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첫 번째 돌

by 이호창

++++ 제4장: 첫 번째 돌


1. 정론일보 편집국, 아침의 폭풍


아침 8시.

정론일보 사회부 사무실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는 거대한 짐승 같았다.

밤샘 근무를 한 기자들의 퀭한 눈과, 이제 막 출근한 기자들의 활기가 어색하게 공존했다.

사방에서 커피포트 물 끓는 소리, 간밤의 기사에 대한 낮은 목소리의 품평, 그리고 밤새 들어온 제보 전화를 확인하는 전화벨 소리가 뒤섞여,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익숙한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수연은 그 소음 속으로 유령처럼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밤을 새웠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한 모습이었다.

어두운 색의 블라우스와 슬랙스는 흐트러짐이 없었고, 옅은 화장으로 피곤의 흔적을 감추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프로페셔널한 전투복이었다.

그녀의 진짜 얼굴은 을지로의 낡은 오피스텔에, 텅 빈 컵라면 용기와 함께 버려두고 온 참이었다.


“선배, 오셨습니까.”


한 후배 기자가 그녀에게 다가와 지나간 사건 리스트를 건넸다.


“윤석호 전 차장 건은, 경찰 쪽에서 단순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잠정 결론 내린 모양입니다.

유서가 없어서 공식 발표는 조금 더 걸릴 것 같고요.”


주변의 다른 기자들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양반, 퇴직하고 많이 힘들어했다는 소문이 있더라고.”


“거물급 인물이 그렇게 가니 허무하네.”


그들에게, 윤석호의 죽음은 이제 곧 마감될, 흔한 사회면 단신 기사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수연은 아무 말 없이 희미하게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그녀는 폭풍 전의 고요함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폭풍을 몰고 올 번개를, 바로 자신이 쥐고 있다는 사실을.


오전 9시.

편집 회의를 앞두고, 오세훈 사회부장이 커피를 들고 자신의 유리방으로 들어섰다.

그는 언제나처럼 피곤하고 짜증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는 자리에 앉아, 밤새 들어온 수십 통의 이메일을 기계적으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제목만 훑어보고 삭제하기를 반복하던 그의 손가락이, 어느 한 이메일 앞에서 멈췄다.


보낸 사람: 이수연.

제목: [단독] 윤석호,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 ‘미래 설계자들’은 누구인가?


오 부장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는 마우스 휠을 내려, 첨부된 기사 파일을 열었다.

그의 눈이 첫 문단부터 마지막 문단까지, 빠르게 기사를 훑어 내렸다.

처음에는 의심스럽던 그의 표정이, 점차 흥미로, 그리고 마침내 경악과 흥분으로 바뀌는 과정은 느린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상체를 모니터 앞으로 바싹 당겼다.

기사 중간에 첨부된, 흐릿하지만 선명한 메모의 사진.

‘미래 설계자들’.

그리고 기이한 상징.


“젠장….”


그의 입에서 낮은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는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았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기사가 아니다.

이것은 폭탄이다.

성공하면 올해의 기자상을 넘어, 신문사 전체의 위상을 바꿀 수 있는…

하지만 실패하면, 정론일보라는 이름에 ‘음모론 찌라시’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게 될 수도 있는…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방 유리창 너머로 이수연을 찾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자신의 모니터를 보며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이수연!”


오 부장의 고함 소리에, 소란스럽던 편집국 전체가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모든 기자들의 시선이, 오 부장과 이수연에게로 향했다.

폭풍의 눈이, 마침내 생성된 순간이었다.


이수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오 부장의 방으로 걸어갔다.

모든 기자들의 시선이 그녀의 등에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그 시선들을 즐겼다.

그녀가 방으로 들어가자, 오 부장은 리모컨으로 블라인드를 내렸다.

유리방은 외부와 차단된, 그들만의 밀실이 되었다.


“이거… 진짜야?”


오 부장의 목소리는 흥분과 불안으로 잠겨 있었다.


“이 메모, 출처 확실해? 윤석호 필체는 맞아?”


“제가 그날 밤 현장에서 직접 본 겁니다.”


이수연은 거짓말을 했다. 물론, 그녀가 본 것은 자신이 만든 위조품이었다.


