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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hnnap Feb 22. 2024

〈추억의 생애〉



227-8. 동시대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평범한 고독과 성실을 택하는 것이다.



 재미있게 읽었다. 아버지뻘 되는 딩크족에 애견인이자 개인주의자인 한 중년 남성의 미시사라는 말은, 읽은 사람만이 납득할 법한 압축일 테다. 하지만 서평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니까, 예비 독자도 염두에 두고 써야 되지 않나 싶다.

 우선 저 평범한 표지를 보아라. 서평 이벤트가 아니었다면 굳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디자인과 제목이다. 그나마 펴낸곳인 마르코폴로가 이 책에 대한 나의 전반적인 인상을 신호할 수 있겠다(왜냐하면 글쓴이는 제법 모험가 축에 속하는 인생을 살았다). 나의 개인적인 기준에서 자신의 라이프를 제대로 살아낸 한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단순히 ‘미시사’라고 하기에는 이 사람이 지나온 시대와 장소가, 일정부분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면서도 일상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오십 줄의 남자가 자신의 10대와 20대를 해상도가 높은 생생한 언어로 그려낸 것이 신기하고 좋았다. 그리고 적절한 무게감의 개인주의자로서 자신의 외부와 내면을 두루 살피면서 책의 내용을 구성하고 배치한 것이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2부. 응답하라 1993을 가장 몰입해서 읽었다.

 글쓴이는 책에서 자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인 프루스트를 인용하는데, 그와 같은 양상으로 쓰였다고 생각한다. 영화, 책, 노래 등 여러 창작물의 인용이 많다는 것은 좋기도 했고, 다소 주의를 분산시키기도 했다. 나는 책을 문장이 아닌 인상으로 기억하려고 하는데, 덕분에 알게 된 좋은 노래도 꽤 많아서 일장일단이 있었다. 하지만 역시 개인적으로는 부러운 부분이었다, 그 많은 이야기와 순간들을 내면에 퀼트처럼 꿰어내어 봉합하고 총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많은 추억에서 능란하게 자신의 느낌을 창작물과 함께 소환한다. 글쓴이는 고등학생 시절 한가로운 주말엔 발품을 팔아 빨간 영화들을 하루에 두어 개씩 보고 그 영화의 이름들을 참 많이도 기억했다. 대학 시절엔 놀자파로서 수많은 술자리를 전전하며 멋지게 20대를 소진했다. 읽으면서 많은 것을 머리에 집어넣으려 애쓰고도 그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니, 거리에서 가슴으로 그 무용한 것들을 통과해낸 게 더 낫지 않은가 싶었다. 글쓴이가 인용했듯, 카뮈에 의해 모든 경험은 동등한 가치를 지니니까. 글쓴이에 따르면 나는 이도저도 아닌 매력 없고 중도파(중앙도서관파)다. 그래서 낮이 아닌 밤에 두서없는 서평을 쓰고 있다. 글쓴이가 자신의 20대 시절을 돌이켰듯이, 지금 나는 불안하면서도 태평스럽고 복합적이다. 10대를 뒤돌아봤을 때 기억나는 게 거의 없는데, 20대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요즘 든다.

 나도 하나 인용을 해볼까. 내가 〈샴페인 수퍼노바〉를 정말 좋아하는 이유는, ‘Wipe that tear away now from your eye’라는 한 문장과 끝나기 전의 지치지 않고 반복되는 구간 때문이다. 계속해서 높아지는 기분 상태에서 땅을 바라보고 있지만, 약에 취해 썼다기에 저 문장은 다소 사려가 깊다. 중요한 것은 정확히 딱 저 한 문장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오타가 아닌가 싶었던 새롭고 감각적인 단어들을 많이 배웠다.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며 드레퓌스 사건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따로 찾아보지 않았었다. 애초에 사회적 사건보다 내면에 초점을 둔 이야기라 생각한 까닭에서다. 하지만 시공간적으로 더 근접한 곳이라서 그럴까, 1980년 5월을 회상하는 소년 시절 글쓴이의 보이스와 시각은 과연 적절한 무게감이었고 충분했다. 이태원 참사를 비롯한 다른 날들도 마찬가지로. 물성을 극복한 채 선명해져만 가는 콘텐츠들이 흐릿해졌으면 좋겠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글쓴이로부터 조금이나마 선명해진 과거의 순간들은 자못 반가웠다.


+ 글쓴이가 전업 작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독자로서 오탈자라고 합리적 의심이 간 부분들 :

184. B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 A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287. 시스템의 균열으로 인한 의심 → 시스템의 균열로 인한 의심

332. 프리첼 동호회는 급속도록 커졌고 → 프리첼 동호회는 급속도로 커졌고


#추억의생애 #마르코폴로 #박기원 #신간 #서평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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