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강물은 또 다른 길을 찾고

by DrLeeHC


에필로그: 강물은 또 다른 길을 찾고


시간은, 흐르는 강물처럼 멈추지 않고 흘러갔네.

내가 낡은 벤치에 앉아 코트의 이야기를 풀어낸 지 벌써 십 년도 더 지났을 게야.

이제 내 머리는 희끗희끗한 정도가 아니라, 겨울 산에 내린 첫눈처럼 온통 하얗게 변했지.


그 사이 코트의 풍경은 또다시 몇 번의 계절을 지나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했어.


낡은 철제 펜스는 녹색으로 새로 칠해졌고, 바랜 페인트 대신 선명한 흰색 라인이 코트를 가르고 있었지.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코트 위를 가득 채운 웃음소리와 땀방울이었네.


여전히 세 면의 코트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따뜻한 공기가 감돌았어.


왕 노릇하던 패거리들의 흔적은 이제 옛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전설처럼 희미해졌지.


간혹 그들이 코트에 나타나기도 했지만, 예전 같은 위압감은 없었어.

그저 평범한 이웃 중 하나로, 한쪽에서 조용히 공을 치거나 젊은이들의 경기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네.


그들의 눈빛에는 이제 오만함 대신 왠지 모를 쓸쓸함과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었지.


한정우는 여전히 코트를 지켰어.


그의 얼굴에는 잔주름이 더 깊어졌지만, 눈빛만은 변함없이 맑고 깊었다네.


그는 이제 코트의 '이단아'가 아니었어.

오히려 코트의 굳건한 뿌리이자, 조용히 모두를 이끄는 '정신적 지주'가 되었지.


그를 따르던 젊은 대학생은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주말마다 코트를 찾았고, 자기 아들딸에게도 테니스를 가르치고 있었어.


공을 치는 폼은 아직 서툴렀지만,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해맑은 웃음은 한정우와 한낮 클럽이 처음 공을 치던 그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네.


테니스는 공을 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고, 세대를 잇는 '관계'라는 것을 한정우는 묵묵히 보여주고 있었다네.


물론, 코트에는 또 다른 작은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기도 했어.


한동안 잠잠하던 옆 동네 아파트 테니스 클럽에서 우리 코트가 너무 활성화되었다며, 공동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해 온 적도 있었지.


그들의 제안 속에는 이전 패거리들처럼 은근한 '점령'의 의도가 숨겨져 있었지만, 한정우와 새로운 코트의 주인들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네.


그들은 평화로운 대화와 '우리들의 약속'을 통해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했어.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방식을 택했지.


코트는 그렇게, 끊임없이 부딪히고 배우며 진정한 공동체로 익어가는 중이었다네.


내 개인적인 삶에도 작지만 큰 변화가 있었지.


늘 보온병에 위스키를 담아 오던 내가, 어느 날부터인가 따뜻한 차를 담기 시작했으니 말이야.

몸이 예전 같지 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코트에서 넘실대는 생명력 덕분에 더 이상 술로 속을 달랠 필요가 없어진 게지.


쌉쌀한 위스키 대신, 구수한 보리차 향이 내 코트 풍경에 더 잘 어울리는 듯했어.


가끔은 젊은이들이 내게 다가와 테니스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어.


"영감님, 오늘은 제 백핸드가 좀 달라졌죠?"

하며 자랑하는 모습에 나는 그저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나는 그들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그저 그들의 열정을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것으로 충분했어.


이제 나의 길었던 이야기도 여기서 끝을 맺는다네.


낡은 벤치에 앉아 마지막 위스키 한 모금을 비우며 코트의 변화를 지켜보는 나의 마음은 더없이 평화로웠어.


봄 햇살 아래 펼쳐지는 코트의 모습은, 마치 영원히 흐르는 강물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웠다네.


나는 이제 조용히 벤치에 기대어, 코트 너머로 사라지는 마지막 햇살을 바라볼 뿐이라네.

나의 늙은 심장은 코트 위를 가득 채운 웃음소리와 함께, 영원히 춤을 추었르면 하네.


이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었음에, 나는 깊이 감사했다네.


흐르는 강물처럼, 코트의 이야기는 계속될 거야.


물론 그 속에 담긴 지혜는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겠지.


나는 한정우라는 저 녀석과 맥주나 한 잔하러 불러내야 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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