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다지 Jan 07. 2024

심리검사 분석 결과

최고의 자학 '완벽주의' ㅣ 여섯 번째 시간 - 2

      완벽주의는 최고의 자학이다.

                          -도덕경. 노자-



상담사 : 심리검사 분석 결과는 현재의 담소님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담소님이 검사에 답변하신 단편적인 부분들을 토대로 해석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MMPI-2, HTP, 문장완성검사와 상담 내용을 종합해서 분석했습니다. 분석 결과를 맹신하기보다는 참고용으로 들어주세요.

담소 : 네. 알겠습니다.

상담사 : 권위적인 사람들에게 억압되고 통제되는 상황을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직장 상사처럼 권위적인 사람들과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완벽하고 실수 없이 잘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도 많은 것 같아요. 생각이 지나치게 많아지게 되고 머리가 복잡하여 무언가를 결정하고 선택할 때 어려움을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중요한 사항 위주로 생각하고 지나치게 세부적인 것이나 사소한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훈련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생의 초기 중요한 시기부터 안정적이고 친밀한 돌봄과 애정이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면서 애정에 대한 결핍감이 상당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더불어 자신에 대한 존중감과 자신감도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부모님과 일찍 사별하고 성장하면서 애정에 대한 결핍감이 증가했고 애정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 이상으로 완벽하게 처리하고자 노력해 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노력에 대해서 성실함을 인정받기도 한 것으로 보이며 타인에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 자신의 부족한 점이나 단점 등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많습니다. 따라서 실수하지 않고 완벽하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다 보니, 평가받는 상황과 낯설고 새로우며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느끼는 긴장감과 불안이 많아서 내재되어 있는 자원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억압과 부인이 많아서 긍정적인 감정만 표현하고 있으나 내면에는 긴장감과 불안감, 애정에 대한 결핍감과 불충분감, 적대감 등의 감정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감정에 대해서 솔직하게 직면하고 바라보면서 자신이 경험하는 감정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더불어 감정 경험에 대해서 솔직하면서도 적응적이며 현실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도록 노력하는 것 역시 중요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담소 : 네. 맞아요. 강제적인 것을 싫어해요. 작은 언니가 강제로 시키는 것, 시키는 것을 하지 않았을 때 자주 싸웠던 영향이 큰 거 같기도 해요. 수용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많이 대들고 싸웠거든요.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을 억압한다고 하셨는데요. 이건 좀 복잡한 것 같아요. 저는 부정적 감정은 잘 캐치하고 표현도 잘하거든요. 이번 상담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원하는 것은 잘 표현하지 않고 억압한다는 거예요.


나의 진짜 욕심을 드러내는 것이 마치 나의 약점이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 싫어요. 나의 욕구나 욕망, 욕심을 표현하는 것이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불쌍한 거 같아요.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고, 생각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그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거든요. 


가령 나 혼자라면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과 연결된 상황에서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 거 같아요. 원하는 마음이 작다면 가볍게 말할 수 있지만, 정작 원하는 마음이 너무 클 때는 말을 못 꺼내요. 


그런데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했던 원인은 그동안 내가 ‘부모님의 사랑’을 원했지만, 억압했던 원인과 동일한 것 같아요.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고,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바라는 것은 미련하고, 무지하며, 어리석은 것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이제는 나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장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한 감정 ‘부모님의 사랑을 원한다’라는 것을 인정했잖아요. 정말 들춰보고 싶지 않았던 감정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으니 앞으로는 모든 감정을 인정하고 좀 더 솔직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상담사 : 담소님이 원했던 상담 목표가 이루어진 것 같아요. 이제 상담 목표를 변경해야 할 것 같은데요. 

담소 : 상담 목표는 잘 모르겠어요. 지금 당장은 많이 후련하고 자유로워요. 선생님이 보시기에 저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상담사 : 제가 얘기하는 것은 담소님께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담소 : 그래도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을 선생님께서 보고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상담사 : 저의 의견이 듣고 싶으세요?

담소 : 네

상담사 : 저의 의견은 심리검사 해석에 녹여져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담소 : 아아… 네. 그렇죠. 이미 얘기해 주셨죠…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얘기했다. 나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다'라고 치부해 버리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갑자기 부끄러웠다.

또 원하는 것을 인지하는 감정은 긍정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감정이 숨어 있으니 부정적 감정이고, 부정적 감정에 솔직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상담사님의 심리검사 분석 결과가 머릿속에서 되뇌어졌다.


담소 : 혹시 심리검사 분석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상담사 : 분석지는 드릴 수 없습니다.

담소 : 아… 네…


유로로 상담료를 지불했다면 분석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무료상담이었기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기로 했다. 무료라는 이름하에 나는 나의 권리를 주장할 권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사 : 요즘 힘들거나 괴로운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담소 : 요즘 힘든 건… 글쓰기예요.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그냥 흘러가는 날들이 많아요. 왜 이렇게 글이 써지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상담사 :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드세요?




담소 : 외로움이요. 저는 감정에 관해서 연구하고 있고, 임상심리사 공부도 하고 있고, 글도 쓰고 있어요. 가끔은 감정 연구나 공부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답답한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주변에 글 쓰는 사람이나 심리학 관련 공부를 하는 사람이 없어요. 또 저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지금 내가 하는 것들은 어떠한 성과가 바로바로 나타나지 않거든요. 그래서 힘들고 답답할 때 나 혼자라서 힘들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데서 오는 외로움을 느껴요. 답답한 마음을 혼자 삭여야 해서 또 외롭고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현재의 외로운 감정을 대화로 나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요. 대화의 끝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저 나 힘들다고 어리광 부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무엇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고 답답한 마음을 토해내고 싶은 욕구일 뿐이죠.


하지만 지금 느끼는 외로움은 내가 나의 길을 가고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현재상황에 감사해야 할 일이기도 하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내가 스스로 감내해야 할 감정의 무게라고 생각해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나갈 감정이고, 견뎌내야 할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건 다음 상담 목표로 할만한 것은 아닌 거 같아요.


지금은 딱히 목표하고 있는 것은 없어요. 하지만 평생의 과업으로 생각하는 것은 한 가지 있어요. 속박 없이 자유로운 삶을 사는 해탈이요. 감정적 속박 없이, 경제적 속박 없이, 인간관계의 속박 없이 살아가는 거요. 내가 자유롭게 살아가는데 제약이 되고, 한계를 만드는 것들을 발견하여 해결하고 싶어요. 


상담사 : 그러셨군요. 그러면 담소님의 다음 상담 목표는 [자유롭게 살아가는데 제약이 되고, 한계를 만드는 것들을 발견하여 해결하기]로 하면 될까요?

담소 : 네. 좋아요. 

상담사 : 오늘 상담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주 목요일 11시 괜찮으세요?

담소 : 네. 좋아요.

상담사 : 그럼,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완벽주의는 최고의 자학이라고 하는데 자학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겠다. 상담사님이 심리검사 분석 결과에서 얘기해 주신 것처럼 중요한 사항 위주로 생각하고 지나치게 세부적인 것이나 사소한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훈련할 것. 모든 감정에 대해서 솔직하게 직면하고 바라보면서 자신이 경험하는 감정을 수용하는 것. 나의 감정 경험에 대해서 솔직하면서도 적응적이며 현실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도록 노력한다면 조금은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전 10화 사랑은 자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