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인들의 도시
니체 읽기(14), 10월 19일 단상
'나와 눈을 마주친 그대 최고의 인간들이여! 내가 그대들을 의심하면서 몰래 웃음 짓는 것은 그대들이 나의 초인을 악마라고 부를 것이라고 예감하기 때문이다!' - 니체
그의 수난
말안장에서부터 포승줄은 길게 늘어져 손목을 휘감고 있다. 얇은 거죽을 허리에 두른 게 전부인 그의 몸은 생채기와 피멍으로 시퍼렇게 변했다. 눈두덩이는 부풀어있고, 오른쪽 두피는 찢어진 채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져 피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는 절뚝거리며 말의 보폭을 따라가다 쓰러진다. 일어나려다 다시 넘어지고, 옆으로 누운 채 말에 끌려다닌다. 흙먼지가 일어나며 그의 살이 사정없이 쓸려나간다. 고통을 호소하지만 누구도 듣지 않는다. 잠시 후 말이 멈춘다. 날 선 채찍이 날아와 등에 꽂히자 활어처럼 그의 몸은 들썩인다. 흙먼지와 피땀이 엉긴 틈으로 붉은 살점이 터져 나온다.
한낮의 태양은 군중이 모인 광장을 비추고 있다. 날개를 활짝 펼친 독수리 문양의 깃발이 중앙 광장 가운데 솟아 있다. 마차가 지나가는 길에 늘어선 사람들은 흥분과 긴장이 교차된 표정이다. 뒤쪽으로 갈수록 무심한 표정으로 서있는 이들도 몇몇 보인다. 중앙에 네 명의 병사가 나와 깃발 옆으로 도열했다. 힘찬 나팔소리가 울린다. 군중은 무의식적으로 깃발을 올려다본다. 성벽에서부터 늘어진 긴 그림자는 광장 대부분을 덮었다. 사람들의 얼굴에 검은 자국이 드리워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묶은 말이 광장 으로 들어선다. 이상하게도 끌려가는 이는 그림자가 없다.
말인들의 군상
기다렸다는 듯 광장 안에 있던 이들이 흥분하기 시작한다. 가시 돋친 욕설이 사방에서 쏟아진다. 독화살처럼 날아온 가래침이,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와 함께 볼을 타고 진득하게 흘러내린다. 사나운 손과 묵직한 발길질은 허공을 관통하여 살에 부딪힌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 그를 찢어발기기라도 할 것처럼 증오로 가득 차 있다.
갑자기 날아든 주먹만 한 돌이 그의 몸을 헤집는다. 왼쪽 갈비뼈가 부러지며 큰 생채기를 내었다. 그는 비명소리도 내지 못하고 쓰러진다. 일어서지도 못하는 희생양을 향해, 군중의 폭언은 계속된다. 그도 알지 못하는 조상으로부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싸잡아 저주한다. 팔을 딛고 일어서려는 그를 향해 무자비한 채찍은 날아든다.
그들의 표정은 험악하나 어느 때보다 활기에 차있다. 화형식은 유일하게 허용된 광란의 축제다. 교리가 허용하지 않는 육체적 쾌락은 가장 율법적인 순간에 만끽된다. 종교재판이 그들에게 주는 삶의 활력은 축제 없는 축제와 같다. 그것은 재앙의 아름다움이며 부정성의 에로티즘이다.
희생 제물에게 행해지는 폭력은 그들의 맹목적 신앙에 비례한다. 강렬하게 행사될수록 구원의 순간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노동과 일상에서 느껴보지 못한 고양된 감정은 마지막 남은 부끄러움마저 던져버린다. 그들의 숨겨진 욕구는 가감 없이 드러난다.
희생양을 저주하며 축복받고, 그를 폭행하며 사랑에 다가선다. 비로소 가장 부정적 외양을 취하는 의식은 가장 종교적 순간으로 수렴된다. 온갖 의무로 점철된 인생을 대리하는 희생제물을 죽임으로 그들은 체제의 바깥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순간 지배층에 대한 원망은 완전히 일소된다. 그들은 비로소 자신의 일부를 되찾는다. 붉은 옷을 입은 사제는 단상에 앉아 슬며시 미소 짓는다.
'아, 나는 이 최고이며 최선인 자들이 지겹다. 그들의 높이에서 나는 저 위, 저 밖, 저쪽으로 벗어나 초인에 이르기를 열망했다!'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