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배가본드(VAGABOND) 12회를 보고...
이 글은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유의해주십시오.
요즘 드라마 ‘배가본드(VAGABOND)’를 보고 있다.
이 드라마는 내게 ‘정의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정의로운 것 인가?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가 사람이 자리(리더십)를 이끌어내는가? 우리의 인생에서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조금은 철학적이지만 이 드라마는 내게 이런 의문을 선사한다. 그래서 다소 인물들의 감정선이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모두 감안하고 본다. 그것도 아주 즐겨보고 있다.
그렇게 ‘배가본드 12회’를 보다가, 가슴속에서 울컥하며 천불이 올라와서 죽는 줄 알았다.
* 여기서 잠깐 드라마 내용을 설명하자면,
주인공(차달건, 전직 스턴트맨, 이승기 분)은 비행기 사고로 조카를 잃는다. 주인공은 이 비행기 사고가 테러였음을 알게 된다. 테러의 배후를 밝히고 조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고자, 국정원 요원(고해리, 배수지 분)과 연합하며 사건을 풀어나간다. 그러나 일개 개인이 맞서기에는 악의 무리가 너무나 막강하다. 테러의 배후에는 군산 복합체(존 앤 마크사)에 가까운 조직과 로비스트, 정부까지 개입되어있고, 거대 세력은 주인공 무리가 진실의 법정에 서는 것을 막기 위해 공권력(판사의 판결을 빨리 앞당기려 하고, 무장해제한주인공 무리를 모두 사살하려고 시도, 주인공 무리의 법정 출두 장면을 취재하려는 언론사를 탄압하여 실시간 촬영 중이던 헬기를 돌림 등) 킬러 등을 총동원해 진실의 입을 막아버리려 한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 차달건과 같이, 소중한 사람을 잃은 유가족들은 어느 쪽(두 비행기 회사 중에서 테러의 배후는 존앤 마크사이지만 유가족들은 다이나믹사의 기체 결함으로 비행기가 추락했다고 알고 있음)을 믿어야 할지 모르는 혼돈 상태에 빠진다.
몇몇 유가족들은 주인공 무리에 쏟아지는 총알을 온몸으로 막는다. 사살명령을 저지하기 위해 영업용 트럭으로 경찰의 총탄을 막고, 킬러의 살해 시도를 눈치채고 에워싸며 맨 몸으로 막는다. 법원에 주인공 무리가 도착하기 전까지(누구의 말이 맞는지) 혼돈에 빠져 있던 그들은, 무장해제한 사람을 무지막지한 총으로 겨누는 비 정상적인 상황을 두 눈으로 보면서, 비로소 진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이 나쁜 놈들아! (주인공 무리를 막고자 하는 국정원과 경찰 등을 향한)” 하는 한 여자의 외마디 비명이 신호가 되어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어떤 두려움도 없이 주인공 무리를 지켜내기 시작한다. 너무 많은 민간인이 달라붙어 이들을 엄호하자 킬러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그렇게 주인공은 진실의 방 앞으로 한 걸음 더 가까워져 갔다.
나는 이들(유가족과 경찰, 피해자와 가해 권력의 구도)의 몸싸움과 주인공의 참담한 시선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던 선조들과 군부정권 아래서 희생된 영혼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무언가 지켜낸다는 것은 숭고하다. 그들의 모습이 그러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한다. 누군가의 노고, 누군가의 희생, 누군가가 밝혀낸 진실의 힘으로, 용기로, 두려움 없는 발걸음으로 나아간 길이 훗날의 나를 살게 한다.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이뤄낸 기적이다. 내 일상의 편안함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받은 선물이고, 덤이다. 선물에는 보답을 해야 하고, 덤에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내가 이 사회에 어떻게 보답하고 어떻게 대가를 치러나가야 할 것인지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다.
'타인의 중병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에 더 아파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나는 이 드라마의 결말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이기심을 거두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않고 있는, 않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격려의 메시지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마치 공기처럼 도사리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한다.
***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 불면증 오디오클립 '책 읽다가 스르륵'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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