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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Dec 03. 2019

작은 차이

-스핀오프 31

어제는 요가 동작을 따라 해 보았다. 너무 엉성해서 요가라고 말하기는 부끄러울 정도였지만 한 시간쯤 하고 나니 땀이 조금 났고 힘들기도 했다. 몸이 자극받아서 그런 것일까. 산책하고 싶었다. 두 시간쯤 걸었다. 책을 듣다가 음악을 켜기도 했다.


늪 한가운데 나무로 만든 길을 걸을 때는 고요함 속으로 빠져들었고. 나는 아직 살아 있구나. 언제 죽게 될까.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말이 나도 모르게 떠오른다. 언제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죽음을 잊을 때쯤 되면 죽음이 찾아오는 것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문다. 말이 생각을 불러낸다. 생각이 말을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집에 돌아와 서재 책상에 앉았는데 잠이 쏟아졌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 요가 동작을 따라 했기 때문일까. 잘 자고 일어났다. 위장은 여전히 편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괴로운 정도는 아니었다. 벌써 며칠째다. 먹는 양을 줄이고 병원에서 타 온 약을 먹고 있다. 그리고 내일은 위 내시경을 하기로 했다. 조금 긴장된다. 기본적인 건강검진이지만 처음이다. 내 몸은 얼마나 건강할까. 위는 얼마나 안녕할까?


아침을 챙겨 먹기로 했다. 뭘 먹을까 하다가 알리오 올리오로 결정했다. 먹고 나면 속이 편하니까. 옛날 같으면 된장국을 끓였을 것이다. 된장이 위를 편하게 해 준다고 알고 있었으니. 지금은 올리브유와 마늘, 그리고 파스타가 편하다. 생각이 바뀌면 느낌도 달라진다. 몸이 좀 불편하면 알리오 올리오가 먹고 싶다.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어 먹었다. 반찬으로는 오이 피클과 땅콩조림, 시금치나물. 맛있게 먹고 부엌을 나서며 뿌듯했다. 이제는 이 만큼 익숙해졌구나. 설거지 거리가 하나도 남지 않았고, 부재료들이나 비닐봉지들은 모두 다 제 자리로 들어가 깨끗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요리 하나 해 먹고 나면 부재료나 양념통, 비닐봉지, 냄비와 그릇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쳐다보면 머리도 함께 복잡했다. 오늘 부엌은 누군가가 따로 작심하고 청소해준 것처럼 보인다.


이제 환기할 차례다.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고, 방으로 거실로 통하는 문도 열었다. 거실 창도 열고, 서재 창도 열고. 그러면서 보니 함께 사는 식물들에게 물을 줄 때가 되었다. 대략 십 리터를 여기저기에 나누어 주어야 한다. 수돗가와 화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모과나무에 물을 너무 많이 준 것이다. 물이 흘러넘쳐서 카펫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번개같이 움직여(다른 사람이 보면 태극권 동작 같겠지만) 화장지를 가지고 와서 물을 닦아냈다. 많이도 넘쳤다. 겨우 수습하고 곁에 앉아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탁자 밑에도 물이 고인 게 보였다. 다시 읽어나 닦고 헤어드라이어를 가져다가 뜨거운 바람으로 말렸다. 익스텐션 코드를 찾아 꺼냈다가 가져다 넣었고.


창문을 다 닫았다. 갑자기 집안이 고요해졌다. 그때 까똑 까똑 까똑 세 번이 울렸다.

-좋은 아침이에요. 잘 주무시고 아침 식사 맛있게 드셨어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다음 주에 한국에 잠깐 들어갑니다. 뵐 수 있을까요?

-선생님, 이번 게이샤는 어땠어요?     


파티마, 데이지, 게이샤였다. 이렇게 같은 시간에 톡을 받는 경우도 있구나. 잠깐 웃었다.


-알리오 올리오 먹었어요. 먹고 나서 부엌을 나오는데 기분이 아주 좋았어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요리해 먹고 나올 수 있었거든요.

-시간이 나는 날을 두어 개 알려주세요. ^^

-아직 마셔보지 못했어요. 갑자기 소화가 잘 안 되어서 자제하고 있거든요.

파티마는 축하해요! 대단한 실력이셔요. 저는 아직도 그게 잘 안 되는데.

데이지는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 가운데 하나를 정했고. 그날 통화하기로 했다.

게이샤는 그 정도면 병원에 가 보셔야 하는 것 아니에요? 그래서 약을 받아 먹고 있으며 내일 검사하러 간다고 대답했다. 다녀오시면 어떤지 알려주세요. 했고.

파티마는 혹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자코메티 전>이 곧 끝나는데 보았느냐고 물었다. 아, 보고 싶었어요. 함께 보러 가실래요? 그래요. 언제가 좋겠어요? 그렇게 서로 날짜와 시간을 맞추었다. 내 차로 가기로 했고.


참 행복한 일이다. 주변에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준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고요했던 집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마음 탓이었을 것이다. 지난해 혼자 제주도 여행하며 들었던 재즈 모음곡을 다시 틀었다. 마침 '이제 파티를 시작해Get The Party Started'가 흘러나왔다. 빈티지한 느낌을 만들어낸 스텔라 스타라이트 트리오의 목소리로.


다시 톡이 왔다. 지난달 원고료를 입금했으며 다음 주 수요일이 원고 마감날이라는 알림이었다. 잠깐 할 일을 정리해 보았다. 다음 달부터 시작하는 격주간지 연재, 단행본 원고 마감이 두 개 있다. 한 권은 이번 달 말, 또 한  권은 다음 달 말이고. 공개강의는 없으니 좀 낫겠지만. 갑자기 머릿속까지 시끄러워졌다. 고요함은 사라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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