“필체는, 국과수에서 감정하면 나오겠죠.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그녀는 오 부장의 책상 위로, 자신이 밤새 준비한 또 다른 자료를 내밀었다.


“이건… 『그림자 연극』이라는, 7년 전 어느 문학 공모전 최종심에 올랐던 소설의 시놉시스입니다. 작가는 차지원. 무명 작가죠.”


오 부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소설? 지금 소설 나부랭이가 왜 나와?”


오 부장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일 수 밖에 없었다.


“이 소설에, ‘미래 설계자들’이라는 비밀 결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상징도, 윤석호의 메모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수연은 결정적인 미끼를 던졌다.


“그리고 더 이상한 건,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 몇몇이, 윤석호 전 차장의 과거 실제 행적과 기묘할 정도로 겹칩니다. 우연일까요?”


진짜 우연이었을까?

그것은 사실이었다.


오 부장은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이 미스터리한 사건의 조각들이 거대한 그림으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전직 국정원 거물의 죽음, 그가 남긴 의문의 메모, 그리고 그와 똑같은 내용을 담은 7년 전의 소설.

이것은 단순한 음모론이 아니다.

이것은… 이야기다.

독자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미스터리 스릴러 말이다.'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커.”


오 부장은 마지막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


“섣불리 터뜨렸다가 역풍 맞으면, 우리 신문사 문 닫아야 할 수도 있어.”

오 부장이 이번에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서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부장님.”


이수연이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우리는 ‘미래 설계자들은 실재한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메모가 존재했다’는 팩트를 보도하고,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뿐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독자와 세상이 찾게 만드는 거죠.

이게 다른 언론사가 먼저 물면 우리는 그냥 낙종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터뜨리면, 이건 올해의 특종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의 의제를 우리가 설정하게 되는 겁니다.”


그녀의 말은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하고 논리적이었다.


오 부장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는 야심가였다.

그리고 기자의 야심은, 언제나 리스크보다 특종을 향해 기울게 마련이다.

그는 결심했다.


“알았어. 1면에 통으로 싣는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장 편집국장님께 보고해.

법무팀도 대기시키고.

오늘 아침, 모든 신문의 헤드라인은 우리가 장식한다.”


이수연은 부장의 허둥지둥거리는 등짝에 대고 인사를 한 뒤, 부장의 방을 나왔다.

그녀가 자리로 돌아오자, 편집국의 모든 기자들이 숨죽이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검은 모니터 화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꺼내, 강태준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돌을 던졌습니다.]


그녀가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편집국 전체가 폭탄을 맞은 것처럼 터져 나갔다.


“1면 전체 들어내! 사회부 단독 기사로 교체한다!”


오 부장의 고함 소리를 시작으로, 전화벨 소리, 기자들의 고함 소리, 인쇄소로 데이터를 넘기는 소리가 뒤섞여, 거대한 폭풍이 되어 사무실 전체를 휘몰아쳤다.


이수연은 그 모든 혼돈의 한가운데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는 이 폭풍의 소리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2. 세상에 던져진 이름


그날 아침, 서울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잠에서 깨어났다.

새벽 인력 시장의 공기는 차가웠고, 첫차를 기다리는 지하철역에는 피곤에 지친 얼굴들이 무심하게 서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사이, 도시의 가장 깊은 혈관 속에서는 이미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을지로 인쇄소의 거대한 윤전기는 밤새도록 굉음을 내며, 수십만 장의 종이 위에 하나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그 이름은 아직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채, 막 포장된 신문 뭉치 속에 봉인되어 있었다.

새벽을 가르는 오토바이와 작은 트럭들이, 그 이름을 도시의 모든 실핏줄로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광화문의 한 신문 가판대.

주름진 손의 늙은 주인이 막 도착한 정론일보의 뭉치를 받아들었다.

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포장용 끈을 끊어냈다.

그리고 신문의 1면을 보고, 잠시 손을 멈췄다.

그의 닳고 닳은 눈이, 굵고 선명한 고딕체로 박힌 헤드라인을 읽었다.

[단독] 前 국정원 거물 윤석호, 죽음 직전 의문의 메모 남겨… ‘미래 설계자들’은 누구인가?

