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은이, 아빠랑 서울랜드 갔을 때 기억나? 너 6살쯤이었던 것 같아. 높은 곳에서 그물 타기 하는 거였는데. 뭉게 공항 액션 존이라고.
아빠도 올라가다 보면 무서워서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야 하는 높이였는데 너는 성큼성큼 잘도 오르더구나. 그 조그만 발이 그물에 쑥 빠질 때마다 좋다고 까르르 웃던 얼굴이 기억난다.
아빠는 너에게 물었지. 높은데 안 무섭냐고.
너는 이렇게 말하더구나.
왜 무서워? 그물 사이로 절대 안 빠져
순간 아빠는 멍해졌단다. 네 말이 맞으니까. 너의 작은 몸도 안 빠질만한 그물에 아빠가 빠질 일은 없으니까. 그런데 아빠는 뭐가 무서웠을까? 왜 아빠는 그물 너머 한 참 아래의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을 보며 두려워했을까? 절대 떨어질 일 없는 그물 위에서 말이야.
너는 그물이 있음을 알고 그 위에서 마음껏 스릴을 즐기고 있을 때 아빠는 왜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만을 보며 두려워했을까?
인생이라는 그물을 아빠는 그렇게 지나온 것 같아. 실체 하지 않는 대상을 두려워하고 한 발 떼기가 무서웠던 거지. 대학 못 가면 죽는 줄 알았고 퇴직하면 인생 무너지는 줄 알았다. 돈도 모으고 또 모아야만 하는 줄 알았어. 모아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그렇게 발밑만 본 채 조급하게 걸어왔단다. 걷다가 길이 없어질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앞을 보지는 못했지.
우리 은이 말대로 그물이 있는데,
사실 떨어질 일 없는데,
인생의 굴곡을 스릴 넘치게 즐겨도 되는데,
발 한 번 빠져도 죽는 것처럼 살아왔구나.
우리 딸, 은아. 너는 그날 아빠의 스승이었단다. 아빠가 우리 은이에게 큰 가르침을 얻은 날이었어. 아빠 이제는 두렵지 않아. 어떻게 살아도 그물이 있으니까. 떨어질 것 같은 거지 떨어지는 건 아니니까.인생을 충분히 즐기며 살아 볼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