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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Feb 26. 2023

스물하나 일기

사춘기와의 이별

얼마 전 큰딸이 글을 하나 보내주었다. 제목은 "스물하나 일기"... 큰딸은 2년 전에도 "열아홉 일기"를 읽어보라며 보내줬었다.



큰딸은 사춘기를 제법 크게 앓았다. 큰딸의 손목엔 아직도 사춘기적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있으니 "앓았다"는 표현이 잘못된 표현만은 아닐 것이다. 사춘기를 앓는 딸에게 아빠가 해 줄 수 건 그저 곁을 지켜주는 일뿐이었다.


큰딸은 언젠가부터 기울어진 비탈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난 딸에게 아빠가 걷는 평지로 올라오라며 말렸지만, 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난 딸에게 손을 내밀었다. 처음엔 내 손을 뿌리치던 큰딸도 비탈의 기울기가 심해지자 내 손을 잡기 시작했다. 내가 손을 놓으면 큰딸은 비딸 아래 벼랑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큰딸이 고집스럽게 걷던 그 길은 어쩌면 내 편견이 만들어낸 비탈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대로, 큰딸은 큰딸대로 그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평지를 걸었을 뿐인데, 서로 비탈로 여겼던 것은 아닐까? 내 손을 뿌리치던 큰딸이 결국 손을 잡아준 것도 어쩌면 아빠가 비탈 아래 벼랑으로 떨어질 것 같아 잡아준 것이었는지도...


아빠인 내가 걸었던 길은 "경험의 평지"였을 것이다. 내 눈에 경험하지 않은 길은 모두 비탈처럼 느껴졌으리라. 큰딸은 큰딸대로 그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평지를 걸었을 것이다. 반대로 큰딸의 눈엔 죽어버린 경험 속을 맴도는 아빠의 길이 비탈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큰딸과 나는 서로 반대편으로 기울어진 길을 걸으며 끝까지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만약 누구라도 손을 놓았다면 나는 나대로, 큰딸은 큰딸대로 비탈 아래 벼랑으로 떨어져 영영 다시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난 큰딸이 보내준 <스물하나 일기>를 읽으며, 큰 딸의 손을 놓지 않은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끝까지 아빠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잡아준 큰딸에 대한 고마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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