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유령의 속삭임

by 이호창

++++ 제1장: 유령의 속삭임


1. 강의 검은 물결


10월의 밤은 깊었다.

공기는 차가웠다.

마치 강바닥의 냉기가 도시 전체로 스며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한강은 서울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동맥이 아니라, 모든 빛과 소리를 집어삼키는 검은 상처처럼 보였다.

강물은 흐른다기보다, 무거운 몸을 뒤채며 제자리에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강변북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검은 수면 위를 칼날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적인 섬광 위로, 강의 검은 비늘이 번뜩였다가 사라졌다.


바람이 불었다.

마른 억새풀들이 일제히 몸을 떨며, 죽은 자의 속삭임 같은 소리를 냈다.

강 건너 잠실의 거대한 빌딩들은, 마치 먼 행성의 마천루처럼 비현실적인 실루엣으로 서 있었다.

수백만, 어쩌면 수천만 개의 창문들이 저마다의 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불빛들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삶이고, 이야기이며, 욕망일 터였다.

하지만 이 거대한 도시의 스카이라인 아래에서, 그 모든 개별적인 삶의 무게는 그저 아름다운 야경의 한 점으로 희석될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밤, 그 야경의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무거운 삶 하나가, 소리 없이 끝을 맺었다.


시선을 강북으로 돌리면, 용산의 어둠 속에서 유독 하나의 건물이 밤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다.


‘트리니티 캐슬’.

대한민국 상위 0.1%를 위해 지어진, 지상 60층짜리 미니 수직 도시.

그것은 단순한 주상복합 타워가 아니었다.

검은 유리와 강철로 지어진 오만한 성채였고, 보통 사람들의 세계와는 다른 물리 법칙이 적용되는 듯한 분리된 왕국이었다.

낮에는 주변의 모든 풍경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 되었다가, 밤에는 스스로 빛을 내는 검은 수정 기둥처럼 변하는 곳.

그곳은 감히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그들만의 하늘이었다.


하지만 오늘 밤, 그 하늘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타워의 지상 로비 주변.

완벽하게 조율된 조경수와 대리석 바닥 위로, 이질적이고 폭력적인 불빛이 주변과의 균형을 깨고 발작적으로 깜빡였다.


경찰차 두 대가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경광등을 번쩍이고 있었다.

붉은빛과 푸른빛이 번갈아 터져 나오며, 성채의 고고한 외벽을 잠시 더러운 색으로 물들였다가 놓아주기를 반복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괴물의 몸에 상처가 나, 그 상처 틈으로 푸른 멍과 붉은 피가 번갈아 비치는 것 같았다.


구급차 한 대는 이미 경광등을 끈 채, 시동도 걸지 않고 서 있었다.

그 침묵은, 더 이상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걸 의미했다.


몇 명의 경찰관들이 타워 정문 주변에 서서 외부인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그들의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그들은 서로 별다른 말을 섞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현장이 가진 무게감을 알고 있다는 듯, 모두가 약속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상한 점은, 구경꾼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이토록 요란한 불빛의 향연에도 불구하고, 타워 주변은 섬처럼 고요했다.

이곳의 주민들은 자신의 성채 안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소동에, 굳이 커튼을 열어 관심을 표하지 않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완벽하게 격리되어 있었다.

도시의 나머지 부분과, 그리고 서로에게서조차.


그때였다.

저 멀리서, 또 다른 불빛 하나가 어둠을 가르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경찰차의 경광등처럼 요란하지도, 고급 세단의 헤드라이트처럼 우아하지도 않은, 평범하고 지친 불빛.


오래된 소나타 택시였다.


택시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가속 페달을 밟는 듯했다.

엔진이 힘겹게 울부짖는 소리가, 이 고요한 비극의 현장에 어울리지 않는 파열음을 냈다.


택시는 경찰차 바로 뒤편에, 끼익- 하는 날카로운 마찰음을 내며 거칠게 멈춰 섰다.


마치 제시간에 도착한 것을 안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헤드라이트 불빛이 몇 번 깜빡이더니 꺼졌다.


잠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현장의 경찰관들이 의아한 눈으로 택시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택시의 뒷좌석 문이 열렸다.


먼저 트렌치코트 자락이 보였다.

그리고 낡았지만 잘 닦인 구두의 앞코가,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첫 발을 내디뎠다.


