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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hnnap Mar 02. 2024

〈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



338. 자신의 고통이 과장이 아닌 사실이며, 이 모든 것이 유니폼 때문이라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한 승무원들이 얼마나 많이 침묵 속에서 고통 받고 있을까.



 몇몇을 죽음으로 몰고 간 어느 항공사의 승무원 유니폼에 관한 얘기로 책은 시작된다. 그 자체로 얼룩을 안 남기고 구김을 방지하는 특화된 섬유는, 비록 합성섬유까지 고려한다고 해도, 없다. 많은 것은 후처리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이때 사용되는 것은 다양한 화학물질인데, 책에서 일관적으로 지적하는 사실은 이것이다 :

 ‘옷은 우리가 취급 허가증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재 중 가장 복잡하고 다층적인 화학적 프로필을 가진다는 것’


 쉽게 말해 많은 의류 기업들이 얼마나 위험한 화학물질들이 옷을 제작, 가공, 배송하는 전 주기에서 사용돼왔는지 그동안 덮어왔다는 것이다, 이익을 내는 데만 신경 쓰다가. 다른 소비재들에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시민들의 주의가 점점 높아지던 와중에도 말이다.


 저자는 ‘화학물질민감증’이라는 단어를 소개한다.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나타난다고 한다. 범용되고 무해한 화학물질이 아니라, 의심의 여지없이 유해하고 권장되지 않는 화학물질에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증상에 대응되는 보험사 코드와 의료 절차는 도입되지 않았다. 일련의 내분비교란물질과 알레르겐, 발암물질들이 누군가의 직업과 생명을 앗아가던 동안에도 말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해당 반응에 대해 명확한 인과성을 결부시킬 단일한 원인물질을 지목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우선 일반인의 경우, 하루 중 다양한 장소를 오가며 수많은 사물 부근을 지나므로 그렇다. 비교적 통제된 환경에서 생활하던 상기한 승무원의 경우에도, 유니폼에 사용된 각각의 화학물질들이 개별적으로는 기준을 준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건, 그것들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인체에 일으킨 효과가 보다 심각했다는 것이다. 이를 상가 효과(additive affect)라고 한다. 또한 한 번 반응을 보인 화학물질과 같은 계열의 물질에 대해서는, 비록 그것이 유해하지 않다 해도, 인체의 불필요한 자동적 반응으로 인해 몸이 이상이 나타났다. 도저히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없을 만큼.

 두 번째로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소비자와 유관기관의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던 증상에 대해 ‘개인적 민감성’으로 그 원인을 환원시키고, 관련 소송에서 변호사로 하여금 인과성을 인증하기 힘들다고 주장하게 했다. 환경보호국에 기만적인 데이터를 제공하거나 그들을 로비하고, 과학자들을 통해 이미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압력을 가해 그들의 입을 막았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1/5이라는 그다지 높지 않은 확률과 즉각적이지 않고 누적적으로 나타나는 신체반응, 또한 옷이라는 상상하기 힘든 원인에 있었다. 또한 개발도상국의 생산직 노동자들에게서는 오래전부터 문제가 빈출됐지만, 구조적으로 밑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더군다나 나를 포함한 최종 소비자는 이에 대해 무지했다.

 책을 읽지 않겠다면, AFIRM 그룹(Afirm-Group.com)과 ZDHC(RoadmapToZero.com)에서  제조제한물질 비사용에 동의한 브랜드를 알아가는 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내용정리는 이쯤에서 갈무리하고 개인적인 감상을 적는다.


 옷에서 묻어나오고 휘발되는 화학물질이 사람을 죽인다라. 이 이야기는 어렸을 때 읽었던 만화책을 떠올리게 했다. 외계인들이 침공해서 지구를 막 휩쓸다가 결국에 눈에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에 면역이 없어 허무하게 전멸했다는. 제한물질을 선별하기 위해 검사하는 속도보다 ‘유감스러운 대체물’을 구해 제재에 대응하는 속도가 더 빨라 상황이 좋지 않다는 얘기가 희극적이었다. 그러나 대체물을 찾는 화학자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을까.

 이 어려운 문제를 개개인의 일화로 제시하여(아마 그럴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지만) 책을 구성하는 저자의 필력이 탁월했다. 이 책을 읽으며 탐사 보도라는 말을 아마도 처음 의식적으로 인지했고 투입된 노력이 가늠이 안 됐다. 소개된 인물들이 자신의 직장이 제한물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금전적 이유와 어떠한 관성으로 인해 악화되는 상황에도 멈출 수 없었다는 것이 공감이 되고 안타까웠다. 또한 해당 문제를 업계의 구조와 거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안, 그리고 관련된 많은 독립적인 연구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버무린 것도 좋았다. 물리학과 교수까지 패션 산업과 관련돼있을 줄은 몰랐다. 독립적인 연구자들의 존재가 언급되었을 땐 돈이 많이 드는 화학분석에 필요한 그 자금을 어디서 얻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오코텍스마저 재료에 대해서만 인증을 한다는 것과 그러한 인증절차로 득을 보는 사람이 있다는 현실을 언급해준 것이 좋았다. 수많은 참조자료들을 보니 영어로 리서치를 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련해서 박은정 교수님의 저자 강연을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휘몰아치던 강연은 잘 기억나지 않고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만이 선명하다. 세제를 넣고 빨래를 한 뒤 옷이 향긋하다면 그게 뭘 의미하는지 생각해보라고, 어느 청중의 물음에 답변했었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건조기를 쓰지 말라고. 하지만 난 그 이후에도 계속 건조기를, 게다가 건조기용 티슈까지 넣어가며, 썼는데 소개된 것처럼 양모 볼을 사야하나 싶다. 아무래도 500원 더 쓰고 시간을 아끼는 것이 편하긴 하다. 교수님은 실내 미세먼지에 대해 연구하신다고 했는데, 연구자로서 이런 문제에 착수할 결심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데’에 대해 기억에 남는 건 리바이스와 나이키뿐이다. 난 옷을 거의 안 사 입어서 적어도 화학적 건강에 있어서는 건전한 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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