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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Dec 13. 2022

나와 연애하기 05

열렬하게 글을 사랑한 기록들 [바다 수필집 06]

소설가 

내 소설은 모든 게 허구이지만

당신이 읽는다면 그 순간 의미가 달라진다

거짓말인 글에서 진짜 감정을 찾을테니

내가 아파가며, 웃으며, 울며 쏟은 내 감정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시간들 사이에서 내가 활자로 움켜잡은 이 순간들

다른 인물들의 입을 빌려 말하는 세상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바꾸려는 나의 말들 

괴로울 때 도망칠 비상구 같은 소설을 내가 만들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다

나도 많이 다른 소설가들이 만든 세상 속으로 울며 뛰어들어갔으니 

가볍게 볼 오락영화 같은 소설을 내가 쓰고 있다면

그것도 영광스럽다

손꼽아 개봉을 기다리는 그 설레임을 내가 누군가에게 만들어주고 있으니 

돈을 위해 소설을 쓰고 있다면

난 행운아다

가상의 세계를 그려내고 그걸 화폐를 지불하면서까지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니 

당신이 놓치고 내가 후회하는 흘러간 그 순간을 타자로 다시 복구하고 

어쩌면 복수, 갈등해소, 사이다와 같은 걸로 마음을 달래보고 

나와 같은 소시민 주인공이 펼치는 모험에 가슴 떨려보고 

누군가에게는 내가 유일무이 천재 작가일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그 사람의 동경을 잘 기억하며 내가 하던 대로 해야겠다 

사랑하는 일에는 이렇게 진심이 된다

어쩌면 난 지금 글쓰기와 깊은 사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벌써 이별 후폭풍이 두려운 건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것일까 


스무 번째 여름

  

인생은 경연대회가 아니다. 탑 파이브 우승자들도 일상에서 밥을 먹고 가족과 떠들며 침대에서 잠을 잔다. 

나를 위해 살아가는 오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올해 여름. 

나는 좋은 친구들을 두 명 사귀었고. 

재밌는 친구 한 명과 돌아다니고 있으며 설마 친해질 줄 몰랐던 잘생긴 남사친과 친해졌다. 

공부에는 여전히 재능이 없어서 무식하게 공부했고. 

결과는 처참했으며 포기할 뻔했지만, 다시 도전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이것저것 방식을 바꿔보았고. 

남은 2022년은 맨날 쓰는 글을 좀 더 발전시키기 위해 또 이것저것 바꿔보았다. 

여러 번 시도해보았고 실패했던 것들을 다 뒤엎고 남의 말이라고는 전혀 안 듣던 내가 남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무엇이든 꾸준히 하면 결과가 생긴다. 막무가내로 한 화씩 올리던 전 웹소설이 그랬다. 

생각보다 더 진심이 되어버린 내 취미는 내년 1월에 내게 꽤 신선한 재미를 줄 것 같다. 투고할 생각을 하니 떨린다. 

내 재능은 무엇일까? 

사실 알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다. 

지금도 아주 행복하다. 

재능 없는 사람인 채로 살아보는 행복한 삶. 재능 있는 불우한 삶보다 내 취향이다. 

재능이란 좀 더 빠른 지름길인 것 같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일찍 가는 것과 좀 늦는 것. 남들 눈으로 보았을 때나 등수가 생기지 내 눈으로 볼 때는 도착과 아직 가는 중. 이 둘 뿐인 것 같다. 

내 삶을 책임지는,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과 함께. 모든 부분에서 그를 인정하며 앞으로의 여정을 기대해본다. 

한때는 소설가인 나를 꿈꿨고. 심리학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생각도 해본다.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내 가장 별로인 모습을 직면하게 한 그는 이제 내 머릿속을 떠났다. 

열렬하게 사랑했고 미워했고 가지고 싶어 했던 사람이 훅 떠나자, 한층 마음이 편해졌다.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조그만 실수에도 나를 윽박지르던 나 자신도 어느새 유순해졌다. 

달력은 어느새 11월의 말이라지만 홍콩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아직도 여름과 가을을 오고 가고 있어서 여름이 길게 느껴진다. 내게는 12월 20일까지. 한국에가기 전까지 여름으로 느껴질 것 같다. 긴 올해의 여름. 첫 독립. 첫 대학. 많은 처음들. 

울고불고 짜증 내고 소리치고 싫어하고 

웃고 사랑하고 설레하고 도전했던 

내 스무 살도 밝게 칠해졌다. 

조금의 후회가 있다면 그때 아카펠라 오디션 봤을 때 좀 더 적극적으로 어필했어야 했는데. 

잘생긴 동아리장이 있는 곳을 놓친 것이 아주 약간 아쉽다. 

누가 나를 반짝이는 재능의 소유자로 봐준다면 크게 감사하고 싶다. 다만, 그 반짝임이 다이아몬드가 아닌 파도 위 윤슬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빛이 있어야빛나는 보석이 아니라, 태양 아래에서 부서지고도 다시 덮쳐오는 파도 위 퍼지는 햇살. 그 반짝임이 되고 싶다. 

쉽게 말하자면 일상이 단단하고 행복해서 예쁘게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되려고 노력 중이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며 그렇게 앞으로를 채워나가고 싶다. 

깨지고 부딪혀도 바다가 파도 치기를 쉬지 않는 것처럼. 