도시의 거대한 비극은, 이제 막 자신의 마지막 관객이자 첫 번째 해설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2. 47층의 경찰차 불빛



이수연이 택시에서 내렸다.


차가운 아스팔트의 충격이 닳아빠진 구두굽을 통해 발바닥까지 전해졌다.

택시 기사가 사이드미러로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큰일 났나 봐요? 기자 양반.”


그의 목소리에는 사건에 대한 호기심과, 이런 밤에도 일해야 하는 동류의 인간에 대한 희미한 연민이 섞여 있었다.


“늘 큰일이죠, 아저씨. 세상은 원래 그래요.”


이수연은 무심하게 대답하며 지폐 몇 장을 건넸다.

그녀는 거스름돈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이미 저 건물의 상처, 깜빡이는 경광등 불빛에 고정되어 있었다.

택시는 시시한 대답에 김이 빠졌다는 듯, 퉁명스러운 엔진 소리를 내며 밤의 도시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폴리스 라인을 향해 걸었다.


발밑에서 마른 은행잎 하나가 바스락, 하고 부서졌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었다.

이 도시의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마지막 가을이었다.


그녀는 현장을 지키고 선 젊은 의경의 얼굴을 보았다.

앳된 얼굴에는 피로와 지루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이 죽음의 의미를 몰랐다.

그저 지겹고 긴 밤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비켜요. 정론일보 이수연 기자입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의경은 기계적으로 길을 비켜주었다.

로비 안으로 들어서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바깥의 소란과 차가운 밤공기는 두꺼운 방음 유리문에 의해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카펫은 발소리를 집어삼켰고, 공기는 값비싼 우드향 디퓨저 냄새로 정갈했다.


소파 구석에는 잠옷 가운 차림의 입주민 몇몇이 모여 있었다.

한 중년 여성은 품에 안은 작은 개가 추울세라 연신 담요를 여며주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옆집의 비극에 대한 슬픔이 아니었다.

자신이 아끼는 카펫 위를 낯선 경찰들의 구둣발이 더럽히고 있다는 데 대한 불쾌감이었다.

이수연은 그들을 경멸 어린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이 성채의 사람들은, 타인의 죽음조차 자신의 안락함을 침해하는 하나의 소음으로 여길 뿐이다.


로비 한가운데, 이 소동의 지휘관인 박 반장이 서 있었다.

그의 닳아빠진 가죽 점퍼와, 바닥까지 광이 나는 최고급 대리석 바닥은 서로를 경멸하는 듯 보였다.

피곤에 절어 붉게 충혈된 그의 눈이 이수연을 발견했다.


“윤석호. 전 국정원 차장입니다.”


박 반장은 그녀가 묻기도 전에, 가장 중요한 정보부터 던져주었다.

그것으로 그의 할 말은 끝이라는 듯, 턱짓으로 엘리베이터 쪽을 가리켰다.

가보라는, 무언의 허락이었다.


한 젊은 형사가 그녀를 펜트하우스 전용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보안 카드를 대자, ‘딩’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내부는 온통 검은색 스모크 유리와 차가운 질감의 스테인리스 스틸로 마감되어 있었다.

조명이라고는 천장의 가느다란 LED 라인 하나가 전부였다.

그 차갑고 미니멀한 공간에, 이수연은 혼자 탔다.

47층 버튼에 불이 들어왔다.


문이 닫히자, 세상의 모든 소음이 완벽하게 사라졌다.

엘리베이터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부드럽고 빠르게 상승했다.

그녀는 검은 유리 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피곤에 지친 기자의 얼굴.

그녀는 문득 자신의 손톱 끝을 보았다.

어제 바른 짙은 와인색 매니큐어의 끝부분이 아주 작게 벗겨져 있었다.

완벽하게 관리된 듯 보이는 자신에게도, 저런 허술한 틈이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모든 완벽한 것들에는 저런 작은 균열이 있기 마련이다.

이 트리니티 캐슬에도, 윤석호라는 남자의 삶에도, 그리고 어쩌면 이 나라 전체에도.


기자란, 바로 그 균열의 틈을 파고들어 전체를 무너뜨리는 직업이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윤석호라는 남자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복기했다.


'암호명 ‘유령’.

평생을 국가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이름 없는 적들과 싸워온 남자.

그런 남자가 유서 한 장 없이 자신의 서재에서 죽음을 택했다.

단순한 우울증일까.

