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장: 테니스 코트는 흐르는 강물이었다

by DrLeeHC

제20장: 코트는 흐르는 강물이었다


성벽이 허물어진 자리, 오늘의 풍경


다시 봄이 찾아왔네.

코트 옆 개나리가 노랗게 피어나고, 벚꽃이 흩날리는 따뜻한 계절이었지.

내가 앉아있는 이 벤치에서 바라보는 코트의 풍경은, 이제 더없이 평화롭고 활기가 넘쳐.

세 면의 코트 모두에서는 끊임없이 공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오지.

한쪽에서는 나이 지긋한 고수들이 땀방울을 튀기며 명승부를 펼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제 막 라켓을 잡은 아이들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아장아장 공을 좇고 있네.


아직 서툴러도 얼굴에는 해맑은 웃음이 가득했지.


그 두 풍경은 이제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이 코트의 일부가 되었어.

마치 오랜 시간 따로 흐르던 두 물줄기가 만나 하나의 강을 이루듯 말이야.


자신들만의 왕국도, 그 한낮의 '어울림 마당'도 사라진 자리에, 비로소 진짜 '공동체'가 들어선 게야.


오래전 박 사장을 내쫓고, 젊은이들을 외면했던 닫힌 코트는 이제 모두에게 활짝 열린 너른 마당이 되었지.


봄바람에 실려 오는 공 소리는 마치 세상 모든 이들을 환영하는 노래 같았어.


코트의 낡은 철제 펜스도 이제는 누군가를 막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풍경의 일부처럼 느껴졌다네.


나는 이 모든 것을 보며, 늙은 눈에 따뜻한 감동의 물결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지.



또 다른 초심자의 손을 잡아주는 어제의 초심자, 순환하는 생명력


바로 어제였네.

낯선 젊은이 하나가, 예전의 한정우 일행처럼 어색한 표정으로 철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지.


그의 눈에는 코트에 대한 설렘과 함께, 낯선 공간에 대한 불안감이 깃들어 있었어.

코트 안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공 소리와 웃음소리에 홀린 듯 문 너머를 기웃거리는 모습이, 과거 한낮 클럽 회원들의 첫걸음과 영락없이 닮아 있었다네.


그는 마치 거대한 성채를 앞에 둔 순례자처럼, 안을 들여다보며 들어올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지.


그런데 이번에는 한정우가 움직이지 않았어.

그가 뒤로 물러선 것은, 더 이상 그의 개입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게야.


대신, 이제는 코트의 에이스가 된 그 대학생이 망설이는 젊은이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더군.


그의 발걸음은 자신감 넘쳤고,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가 가득했다네.


그리고는 예전에 자신이 한정우에게 들었던 것과 똑같은 말을, 환한 미소와 함께 건넸네.


"제가 조금 도와드릴까요?"


그 목소리에는 한정우의 가르침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어.


공을 세게 치는 게 아니라 마음을 담아 밀어주듯,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따뜻함이 말이야.

그 대학생의 손은 이제 라켓 잡는 법도 모르던 어리숙한 시절의 손이 아니었네.

굳은살이 박히고 단단해진 그 손으로, 그는 새로운 새싹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주었다네.

그 모습을 옆에서 조용히 바라보던 한정우의 얼굴에, 아주 옅고도 깊은 미소가 피어올랐어.


그의 눈빛은 만족감으로 반짝였다네.

비로소 그의 역할은 끝난 게야.

그가 심은 씨앗이 이제 스스로 숲을 이루고, 그 숲 속에서 또 다른 씨앗이 뿌려지는 모습을 본 게지.


그는 더 이상 홀로 이단아가 아니었어.

그가 일으킨 작은 물결이 거대한 흐름이 되어, 코트의 풍경을 영원히 바꿔놓은 거야.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늙은 눈에 살짝 이슬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네.


그것은 단순한 감격이 아니었어.


오랜 세월 코트에서 지켜봐 온 나의 삶과, 이 공동체의 미래가 연결되는 듯한 깊은 깨달음이었다네.



술잔을 비우며, 영원히 흐르는 강물처럼


코트는 성벽을 쌓아 지켜야 하는 왕국이 아니었네.

그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물이 흘러들어와야 하는 강물과도 같은 것이었지.


고인 물은 썩지만, 흐르는 강물은 언제나 생명으로 가득한 법이니까.


왕 노릇을 하던 그 패거리들은 그 단순한 이치를 몰랐던 게야.


그들은 흐르는 물을 억지로 막으려 했고, 결국 자신들의 물줄기를 말려 버린 셈이지.


결국 그들을 무너뜨린 것은 한정우라는 개인이 아니었어.


흐르려는 물을 억지로 막아선 자들의 어리석음, 바로 그 자신들이었다네.

내 술은 이제 다 비었고, 나의 길었던 이야기도 여기서 끝을 맺는다네.


보온병 바닥에서 짤랑거리는 얼음 소리가 마치 마지막 박수 소리처럼 들렸어.


저 코트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그 기록은 이제 나의 몫이 아니겠지.


새로운 이야기꾼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코트의 새로운 페이지를 채워갈 거야.


나는 그저, 이 좋은 술맛을 기억하며 저들의 행복한 랠리를 조금 더 지켜볼 뿐일세.


봄 햇살 아래 펼쳐지는 코트의 모습은, 마치 영원히 흐르는 강물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웠다네.


그리고 나는 알았지.


진정한 승리란, 왕관을 차지하고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임을 말이야.


그것이 한정우가 보여준 삶의 테니스였고, 이 늙은이에게 남긴 가장 큰 가르침이었다네.


코트 위에서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는 이제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어.


그것은 진정한 공동체의 심장 박동처럼, 나의 늙은 가슴속에서 영원히 울릴 것이었다네.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코트의 이야기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고, 그 속에 담긴 지혜는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겠지.


이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었음에, 나는 깊이 감사했다네.

keyword
이전 20화제19장: 열리는 문, 새로운 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