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어른은 공경해야 하고 항상 존중해야 한다. 이것은 어른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야. 너보다 어리다 하여 혹은 지위가 낮다 하여 함부로 대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인간이기에 공경하고 존중하며 배려해야 하는거지. 존중과 배려는 위아래의 문제가 아니란다.
마찬가지로 어른의 말이라고 무조건 옳다거나 네가 알지 못하는 지혜가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네 판단에 참고가 될 수는 있으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어른의 말을 들으라고 하는 것은 조선시대에는 맞는 말일 수도 있었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살았으니 당연히 그 마을에 대한 경험이 풍부했겠지. 뒷산에 오르면 뱀에 물릴 수 있다거나 흉작을 대비하여 곡식을 미리 비축해야 한다거나 실패와 고난을 통해 얻게 된 지혜를 어른들은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을게다. 그러니 어른들의 말을 듣는 것은 두 번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고 항상 열린 마음으로 들어야 했어.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너무도 다양한 길이 있고 너무도 다채로운 삶이 공존하는 세계야. 어느 한 인간이 삶을 통해 얻게 된 경험은 더 이상 보편타당하지 않단다. 설령 같은 업계에 종사했던 사람이라도 그 경험과 지혜는 천차만별이니까.
그러니 자신이 이미 겪어 봤다고 말하며 자신의 경험이 옳다고 생각하는 어른은 경계해라. 너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빠의 말도 흘려듣거라. 아빠도 아빠의 경험이 옳다고 할 수 없어. 그저 수천수만 갈래의 길 중 하나를 몇 걸음 걸어 봤을 뿐이란다. 아빠는 그저 너의 입장에서 함께 고민하고 기뻐하며 눈물 흘려줄 파트너이지 너에게 어떤 정답을 줄 수 있는 경험과 지혜를 가진 어른은 아니란다.
아들아, 이제 8살 돼서 아빠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 어쩌면 이 편지는 아빠 스스로에게 쓰는 편지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