아니면, 평생 짊어져 온 비밀의 무게가 마침내 그의 목을 졸라버린 걸까?'


그녀는 이 감각을 알고 있었다.


거대한 특종의 냄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이야기의 첫 페이지를 넘기기 직전의, 그 서늘하고도 달콤한 흥분.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미세한 충격과 함께 멈췄다.

도착을 알리는 차임벨 소리가 사과처럼 맑았다.

47층.


문이 열렸다.


그녀의 눈앞으로, 지극히 사적인 공간의 고요한 복도가 펼쳐졌다.

한쪽 벽에는 주인의 취향을 짐작게 하는 거대한 추상화가 걸려 있었다.

검은색과 붉은색 물감이 격렬하게 뒤섞여 폭발하는 듯한, 불안하고도 힘 있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복도 끝, 4701호의 현관문이 지옥의 입구처럼 활짝 열려 있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형사 두 명이 그녀를 잠시 막아섰지만, 아래층에서 연락을 받았는지 곧 길을 비켜주었다.


이수연은 문턱에 섰다.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공기의 냄새가 달라졌다.

로비의 인공적인 향기와는 다른, 진짜 냄새.


한 인간의 삶이 남긴 비극의 잔향이었다.

오래된 종이와 위스키, 그리고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코를 찌르는, 녹슨 쇠 냄새 같은 죽음의 냄새.


그녀는 심호흡을 한번 했다.


자신이 지금부터 보게 될 모든 것은, 더 이상 단순한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빚어낼 거대한 이야기의 재료가 될 터였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 어둡고 깊은 이야기의 입구 속으로 첫발을 내디넸다.

3. 기자의 첫 번째 입장



이수연은 4701호의 문턱을 넘었다.


안과 밖의 공기가 미세하게 달랐다.


복도의 공기는 차갑고 중성적이었지만, 현관 안의 공기는 한때 이곳에 살았던 사람의 온기가 아직 희미하게 남아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온기 아래로, 죽음 특유의 서늘하고 비릿한 냄새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현관은 넓고 간결했다.


모든 것이 모델하우스처럼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왼쪽의 단정한 원목 신발장.

이수연의 시선이 그곳에 머물렀다.


신발장 가장 아래 칸에는, 외출용 구두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검은색 윙팁 옥스퍼드화.

구두는 마치 의장대를 사열하는 군인처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완벽한 각을 이루며 나란히 놓여 있었다.

가죽 표면에는 먼지 한 톨 없었다.

거울처럼 맑게 닦여 있어, 현관의 희미한 조명이 그 위에서 길게 빛을 반사했다.

저 구두를 신고 그는 평생을 걸었을 것이다.

국가의 가장 어둡고 미끄러운 복도들을.

단 한 번도 발을 헛디디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언제나 긴장한 채로.


그리고 바로 그 구두 옆, 대리석 바닥 위에, 낡은 갈색 슬리퍼 한 켤레가 비뚤게 놓여 있었다.

마치 엄격한 구두의 세계에서 쫓겨난 것처럼.

한쪽은 바로 서 있고, 다른 한쪽은 옆으로 누워 있었다.

뒤축은 다 닳아서 주저앉아 있었고, 발등 부분에는 세월의 흔적이 깊은 주름으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마치 주인의 가장 무방비한 맨얼굴 같았다.


이수연은 그 두 개의 신발을 번갈아 보았다.

완벽하게 각 잡힌 구두와,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슬리퍼.

그녀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스쳤다.


평생을 저렇게 빈틈없는 구두 속에서 살았던 남자도, 집에 돌아오면 결국에는 이 닳아빠진 슬리퍼에 발을 구겨 넣고 싶었던 거구나.그 사소한 사실이, 윤석호라는 인물을 서류상의 프로필이 아닌, 살아있는 인간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그녀는 거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실은 그의 사회적 지위를 증명하듯, 거대하고 텅 비어 있었다.

한강의 야경을 독차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통유리창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구들은 하나같이 비싸고 좋은 물건들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

마치 누군가 살기 위해 들여놓은 것이 아니라, 잡지 화보를 찍기 위해 배치해 놓은 것 같았다.

이곳은 집이 아니었다.

성공한 남자의 고독한 쇼룸이었다.


거실 중앙의 거대한 티크 나무 테이블 위.

그 넓은 공간에 놓인 것은 딱 두 가지였다.