충분히  하고 있어 단편소설


[노래 단편#1] Youth 

밤을 꼴딱 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크서클이 발까지 내려와서 파김치처럼 푹 익고 있는 나는 버스 좌석에 앉아서 조용한 새벽의 도로를 멍하니 쳐다봤다. 눈을 감으면 마치 조개가 입을 딱 닫는 것처럼 절대 다시 눈을 안 뜰 것 같아서 힘을 주어 빡 뜨고 창밖을 구경했다.  

아무도 없는 버스 안은 좀비 아포칼립스에 나올 것 같이 묘하게 느껴졌다. 당장 좀비가 나에게 날라온다면 구글 캘린더를 꽉꽉 채운 일정들은 누구한테 전담되는 거지 같은 헛소리를 속으로 늘어지게 하고 있었다. 책임자하고 땡땡 표시 뒤에 붙은 나의 이름이 업무들 밑에 빠짐없이 붙는데, 그러면 또 다른 누군가가그 이름을 채우게 되는 것일까. 갑자기 모든 책임감이 목을 콱 조는 듯 해서 일부러 시원한 밤공기를 훅 들이마셨다.  

조용하다. 

바람이 앞머리를 간지럽힌다. 뜨겁게 익은 두 볼이 천천히 밤의 냉기에 식고 있다.  

앉아 있던 자리에서 목을 길게 늘려 버스 기사님의 동태를 살폈다. 기사님은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움직이지도 않고 앞만 보고 계셨다.  

작년에도, 제작년에도, 그리고 아주 까마득한 회사를 나가는 첫날에도. 

이 버스를 탔다. 첫날 이 좌석에 앉아서는 취업의 기쁨에 마스크 뒤에서 빵긋빵긋 웃었고. 

제작년에는 노력만큼 나오지 않는 결과에 마스크가 젖도록 주룩주룩 울며 속앓이를 했었고. 

작년에는 의지했던 동료들과 마찰이 심해서 메탈이 쾅쾅 울리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현실도피를 했었다. 

머릿속에 그때의 모습들이 지나가지마 왠지 감정이 울컥 올라오지는 않았다.  

“사람이 잠을 자야 감정을 느끼는구나?” 

어이가 없어서 실실 웃으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너무너무 피곤하다. 아주아주 오랜 잠을 자고 싶다. 그러나, 정해진 것은 내일 아침 여섯 시 기상. 

“충분히 잘 하고 있어.” 

이 버스를 탔던 모든 나에게 한 마디를 날렸다. 지금의 나를 포함해서 또 어딘가에서 하루를 보내게 될 미래의 나에게도 조근조근하게 말해주었다. 

“잘 하고 있어.” 

감정의 소용돌이와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통돌이 세탁기에 넣어진 세탁물처럼 탈탈 빨리고 있는 나. 그 안에서 돌려지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잘 하고 있다.  

실패해도, 성공해도, 나약해도, 강해도. 

나의 모든 실패와 성공, 나약함과 강함을 응원한다.  

충분히 잘 하고 있어. 그 말을 조용히 말해주다가 눈이 스르륵 감겼다. 고개가 천천히 밑으로 떨어졌다.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머리가 이리로 저리로 흔들렸다.  

그 모습을 힐끗 거울로 보던 기사님이 다시 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2022-12-◇◆◇

그냥 하기. 

나이키의 유명한 광고문구, Just do it. 말 그대로 “그냥 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세계적인 대기업에서 마케팅용으로 쓴다는 건 전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하는 것. 그것이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기에 열정이라는 키워드를 파는 나이키에 소비자들이 매료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이키가 파는 무형의 가치인 열정은 항상 운동선수들과 함께 나온다. 나이키 광고는 열심히 훈련하는 운동선수들을 빼고 등장한 적이 없다. 그 이유는 그들이 다른 어떤 이보다 ‘그냥’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를 따지지 않고 일단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 극한의 고통에서도 다음훈련을 하는 사람들.  

김연아 선수의 말 중에 참 사랑받는 말이 있다. 스트레칭 중에 기자는 그녀에게 질문을 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하냐고. 그녀의 답은 간단했다. “그냥 하는거죠.” 

그들의 그냥은 열정적이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단단한 확신에서 우러나온다. 내가 가는 길이 옳다고 믿을 때, 더 이상의 생각은 필요하지 않다.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들. 입은 무겁고 몸은 계속해서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불안이라는 감정 따위는 없다.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도 자신이 가고 있는 과정 자체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미 방향을 정했고, 더이상 망설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나도 그렇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사랑한다. 그리고 쓰고 싶은 글이 너무 많다. 

그러나 다 쓸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쓸 수 있는 글을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쓴다.  

글을 잘 쓰려면 글을 써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글의 방향을 정했다. 그랬기에 묵묵히 계획한 대로 따라가려고 한다. 조용히 시간을 부어보려고 한다.  

가장 열정적인 그냥 하기. 그것을 해보려고 다짐하는 오늘이다. 

2022-12-◇◆◇ 

꿈. 

가장 소중한 건 입 밖으로 꺼내기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들여다보지 못한 그 상자 위에는 먼지가 가득 쌓이는 법. 소중할수록 많이 많이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다.  

내 꿈은 아프지 않고, 좋아하는 일과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나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선물박스를 어린 아이처럼 풀어보고 싶을 뿐이다. 그 선물박스로 이걸 모아서 주식을 하겠다는 야망 어린 어른 같은 생각은 하지않으려고 한다.  

그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충실하고 싶다. 

쓰고, 배우고, 고치는 모든 일들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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