그는 기사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오십 년간 이 자리에서, 세상을 뒤흔드는 기사들이 어떤 냄새를 풍기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오늘 아침, 정론일보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것이다.

그는 신문 한 부를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펼쳐놓았다.

마치 그날의 첫 제물을 제단 위에 올려놓는 사제처럼.


오전 7시, 2호선 지하철 안.

증권사 직원인 김대리는 피곤한 눈을 비비며 스마트폰으로 정론일보의 앱을 켰다.

밤사이 미국 증시를 확인하는 것이 그의 아침 일과였다.

하지만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주가 지수가 아니었다.

메인 화면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그날의 1면 기사였다.

그는 처음에는 코웃음을 쳤다.

‘또 무슨 음모론이야. 먹고살기도 힘든데.’

하지만 기사를 읽어 내려갈수록,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기사에는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가득했다.

‘계층 이동성의 체계적 동결’, ‘자산 가치의 인위적 재편’.

어려웠지만, 이상하게도 설득력이 있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아무리 발버둥 쳐도 오르지 않는 월급과 미친 듯이 치솟는 아파트 가격 사이에서 느꼈던 절망감의 이유를, 이 기사가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실패가, 나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들’의 거대한 계획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생각은 끔찍했지만, 동시에 달콤한 위안이 되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기사 링크를 동기들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 공유했다.

‘이거 봤어?’

그가 보낸 짧은 메시지 밑으로, 순식간에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김대리만이 아니었다. 그가 타고 있는 2호선 2314호 칸, 수십 명의 승객들이 저마다의 작은 화면 속에서 똑같은 단어를 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사람들의 얼굴 위로, 푸르스름한 액정 불빛이 유령처럼 떠다녔다. 대학생, 중년의 직장인, 시장에 가는 아주머니까지. 그들의 화면 속에는 예외 없이, ‘미래 설계자들’이라는 여섯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심장을 흐르는 지하철 안에서,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빛의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같은 시각, 도로 위 버스 안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창밖의 풍경 대신, 손안의 작은 화면이 들려주는 더 자극적인 이야기에 완전히 매혹되어 있었다.


세상에 이름이 던져지는 방식은, 언제나 그렇게 사소하고 빨랐다.


정론일보 온라인 뉴스 편집국.

대형 스크린에는 실시간 기사 조회 수가 그래프로 표시되고 있었다.

이수연의 기사는, 발행된 지 한 시간 만에 수직으로 치솟는 붉은색 막대그래프를 그리고 있었다.

동시 접속자 수는 창사 이래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다.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부터 3위까지는, ‘윤석호’, ‘미래 설계자들’, 그리고 ‘이수연 기자’의 이름이 차지했다.


“미쳤다, 미쳤어!”

온라인 팀장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다.

편집국은 축제 분위기였다.

전화벨은 쉴 새 없이 울렸고, 방송사에서는 연이어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이수연은 그 모든 혼돈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책상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동료들의 축하에도 희미하게 미소만 지을 뿐, 스크린에 떠 있는 대중의 반응을 분석하고 있었다.


주식 투자 커뮤니티에서는, 특정 기업들이 ‘미래 설계자들’의 자금줄이라는 섣부른 분석과 함께 ‘지라시’가 돌기 시작했다.

정치 커뮤니티에서는, 여당과 야당 지지자들이 서로 상대방이야말로 ‘미래 설계자들’의 하수인이라며 이전보다 더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강남 엄마들의 인터넷 카페에서는, 살인적인 입시 경쟁이 아이들의 영혼을 파괴하기 위한 ‘그들’의 계획이라는 주장이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었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불길은, 순식간에 오프라인의 현실 세계로 번져나갔다. 여의도의 한 대형 증권사 사무실. 아침 9시 30분, 모두가 업무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지만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대신, 사무실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낮은 목소리로 웅성거리는 소리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탕비실에서는 한 직원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쩐지 이상했어. 지난달에 그 바이오주 움직이는 게 꼭 누가 위에서 장난치는 것 같았거든. 이게 다 그놈들 소행이었어.” 그의 말에, 다른 직원들이 동조했다. “맞아, 우리 회사가 작년에 따낸 그 국책 사업 말이야… 그거 따낼 때 석연치 않은 점이 좀 있었잖아. 이것도 관련 있는 거 아니야?” 의심은 전염병처럼 퍼져, 어제의 동료를 오늘의 잠재적인 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이수연은 깨달았다.

