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동네로 전학을 왔다.

단편소설_상미 사람들(2)

by 글쓰는 백구

<상미 사람들>은 픽션입니다. 현실에 비슷한 일이 있다면 이는 우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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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 때 강남에 살던 나는 경기도 용인의 한 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아빠, 엄마가 백수가 됐기 때문이다. 싫었냐고? 매우 기뻤다. 학교에서 야한 잡지와 테이프를 돌려보다가 걸려서 여자친구들이 나를 쓰레기 취급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렸다. 도망치는게 신나는 일이었다니.


이사간 곳은 매우 낯설었다. 아니, 이상했다. 상미라는 곳인데, 주소에도 표기하지 않는 동네다. 쉽게 말하면 산동네다. 상미도 아랫동네와 윗동네가 있는데, 아랫동네는 경사가 원만하고 전원주택 등이 있고 위로 갈수록 가파르고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빌라들이 오밀조밀 붙어있다.


동네도 이상했지만,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괴상한 교복이었다. 하늘색 반팔 셔츠에 파란색 바지의 교복은 아무리 봐도 이 세상 옷이 아니다.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때 공장 노동자들이나 입을 법한 색깔이다.


그런 교복도 줄여서 입었다. 바지통을 6통 반까지 줄인 친구도 있었다. 저 바지에 발을 어떻게 집어넣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으로 치면 레깅스에 가깝다. 여자들은 치마가 미니스커트에 가까운 것은 다반사이고, 상의를 너무 짧게 줄여서 안에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교실은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언제 무너질 지 알 수 없는 나무판자들이 바닥에 깔려있는 탓이다. 창가 밑부분에는 작은 청소도구함이 있는데 가끔 쥐가 나타났다. 남자아이들은 때를 기다렸다가 여자아이들을 놀릴 때 쓰기 위해 주변을 살펴보는 경우가 있다. 청소도구함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먼지투성이에 마치 지하에 무언가 있는 것처럼 깊은 동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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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 첫 날 아빠가 해준 얘기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용인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으니 잘 알아두고 학교에 가라고 했다. ‘용인 사람’이라는 호칭이었다. 이 말은 오로지 처인구 사람만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고 한다. 수지읍에 사는 사람은 ‘수지 사람’ 혹은 ‘분당 사람’이다. 분당은 분명 성남시 분당구인데, 수지 사람들은 용인이 아닌 지역적으로 붙어있는 분당에 속하고 싶어하는 기분이었다. 기흥읍에 사는 사람들은 ‘신갈 사람’이라고 한다. 기흥읍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신갈리이기 때문이란다.


처인구 내 사람들에게 ‘용인 사람’은 또 달랐다. 용인시내 중심부인 김량장동 근처에 사는 사람만 용인사람이라 부르고 나머지는 ‘양지 사람’ ‘백암 사람’ ‘원삼 사람’ ‘포곡 사람’ 등 면, 읍 단위로 사람들을 부르고 있었다. 도대체 ‘용인 사람’의 정체는 사실 지금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너 용인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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