어제 날짜 정론일보 신문과, 그 위에 놓인 몽블랑 연필.

신문은 사회면이 펼쳐져 있었고, 한쪽 구석의 스도쿠 퍼즐은 절반쯤 채워져 있었다.


이수연은 그 스도쿠를 보았다.

빈칸을 채워나가는, 지극히 논리적이고 고독한 게임.

그는 죽기 전날 밤, 무슨 생각을 하며 이 숫자들의 미로를 헤맸을까.

자신의 삶이라는, 결코 풀리지 않는 거대한 스도쿠 판을 앞에 두고서.


그때 그녀의 눈에, 사이드 테이블에 놓인 작은 사진 액자 하나가 들어왔다.

사진은 오래되어 색이 바래 있었다.

젊은 시절의 윤석호가, 지금의 그에게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의 목마를 탄 어린 아들이, 아빠의 머리카락을 힘껏 쥔 채 하늘을 보며 웃고 있었다.

배경은 가을날의 어느 평범한 공원이었다.

사진 속의 그는 암호면 '유령'으로 불리던 자가 아니었다.

그저 한 아이의 아버지였다.


이수연은 생각했다.

모든 사람의 삶에는, 저렇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이 하나쯤 있기 마련이라고.

그리고 어쩌면, 사람은 현재의 고통이 아니라 저 돌아갈 수 없는 행복의 기억 때문에 무너지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감상을 떨쳐냈다.


그녀는 평론가가 아니라 기자였다.

사냥꾼이었다.


그녀는 현장의 법의학팀 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아파트의 더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거실을 지나자, 긴 복도가 나왔다.


복도 양쪽 벽에는 흑백 사진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걸려 있었다.

가족사진이 아니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

닉슨이 마오쩌둥과 악수하는 장면.

판문점에서 마주 선 남북의 장군들.

그의 인생을 채웠던, 차갑고 거대한 역사의 순간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 복도를, 역사의 박물관이자 자기 자신의 기념관으로 만들어 놓았다.


복도 끝에 다다를수록, 죽음의 냄새는 점점 더 짙고 선명해졌다.

그녀는 마침내 그 문 앞에 섰다.


서재.

이 비극의 심장.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노란색 폴리스 라인은 아직 설치되기 전이었다.

그녀는 안을 들여다보았다.

푸른색 감식 조명이 섬광처럼 터지며, 어두운 서재 내부를 순간적으로 비췄다 사라졌다.

그 찰나의 순간, 그녀는 보았다.

책상 위로 무너져 내린 한 남자의 등.

그리고 그 위, 천장의 고리에서부터 길게 늘어뜨려진, 밧줄의 끔찍한 실루엣을.


이수연은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골랐다.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심장이 차갑고 명료하게 뛰기 시작했다.


사냥꾼이 마침내, 사냥감의 동굴 입구에 도착한 것이다.


이제 저 안으로 들어가, 사냥감의 심장을 꺼내 올 차례였다.


그녀는 조용히, 그러나 망설임 없이, 그 비극의 중심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4. 마지막 순간과 잉크의 흔적



이수연은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프로였다.

눈앞의 끔찍한 광경에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모든 감각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예민하게 날을 세웠다.

사건 현장은 기자에게 전쟁터이자, 가장 풍요로운 사냥터였다.

그녀의 눈은 카메라의 렌즈처럼, 모든 것을 기록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천장에 매달린 윤석호의 그림자였다.

스탠드 불빛이 그의 등 뒤에서 비쳐, 천장과 맞은편 책장에 거대하고 일그러진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치 그가 죽어서도 자신의 서재를 떠나지 못하는 유령이 된 것 같았다.

그녀는 시선을 내려, 밧줄에 매달린 그의 몸을 보았다.

최고급 맞춤 정장은 흐트러짐 하나 없었다.

하지만 중력에 의해 축 늘어진 몸은, 이제 막 내용물이 모두 빠져나간 값비싼 마네킹 인형처럼 보였다.


그녀는 바닥을 보았다.

그가 걷어찼을, 넘어진 마호가니 의자.


그리고 그 주변에 흩어진 몇 권의 책들.

그녀는 책들의 제목을 놓치지 않았다.

『국가란 무엇인가』, 『권력의 속성』.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평생을 바친 질문의 답을 찾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 질문들이 결국 자신을 죽였다는 무언의 증언일까?'


