추와 목살을 볶고, 흑미밥 조금에 청포묵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었다.
이렇게 배부른 상태로 뛰면 배가 아플 테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어차피 내가 주로 뛰는 공원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편도로 20분이니 그 안에 충분히 소화되지 않을까? 그런 태평한 생각으로 여유 있게 저녁을 챙겨 먹은 뒤 밖을 나선 것이다.
저녁 6시가 되어도 한낮인 것처럼 쨍쩅하던 햇빛이 이제야 조금 잦아든 모습이 보였다. 게다가 미미한 바람도 부는데, 습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이만큼의 바람이 불어 준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뛸 때 습한 공기 때문에 평소보다 숨이 찰 뿐이지, 이 정도의 바람이면 여름의 러너에게는 고마운 날씨인 것이다.
폭염 러닝을 대비해 사 둔 식염 포도당은 아직도 먹지 않고 있다. 왠지 모르게 손이 안 간달까? 저걸 먹으면 왠지 모르게 1시간은 뛰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 이왕 약을 먹었는데 효과를 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건 오늘도 러닝 장소에 무사히 도착을 했고, 대충 빠르게 몸을 푼 다음 냅다 뛰었다. 평균 7분 페이스로 뛰던 내가 여름이 되자 8분에서 8분 30초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슬로우러너가 되었다. 더 빨리 뛰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랬다간 어떻게 탈이 날지 몰라 적당히 뛰고 다음날을 위해 체력을 아껴 두자는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뛰는 사이 점점 공원은 어둑해지고, 그와 대비되어 노을지는 하늘은 더더욱 붉게 물들어 갔다. 이렇게 뛰고 있음에 감사하다가도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에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이런 날씨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주로에는 뛰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그들이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더 힘이 나 막판에는 속도를 올릴 수 있었다.
목표로 했던 지점에 가까워질 때쯤 몸이 무거워지는 게 느껴져서 냅다 '어후'하는 단전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총총보다는 터덜터덜에 가까워진 몸짓을 하고 뛰는데 가뿐한 발걸음으로 러너 두 명이 나를 앞질러 갔다.
오늘뿐만이 아니라 매 순간 누군가 나를 앞질러 가면 순간적으로 욱 경쟁심이 올라온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이고, 이내 그 마음을 다스린다. 이건 경기가 아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다른 사람을 제치려고 러닝을 하는 건 아니잖아? 무리해서 괜스레 탈이 나거나 부상을 입으면 안 되기에 부단히 스스로를 달랜다.
3km를 조금 넘게 뛰었다. 어느덧 해는 완전히 지고, 온전한 밤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육교 계단 위를 다 오르고 나니 발 밑으로 도로의 풍경이 보인다. 그 모습을 눈으로만 담기 아까워 괜히 카메라를 들어 프레임 안에 담아 본다.
달리면서 오늘은 무슨 글을 쓰지,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달리다 보니 왜 꼭 특정 주제로만 글을 써야 하냐는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부담감이 오히려 좋은 글이 나오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담백하게 늘 있는 일상 속의 달리기를 담고 싶었다.
그 어떤 거창한 다짐도 없이, 의미도 없이, 목표도 없이 그냥 달렸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