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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진 Jan 05. 2024

내가 당뇨라니

24~28주 사이의 산모들은 임신성 당뇨 검사를 받는다.


25주 2일. 전날 저녁 이후 금식.

아침 공복에 집에서 미리 50g의 포도당을 섭취하고 병원으로 갔다. 시간을 맞춰 피를 뽑는다. 당 수치가 140mg/dl 이하로 나와야 정상이다.

평소 당뇨와는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살던 나이다. 마른 체질에 가족력도 없다. 그렇다고 걱정이 전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임신성 당뇨의 위험 요소에는 ‘노산’과 ‘다태임신’ 이 떡하니 가장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나는 노산에 다태 임신, 그것도 세쌍둥이 임신이다.

하지만 나는 단 걸 좋아하지도 않고, 탄수화물도 많이 먹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건강하게 먹는 스타일이다. 그런 내가 설마 당뇨겠어?


너무 쉽게 생각했나 보다.  심한 호르몬의 노예라는 걸 깜빡했다. 155mg/dl재검이 떴다. 평소 먹던 습관으로는 임당이 올 수가 없다. 시크한 나의 교수님 세쌍둥이 임신이라 어쩔 수 없으니 조용히 받아들이란다. 재검은 일주일 후다. 타이트한 식단관리를 일주일 동안 해볼 고민하다 평소대로 먹고 검사받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아이들을 건강하게 낳기 위함 아닌가. 내가 임당이라면 확실하게 임당 진단을 받는 게 아이들에게 더 이로울 것이다.


26주 2일. 전날 저녁 이후 금식.

임당 재검은 1차 검사처럼 간단하지 않다. 피 한번 뽑고 말았던 1차 검사와 달리 재검은 피를 4번이나 뽑아야 한다. 그것도 한 시간 단위로. 그 말인즉, 내가 병원에 4시간 이상을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는 이미 남산만큼 나와있고 거동도 불편한 상태였다. 주차장이라도 가까우면 차에서라도 대기하지, 주차장에 갔다 차 한번 만지고 다시 돌아오면 한 시간이 지나있을 것 같은 거리였다.

아침에 공복으로 병원에 가서 피를 뽑는다. 공복 혈당을 잰 뒤, 100g의 포도당을 섭취하고 한 시간마다 피를 뽑아 혈당을 확인한다. 안 그래도 부족한 피를 계속해서 뽑아 갔다.

병원 대기의자에 옆으로 길게 다리를 뻗고, 힘들지만 4시간을 어떻게 잘 버텼다. 그래도 임당이 아니기만을(간절히) 바랐다.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애석하게도 나는 임심성 당뇨 환자로 확정되었다.


내분비과 외래가 잡혔다. 내분비과 교수님은 나에게 노트를 한 권 주셨다. 거기에 매끼 먹은 것을 양까지 모두 다 적으라고 했다. 그리고 하루 5번(아침 공복, 매끼 두 시간 후, 자기 전) 혈당체크기로 혈당을 체크하고 그 수치적으라고 했다. 2주 후 검사를 받고, 만약 조절이 잘 안 되면 인슐린을 맞아야 한다고 했다. 교육실로 가서 영양사님께 식단 수업을 받았다.

당뇨 확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먹은 눈물의 마지막 만찬


임당 판정 이후 나를 제일 힘들게 한 건 하루 5번,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 혈당을 체크하는 일이었다. 손가락을 찌를 때마다  든 머리카락이 삐쭉삐쭉 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번에 제대로 피가 나오면 그래도 다행이다. 조금만 어긋나도 피가 나지 않아, 한 번의 검사를 위해 몇 번이나 손가락 찔러야 했다. 손가락 여기저기에 구멍이 숭숭 나 있었고, 스트레스가 쌓여 혈당이 더 오를 것만 같았다.


혈당을 내리기 위해선 운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지경인데 무슨 운동을 하겠는가. 어쩔 수 없이 식단으로만 혈당을 관리해야 했다.

다행히 공복혈당은 항상 정상이었다. 평소 먹던 대로 먹어도 혈당은 크게 튀지 않았고 정상 수준에서 머무를 때 많았다. 그래서 식단을 크게 바꾸지는 않았다. 반찬에서 탄수화물을 빼고 단백질, 야채의 비중을 높였다. 밥은 현미 잡곡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가끔 먹던 단 것들을 안 먹기로 했다.


금지된 것은 뭐든 매혹적인 법인가.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 평소 좋아하지도 않던 케이크나 도넛 등이 그렇게 당길 수가 없었다. 나는 원래 군것질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다. 밥때에 밥만 먹고 살아온 사람이다. 빵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랬던 내가 도넛이나 케이크를 그렇게 먹고 싶어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거기다 자기 하루종일 입이 궁금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웃거린 당뇨카페에서 혈당이 튀지 않는 빵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호라. 바로 인터넷을 검색해 주문다. 시중에 파는 케이크보다  맛이 조금 덜하긴 했지만 그래도 꽤 맛있었다. 문대로 혈당전혀 오르지 않다. (아직도 궁금하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 하지만 알아보긴 귀찮다) 그래서 가끔 그 빵들이라도 먹으며 나를 위로하곤 했다.

혈당을 올리지 않는 케이크와 디카페인 커피

2주 후, 하루 5번 손가락을 찌르던 것을 3번으로 줄여도 좋다는 교수님의 허락을 받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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