사람들은 그녀의 기사를 읽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녀의 기사라는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의 불안과 공포, 그리고 분노를 보고 있었다.

‘미래 설계자들’이라는 이름은, 이제 그녀의 손을 떠났다.

그것은 세상 모든 불행의 이유를 담을 수 있는, 텅 비고도 완벽한 그릇이 되어, 사람들 각자의 이야기 속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같은 시각, 국회로 향하는 검은색 세단 안.

강태준은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는 신문을 읽지 않았다.

그는 비서관이 요약해주는 온라인 여론 동향과, 각계의 반응을 들을 뿐이었다.

그의 입가에는, 펜트하우스에서 이수연에게 보여주었던 그 차가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다.

아니, 계획 이상이었다.


그리고, 서울의 또 다른 곳.

어느 대학의 작은 연구실.

차지원은 아침 강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인터넷 뉴스를 확인하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몰랐다.

자신이 7년 전, 외로운 상상력으로 낳았던 그 괴물이,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와 첫 번째 울음을 터뜨렸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울음소리가, 곧 자신의 삶을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이수연은 편집국 대형 스크린을 가득 채운 ‘미래 설계자들’이라는 단어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 이름은 더 이상 이수연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세상의 것이 되었다.

사람들의 분노와 불안을 담는, 텅 비고도 완벽한 그릇이 되어.

첫 번째 돌은 던져졌다.

그리고 그것이 일으킨 파문은, 이제 그 누구도 멈출 수 없었다.


3. LA의 증폭기, 빅터


대한민국의 아침이 밝아올 때,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시간은 저녁을 향해 가고 있었다.

코리아타운의 한 낡은 아파트.

그곳의 반지하 스튜디오는, 창문이 없어 낮과 밤의 구분이 무의미했다.

방 안은 언제나 여러 개의 모니터가 뿜어내는 인공적인 빛과, 컴퓨터 팬이 돌아가는 낮은 소음, 그리고 식어빠진 피자와 에너지 드링크의 시큼한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이 바로, 유튜브 채널 ‘진실의 방패’가 제작되는 심장부이자, 빅터의 왕국이었다.


빅터는 자신의 낡은 게이밍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한국의 주요 뉴스 사이트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턱에는 며칠간 깎지 않은 거뭇한 수염이 지저분했다.

그는 다음 방송에 쓸 ‘재료’를 찾는 중이었다.

마치 쓰레기 더미를 뒤져 쓸 만한 고철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그의 비즈니스 모델은 간단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에, 미국에서 유행하는 각종 음모론을 버무려, 더 자극적이고 거대한 이야기로 재포장하여 판매하는 것.

그의 주 고객은 세상에 대한 막연한 분노와 불안감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의 상품은, 그 모든 불안감을 설명해 줄 단 하나의 명쾌한 ‘적’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에이, 시시하네. 맨날 똑같은 정치인 싸움 얘기뿐이야.”


그는 혀를 차며 마우스 휠을 내렸다.

그의 방송은 최근 조회 수가 정체 상태였다.

시청자들은 더 새롭고, 더 거대한 악당의 등장을 원하고 있었다.


그의 눈이 정론일보의 헤드라인에 멈췄다.

처음에는 관심 없었다.

정론일보는 그가 평소 ‘기득권의 나팔수’라고 조롱하던, 가장 재미없는 신문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헤드라인에 박힌 이름이, 그의 시선을 붙들었다.


[단독] 前 국정원 거물 윤석호, 죽음 직전 의문의 메모 남겨… ‘미래 설계자들’은 누구인가?


‘미래 설계자들…?’


이름이 신선했다.

그는 흥미가 동해, 기사를 클릭했다.

그의 눈이, 이수연이 밤새도록 빚어낸 문장들을 게걸스럽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층 이동성의 체계적 동결’, ‘자산 가치의 인위적 재편…’


그는 이수연이 사용한 지적인 완곡어법의 깊은 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그 단어들이 풍기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것은 평범한 기사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언어다.'