이수연의 시선은 마침내, 이 비극의 제단인 책상으로 향했다.

그의 몸 아래, 모든 것이 시작될 장소.


책상은 죽음의 혼란과는 정반대로, 강박적일 만큼 질서정연했다.

그녀는 그 질서 속에서, 한 남자의 마지막 하루를 읽어내려 갔다.

왼편에는 그가 읽던 것으로 보이는 서류 뭉치.

오른편에는 참고 문헌으로 보이는 두꺼운 원서 몇 권.

그리고 책상 위, 그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사진 액자 하나가 있었다.


그녀는 액자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무겁고 차가운 느낌의 은제 액자였다.

사진 속에는, 늠름하지만 딱딱한 표정의 군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거실 사이드 테이블에서 보았던, 환하게 웃던 아버지와 아들의 낡은 사진을 떠올렸다.

거실의 사진이 '행복'의 기록이었다면, 책상 위의 이 사진은 '의무'와 '책임'의 증명사진처럼 보였다.


한 사람의 인생에 공존하는, 너무나 다른 두 개의 얼굴.

윤석호는 어쩌면 평생을, 이 두 얼굴 사이에서 길을 잃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수연은 이 대비가 아주 좋은 기사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극을 감성적으로 포장하는 기술.

그것은 그녀의 전문 분야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눈은 그것을 보았다.


이 무대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곳.

이 이야기의 기원이자 마지막.

책상 정중앙에 놓인, 한 장의 메모지.


그녀는 숨을 참았다.

다가가서 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멀리서 그 형태를 눈에 새겼다.

두껍고 질 좋은 크림색 종이.

그 위에, 만년필 특유의 농담(濃淡)이 살아있는, 짙고 푸른 잉크의 흔적.

필체는 단정하고 힘이 있었다.

죽음을 앞둔 자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것은 이성(理性)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또 다른 흔적이 겹쳐 있었다.

눈물 자국이었다.

그가 이 글자를 쓰며 마지막으로 흘렸을, 아주 작은 물방울의 흔적.

종이의 결을 따라 희미하게 번졌다가, 지금은 빛을 비추어야만 간신히 보이는 투명한 얼룩으로만 남아 있었다.


푸른 잉크와 투명한 눈물.

차가운 이성과 마지막으로 터져 나온 뜨거운 슬픔.


이 작은 종잇조각 안에, 한 남자의 마지막이 너무나 완벽한 상징으로 압축되어 있었다.


이수연은 전율했다.


'이것은 단순한 메모가 아니다.

이것은 작품이다.'


“김 형사, 저거 증거물 봉투에 담아.”


박 반장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과학수사대 요원 한 명이 핀셋과 비닐 봉투를 들고 책상으로 다가왔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이수연은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그녀는 박 반장에게 다가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다.


“반장님, 외부 침입 흔적은 확실히 없습니까? 유족들은 아직 연락 안 됐고요?”


박 반장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하는 바로 그 찰나.

그녀는 몸을 살짝 틀어, 책상 쪽으로 다가서는 과학수사대 요원과 일부러 어깨를 부딪쳤다.


“어, 죄송합니다.”


그녀는 과장되게 사과하며 몸을 숙였다.

그 1초 남짓한 시간.

그녀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이 소리 없이, 그러나 완벽하게, 책상 위의 메모를 촬영했다.

최신형 스마트폰이라 조명이 어두워도 좋은 사진을 만들어 냈다.

초점도, 구도도 완벽했을 것이다.

사냥꾼은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은 것이었다.


“이 기자, 좀 비켜줘. 방해되니까.”


박 반장의 핀잔에, 그녀는 순순히 물러났다.

그녀의 임무는 끝났다.

요원이 핀셋으로 메모지를 집어 들어 증거물 봉투에 넣는 모습을, 그녀는 이제 평온한 눈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더 이상 저것은 경찰의 증거물이 아니다.

저것은 이제, 온전히 그녀의 이야기, 그녀의 무기였다.


이수연은 조용히 서재를 나섰다.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미 그녀의 머릿소에서는, 수만 개의 문장들이 폭발적으로 생성되고 있었다.


윤석호라는 유령이 남긴 마지막 잉크의 흔적.


그녀는 이제 그 흔적을 가지고,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 거대한 신화를 창조할 참이었다.


차가운 복도를 걷는 그녀의 발걸음은, 이상할 정도로 가볍고 힘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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