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월 Oct 24. 2021

월요병을 이겨내는 비법

이 비밀까지 알게 되었다고?

대학교 3학년 때 직장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처음으로 인턴십을 하게 됐는데, 메일을 보내며 회사원의 말투를 쓰는 것부터 동료들과 진지한 태도로 업무에 집중하는 것까지 모두 매력 있었다. 한껏 어른 흉내를 냈던 외부 업체와의 미팅도 즐겼다. 야근을 할 때면 주변에 앓는 소리를 하며 하소연을 늘여놓았지만 내심 밤늦게까지 업무에 빠져있는 나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선배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을 때면 우쭐해지는 감정을 숨기기 어려웠다. 게다가 처음으로 백만 원 넘짓한 돈까지 벌었으니 직장인이란 얼마나 좋은 것인가. 남은 학기를 마무리하러 학교에 돌아가는 것에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


우리는 출근을 꿈꿨다.

정규직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근하는 날을 꿈 꿔왔다. 힘들다던 취업난은 남의 일로만 생각했는데 첫 번째 시즌  광탈을 맛보며 취업이 점점 더 간절해졌다. 면접장에 들어가면 똑똑하고 멋진 친구들이 넘쳐나는데, 과연 내가 이들을 이기고 좁디좁은 취업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있는 날이 없었다. 취업이라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건지 의심스러웠고, 이렇게 취업을 못하고 나이를 먹을 바에야 멋지게 대학원이나 가야 하나 집안 사정을 계산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어디 하나는 꼭 될 거라는 선배들의 위로처럼, 진짜 최종 합격이라는 감격스러운 빨간 글씨를 보는 날이 왔다. 너무 기뻐서 몸을 움츠렸다 폈다 고개를 뒤로 젖혔다 몸을 부르르 떨다 발을 쾅쾅 구르기도 하며 한껏 합격의 행복을 만끽했다.


그런 신입에게도 월요병은 찾아온다.

직장에는 방학이 없다. 과제와 시험, 그리고 다양한 대외활동으로 빡셌던 대학교의 8학기들을 버틸 수 있던 비밀은 두 달에 가까운 방학에 있었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방학에 떠날 항공권을 끊어놓으면 기말고사 기간도 꽤 즐길만했다. 대학생의 방학은 참 특별했는데, 모두가 자유롭게 놀도록 허락해주는 특별함이 있었다. 다음 학기를 위한 준비기간으로 각종 학원 특강으로 가득했던 중고등학교의 방학과 대비적이다. 자유를 만끽하며 이것저것 하다 보면 두 달이라는 방학도 순식간에 끝나버리고, 왠지 이번 학기는 다시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충전감이 들기도 했다. 이런 충전감이 더 이상 채워지지 않을 때에는 휴학이라는 선택지도 있었으니, 되돌아보면 대학생활은 참 이상적이다.


출근하기 싫다.

어른의 세계에는 방학이 없다. 법적으로 주어지는 연차와 공휴일이 전부일뿐. 그마저도 영끌해서 1주일이 아마 가장 긴 방학이 아닐까. 가뭄에 콩 나듯 발견되는 휴가 시스템 속에서 직장인에게는 주말의 의미가 더 커진다. 늘어지게 잠도 자고 한껏 게으름도 피우며 보낸 주말이 지나가면 끔찍한 월요일이 다가와있다. 외면하고 싶은 월요일 출근길이다. 일요일 오후부터 출근이라는 근심이 서늘하게 들기 시작하고, 아쉬움에 잠에 드는 시간이 늦어지면 월요병은 더 강력하게 찾아온다.


월요일은 결국 지나간다.

월요일 오전에는 지난주에 처리하지 못한 업무들과 금주에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주말 동안 문제는 없었는지 파악하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월요병에 시달리는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나면, 나른 나른 잠이 오는 월요일 오후가 찾아오는데, 아 그래도 월요일이 절반이나 지나갔구나 위안하며 힘겨운 오후도 어찌어찌 보내본다. 역시 힘든 월요일이었어. 퇴근길에 수고한 스스로를 토닥이며 쓰러져 부족한 잠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점점 일주일 루틴이 생긴다.

화요일은 참 일하기 좋은 요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느 정도 몸도 평일에 적응했고 곧 쉬는 날이라는 기대감도 없이 차분하다. 어차피 내일도, 모레도 일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동료들도 동일한 바이오리듬인지 월요일보다 업무 문의도 많고 미팅도 많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휘리릭 지나가버리는 화요일이다. 수요일부터 주말에 대한 기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원어민 선생님이 매주 수요일마다 칠판에 'happy hump day!'라고 적어두며 가장 활기찬 모습이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hump는 낙타의 등처럼 지면에서 툭 솟아오른 곳을 의미하는데, 5일의 평일 중 솟아오른 그 지점에 왔다는 뜻이다. 목요일은 가끔 금요일보다도 더 설레는 기분을 준다. 하루만 더 일하면 휴일이야!라는 마약 같은 생각들이 나를 들뜨게 한다. 괜히 저녁에 친구랑 맥주나 한잔 하면서 밤늦게 까지 놀고 싶어 진다. 드디어 금요일이다. 나와 같이 동료들도 들떴는지 조금씩 집중력이 흐트러진 게 보인다. 금요일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새로운 업무를 시키는 경우도 거의 드물다. 손은 일을 하고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주말에 할 것들을 생각해본다.


주말이 또 온다.

도대체 주말이 언제 오는지 툴툴거리면서 보낸 다섯 번의 평일이었지만, 어라? 벌써 주말이 온 이 기분은 뭔지? 아주 천천히 오는 것 같기도 하고, 벌써 온 것 같기도 한 주말을 네 번 정도 겪고 나면 어느새 월급날이 찾아온다. 네 번의 월요일은 끔찍했지만, 통장에 찍힌 숫자들을 보니 꽤 버틸만한 월요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함이라는 무기.

일주일, 한 달. 빠르게 흘러가는 주기들을 겪으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월요병을 극복하는 방법을 깨닫는다. 그것은 바로 힘든 오늘 하루도 끝이 결국 끝이 날 것이고, 안 올 것 같던 토요일도 금방 온다는 사실에 대한 익숙함이다.  정말 출근하기 싫은 월요일도, 출근하고 뭐하다 보면 금방 퇴근하게 될 거라는 걸 알게 되면, 그다지 괴롭지도 않다. 퇴근길에 다시금, 정말 힘든 오늘도 끝이 나긴 했네. 하면서 스스로 칭찬해주는 퇴근길이 있기 때문이다. 취준생 때 상상하던 것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지만, 오늘도 출근을 할 수 있는 이유이다.


직장인 근육이 붙는다.

가기 싫은 헬스장도 트레이너 선생님과 한번 한번 약속을 지키다 보면 조금씩 근력이 생기는 것처럼, 직장생활에도 출근하며 근육이 생긴다. 단순히 힘든 월요일을 이겨내는 힘뿐만 아니라, 우리는 경험을 통해 직장생활을 지탱해주는 튼튼한 근육을 키운다. 팀장님한테 깨져서 수치심에 퇴사를 결심할 때에도, 이전에 비슷한 일을 이겨냈던 경험을 되뇌며 회사생활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목표를 할당받아서 막막한 순간에도, 지난번에 해냈던 것들을 생각하며 한발 한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월요일을 겪으며 주말이 온다는 것을 배우고, 월요일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는 것처럼, 매일의 회사생활은 앞으로의 사회생활을 지탱해줄 단단하고도 질긴 근육이 될 것이다. 익숙함. 그것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무기가 아닐까.

이전 08화 알람은 꺼둘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