그리고 마침내, 기사 중간에 첨부된 메모의 사진을 보았다. 컴퍼스와 눈동자가 결합된 상징.

빅터는 자신도 모르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런 씨… 진짜였어.”


그는 흥분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가 지난 몇 년간, 자신의 방송에서 수없이 외쳤던


‘그림자 정부’의 실체가, 마침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그는 이수연 기자가 자신과 같은 ‘진실의 동지’이자, 마침내 기득권 내부에서 터져 나온 용기 있는 내부 고발자라고 확신했다.

그는 깨닫지 못했다.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진실의 단서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완벽하게 겨냥하여 설계된, 가장 정교한 ‘미끼’라는 사실을.


그는 즉시 행동에 들어갔다.

이것은 그냥 특종이 아니다.

이것은 자신의 채널을 한 단계 도약시킬 황금 티켓이었다.


그는 스튜디오의 조명을 켜고, 카메라 앞에 앉았다.

포토샵을 열어, 10분 만에 새로운 방송 썸네일을 만들었다.


청와대 사진 위에 ‘미래 설계자들’의 상징을 조악하게 합성하고, 그 위로 ‘드디어 정체가 드러났다!’라는 붉은색 글씨를 박아 넣었다.


그는 ‘라이브 방송 시작’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십니까! 진실의 방패, 빅터입니다!”


카메라가 켜지자, 그의 눈빛과 목소리는 조금 전의 피곤한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신념에 가득 찬 선지자의 것으로 변했다.


“여러분! 오늘, 마침내 역사의 날이 밝았습니다! 제가 지난 수년간 외롭게 외쳐왔던 진실! 대한민국을 뒤에서 조종하는 그림자 세력의 존재가, 마침내 주류 언론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그는 이수연의 기사를 화면에 띄우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번역’하고 ‘증폭’하기 시작했다.

그는 신화 속의 키메라와 같았다.

이수연의 기사라는 사자의 몸통에, 자신이 평소 주장하던 QAnon 음모론이라는 염소의 머리를 붙이고, 미국발 금융 자본이라는 뱀의 꼬리를 달아, 전혀 새로운 괴물을 창조해냈다.


“여러분, 이수연 기자가 말한 ‘계층 이동성의 체계적 동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바로 저놈들이 여러분과 여러분 자식들이 더 이상 성공할 수 없도록,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는 뜻입니다!”


“‘자산 가치의 인위적 재편’이요? 어렵게 들리십니까? 간단합니다! 여러분의 지갑을 털어서 자기들 배를 불리고 있다는 겁니다! IMF 때처럼 말입니다!”


그는 이수연의 기사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사용했다.

그녀의 정교한 논리는, 빅터의 입을 거치면서 훨씬 더 단순하고, 폭력적이며, 선동적인 구호로 변했다.

그의 방송 채팅창은 시청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으로 폭발하고 있었다.


[빅터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


[드디어 때가 왔다!]

[정론일보 이수연 기자님을 지켜야 합니다!]


빅터는 방송을 하는 내내 희열을 느꼈다.

그는 더 이상 LA의 반지하 방에 홀로 앉아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국경을 넘어, 수만 명의 사람들을 하나의 신념 아래 뭉치게 만드는, 거대한 군중의 지휘자였다.


그는 자신이 지금, 역사를 만들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방송이 끝났다.


그는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모니터에는 실시간 시청자 수와, 방금 방송으로 쏟아져 들어온 후원금 액수가 떠 있었다.

기록적인 숫자였다.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옆에 놓여 있던 식어빠진 피자 조각을 집어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몰랐다.

자신이 방금 퍼뜨린 그 ‘진실’이, 사실은 자신보다 훨씬 더 영리한 건축가가 설계한 거대한 극장의 일부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그 극장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춤추는 광대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수연이 던진 돌은, 이제 태평양을 건넜다.

그리고 빅터라는 이름의 거대한 증폭기를 만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다시 대한민국을 향해 되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통제 불능의 서막이었다.




4. 뉴스 속의 데자뷔


사흘이 지났다.


차지원의 모든 생각은 그날 오후, 자신의 연구실 모니터 앞에서 멈춰버렸다.


