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미와 사람들, 세상에 알려지다.

단편소설_상미 사람들(11)

by 글쓰는 백구

<상미 사람들>은 픽션입니다. 현실에 비슷한 일이 있다면 이는 우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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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망설여졌다. 상미로 이사온 뒤로 예상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예상대로 이루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멈칫한 사이에 동굴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딱딱한 굽이 있는 신발이 흙을 밟는 소리였다. 뚱뚱한 사람 형태의 그림자가 보였다. 방방 아줌마다.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엄마..” 동굴로 들어가던 예슬이가 발걸음을 멈췄다.


“살살 놀라고 했지, 이 년아. 왜 이리 싸돌아 다녀”


아줌마는 웃는 것인지 찡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타일렀다. 나와 예슬이의 손을 붙잡은 그녀는 컨테이너 방향으로 우리를 끌어당겼다. 내가 예상한 것이 맞다면 동굴 안 쪽으로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것이 떠올랐다. 이 컨테이너, 영진이 어머니, 영진이네 집 잔디 밭에 널브러져 있던 골프채, 어머니의 상처, 비디오테이프, 침대, 지독한 냄새, 둥지아파트 지하, 예슬이의 어머니, 나의 부모님, 그리고 섹스비디오 범인이 수배 중이라는 뉴스… 모든 내용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 뛰는 발소리가 들렸다. 영진이가 뛰어들어왔다. 아줌마와 예슬이, 만덕이, 그리고 내가 실랑이고 벌이고 있는 사이에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몇 초 만에 돌아왔다.


바로 나의 엄마, 아빠와 함께 말이다.


“영진아, 그만하고. 봉준아, 집에 가자. 아빠가 한 말 잊었니”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컨테이너 밖으로 나왔다. 너무 시끄러웠던 탓일까. 아마도 썩고 오염된 냄새가 나는 먼지가 상미를 뒤덮었기 때문일 것이다.


컨테이너 밖으로 나오자 상미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렇게 컨테이너와 시계공장 그리고 상미가 세상에 알려졌다.





더러운 먼지가 상미를 뒤덮은 그 날 후, 며칠이 지났을까. 아빠와 엄마는 검찰에 체포됐다. 부모님과 상미 사람들이 붙잡혔다는 얘기가 뉴스를 통해 전국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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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검찰은 ‘우제희양 섹스비디오’ 사건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집단성폭력 혐의로 형법학자 임시원씨, 비영리단체 대표 전준영씨, 아파트 경비원 현성욱씨 등 5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형법학자 임시원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우제희양을 지난 1987년 과외를 통해 처음 만나 사귀기 시작했다. 당시 임씨는 MBC 방송작가와 결혼을 한 상태였다.

'우제희양 비디오'는 임씨가 법학 공부를 위해 미국에 유학을 갔다가 귀국한 1990년 초반에 제작됐다. 임씨는 1992년 가을에 귀국했고 우양과의 관계를 몰래 찍은 비디오테이프를 진열장에 함께 보관하기 시작했다.

검찰은 300개 넘는 비디오를 압수했다. 임씨는 친한 친구가 찾아오면 테이프를 보여줬고, 후에 비디오테이프를 분실한 것을 알게 됐다.

임씨는 1997년 가을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한동안 거주했다. 그 사이에 우양은 비영리단체CEO 전준영씨와 결혼했다.

같은 해 10월 임씨는 “테이프를 보관하고 있으니 10억원을 달라”는 내용의 협박편지를 받았다. 협박편지를 쓴 사람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신갈리에 위치한 둥지아파트의 경비원 현성욱씨였다.

임씨는 IMF로 인한 구조조정의 여파로 예정됐던 정교수 채용이 무산되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는 이를 기회 삼아 역으로 현씨에게 제안을 했다. 현씨 진술에 따르면 임씨는 “내가 10억원이 현재는 없으나 내 말대로 한다면 더 많은 돈을 손에 쥘 수 있다. 당신 위치를 바꿔주겠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현씨가 일하는 아파트 지하에 시계공장으로 위장한 아지트를 꾸리고 비디오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우양의 남편 전씨를 섭외해 영상을 찍도록 했다.

전씨는 성범죄 전과만 10범이 넘어 취업이 어려워지자 비영리단체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결혼 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임씨의 제안을 수락했다. 전씨는 우양과의 성관계 영상을 몰래 찍었다. 그 과정에서 우양에게 몰래 마약을 주입하고 폭력을 휘두르기까지 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이후 시계공장을 수상하게 여긴 동네 주민들에 의해 비디오의 존재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됐다.

이날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임씨는 “IMF사태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나로 인해 상미 사람들의 생계가 해결됐다.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은 모두 국가에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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