그녀는 며칠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커튼은 굳게 닫혀 있었고, 집 안의 공기는 그녀의 절망처럼 무겁고 탁했다.

그녀는 잠을 자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자신이 썼던 문장들이 활자가 되어 날아와 온몸을 찌르는 것 같았다.


‘미래 설계자들’. 그 이름은 이제 그녀의 창작물이 아니었다.

온갖 TV 시사 프로그램과 인터넷 게시판을 떠도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위험한 이름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미친 듯이 모든 뉴스와 게시물을 확인했다.

자신이 빚어낸 괴물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자라나고 변이하는지를 공포에 질려 지켜보았다.

이수연이라는 기자는 연일 후속 기사를 터뜨렸다.

그녀의 기사는, 차지원의 소설 『그림자 연극』의 플롯을 거의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문체는 완전히 달랐다.

차지원이 썼던, 서툴지만 정직하고 직설적인 문장들은, 이수연의 손을 거치면서 교묘하고 현학적인 완곡어법으로 재포장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수연이 자신의 글을 훔쳤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어떻게?

7년 전, 딱 한 번 투고했던 그 미스터리 신인상 공모전에서 유출된 것일까?

아니면, 거의 활동도 없던 그 낡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누가, 왜?'


그녀의 머릿속은 수만 개의 질문으로 뒤엉켜,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다.


남편 김민준은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아내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둑맞은 것에 분노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힘내, 자기야. 내용 증명이라도 보낼까? 표절 소송이라도 알아봐?”


그의 위로는 차지원의 귀에 닿지 않았다. 이건 단순한 표절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자신의 상상력이 현실 세계의 누군가를 파멸로 또는 죽음으로 내몰았을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죄책감의 문제였다.


그녀는 소파에 웅크린 채, 벽에 걸린 남편의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 걸린, 아스날의 붉은색 머플러를 보았다.


‘Victoria Concordia Crescit’.


승리는 조화를 통해 성장한다.

그녀가 믿었던 그 아름다운 문장이, 지금 그녀가 마주한 이 광적인 세상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저녁이었다.

그녀를 짓누르던 무력감의 늪에서, 아주 작은 분노의 불씨 하나가 타오르기 시작한 것은.


김민준이 거실 TV로 저녁 뉴스를 보고 있었다.

시사 평론가들이 모여, ‘미래 설계자들 신드롬’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패널의 구성은 흥미로웠다.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중견 정치학 교수와, 보수 여당의 3선 중진 의원이었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것은 진보 진영의 박찬호 교수였다.

그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희열과 조소가 뒤섞여 있었다.


“저는 이 현상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몇 년 동안 저희 진보 진영에서 보수 기득권의 구조적 부패를 지적할 때는 ‘이념 공세’라며 귀를 막던 분들이, 이제는 보수 언론의 심장부인 ‘정론일보’의 기사를 통해 그 실체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에서 터져 나온 양심선언입니다! 이수연 기자의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는 이수연의 기사를, 보수 전체의 부패를 증명하는 완벽한 증거로 활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편에 앉은, 보수 여당의 원로인 권익현 의원의 얼굴은 분노로 굳어 있었다.

그는 이수연의 기사를 옹호하는 대신, 정면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지금 제정신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저 기사야말로 우리 보수 진영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려는 가장 교묘하고 악랄한 공작입니다! 출처 불명의 메모 하나와, 작자 미상의 소설 나부랭이를 엮어서 만든, 전형적인 가짜 뉴스 아닙니까!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특정 세력이 언론을 이용해, 당내의 건전한 경쟁을 흙탕물 싸움으로 만들려는 이 비열한 행태를 똑똑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권익현 의원은 ‘원로 그룹’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을 겨냥한 것임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있었다.

진보 논객은 신이 나서 받아쳤다.


“의원님, 그 특정 세력이란 게 누굽니까? 이제 와서 내부 총질 운운하며 본질을 흐리는 것이야말로 기득권의 오만입니다! 정론일보의 기사는 ‘계층 이동성의 체계적 동결’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이 진실을, 어떻게 부정하실 겁니까!”


스튜디오의 실시간 여론조사 그래프는, 진보 논객의 주장에 압도적으로 쏠려 있었다.

보수 원로의 ‘내부 권력 투쟁’이라는 복잡한 항변은, ‘부패한 기득권’이라는 진보 논객의 단순하고 강력한 프레임 앞에서 힘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토론의 사회자가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튜버 ‘빅터’, 즉 ‘진실의 방패’ 채널에서도 이 문제를 긴급 속보로 다뤘다고 합니다. 그는 ‘미래 설계자들’이 미국의 ‘딥 스테이트’, 즉 QAnon과 연결되어 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제기했는데요…”


차지원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화면 자료로, 빅터의 조악한 스튜디오와 그의 선동적인 얼굴이 나타났다.

그녀가 소설 속에서, 음모론이 어떻게 대중을 파고드는지에 대한 예시로 상상했던 바로 그 모습.

가장 저급하고,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실을 왜곡하는 바로 그 방식.

그녀의 상상력이었던 것이, 이제 국경을 넘어 수만 명을 선동하는 실제의 힘이 되어 있었다.


이건 더 이상 문학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현실의 문제였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를 짓누르던 무력감의 껍질에, 마침내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분노가, 죄책감을 밀어내고 그녀의 안을 채웠다.


'이건 내 괴물이다.

내가 세상에 풀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이걸 잠재워야 할 책임도 나에게 있다.

카산드라는 비극적인 예언자였지만, 그녀는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지라도, 그녀는 끝까지 외쳤다.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이니까...'


차지원은 자신의 작은 책상으로 향했다.

그녀는 노트북을 열고, 하얀 워드 파일을 띄웠다.

그녀는 이수연처럼 거짓을 창조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아는 유일한 무기, ‘진실’과 ‘분석’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녀는 이 거대한 거짓 서사가, 왜 이토록 매력적인지를 해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자신의 첫 번째 외침을, 문장으로 쏘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수연의 기사 한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했다.


<언론은 ‘계층 이동성의 체계적 동결’이라는 말을 쓴다. 이 지적인 표현의 껍질을 벗기면, 그 안에는 ‘가진 자들이 사다리를 걷어차, 이제 이 땅에서 가난한 자는 영원히 가난하게 살라는 뜻이다’라는, 단순하고도 폭력적인 메시지가 숨어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떠도는 ‘미래 설계자들’이라는 유령의 실체는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 우리의 불안을 먹고 자라나는 거대한 서사(敍事)다.


움베르토 에코가 지적했듯, 우리 일반 대중은 이해할 수 없는 혼돈보다 차라리 명쾌한 음모를 선호한다. 나의 실패가 복잡한 사회 구조 때문이 아니라, 저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악한 ‘그들’ 때문이라고 믿는 것은 달콤한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미래 설계자들’은 우리 시대가 만들어낸 가장 편리하고 정교한 ‘희생양’이다. 우리는 그 유령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며, 정작 우리 사회의 진짜 문제를 들여다볼 용기를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우리를 구속하는 것이 과연 저 유령인가, 아니면 그 유령을 만들어낸 우리 자신의 두려움인가. 이 지적인 유희를 멈추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 집단적 광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이수연의 완곡어법을, 자신이 원래 썼던 날것의 언어로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한나 아렌트와 움베르토 에코를 인용하며, 이 거대한 거짓말이 어떻게 현실보다 더 진짜처럼 느껴지게 되는지, 그 위험한 메커니즘을 하나씩 분석해 나갔다.

그녀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글쓰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싸움이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는 마침내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었다.

A4 두 장 분량의 짧은 글이었지만, 그 안에는 그녀의 모든 지성과 분노, 그리고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이 글을 어디에 보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정론일보 같은 거대 언론사는 절대 이 글을 실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가끔 기고하던, 작지만 정직한 목소리를 내는 온라인 인문학 저널의 편집장에게 메일을 보냈다.


제목은, [기고: ‘미래 설계자들’이라는 이름의 유령에 대하여.]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녀는 탈진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동시에, 아주 오랜만에 해방감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비록 그 외침이 세상의 거대한 소음 속에 묻혀버릴지라도.


그녀는 어두운 모니터 화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더 이상 겁에 질린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막, 트로이의 성벽 위에 올라선 카산드라였다.


자신의 운명과 싸우기로 결심한, 단 한 명의 예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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