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독일에 살고 있어요.
대단할 거 없는 외국 살이
독일에 사는 한국 사람을 보면 한 번쯤 궁금했을 것이다. 왜 독일에 갔을까? 왜 독일에 살고 있을까? 어떻게 독일에서 살까? 나 역시도 독일에 살기 전에 타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했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한국에 살든 독일에 살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았다. 먹고 자고 싸고. 어디나 좋은 사람도 있고 이상한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점이 있으면 좋지 않은 점도 있고.
독일에 온 이유를 크게 꼽으라면, 누군가는 아이교육을 위해서, 또 누군가는 여유로운 시간을 이유로,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만의 이유를 가진 채로 낯선 땅 독일로 넘어왔다. 그리고 내가 독일에 온 이유는 독일에서 우리를 받아주었기 때문에? 때때로 내가 이곳 삶이 힘들다고 말하면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힘들면 한국으로 가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나라와 나라를 이동하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지금은 학교 다니는 아이들까지 있으니 정말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역으로 기러기 생활을 할 수도 없으니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의 삶을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저 그 속에서 각자 살아가는데 스스로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이유들을 찾으면서 살아간다. 또한 내가 처한 상황에 맞게 존버하며 고군분투 살아간다.
솔직히 말해서 독일 오기 전 가졌었던 막연한 그 무언가의 유토피아는 아직 없다. 막상 살아보니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처럼 외국살이도 현실 그 잡채였다. 5년이 지나면서부터는 고운 정 미운 정을 붙어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 재밌는 사실은 한국이 싫어서 온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한국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비빌 곳이 있는 이는 쉽게 이곳의 삶을 정리하고 떠나기도 한다. 그러나 나처럼 비빌 곳이 없는 이는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용기가 부족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저마다의 사정으로 남거나 떠나거나 한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기에 그저 흐르는 물길처럼 흘러가는 대로 살아갈 뿐이다.
한국에 살 때보다 독일에 살면서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것을 많이 느끼며 살고 있다. 언어만 봐도 그렇다. 독일어를 알기 전과 알고 난 후의 삶은 너무나 다르고 독일어를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도 엄청나다. 배우면 배울수록 이름 모를 아시아인에서 동등하게 대우받거나 조금은 존중받는 위치에 설 수 있다. 또한 독일 생활은 사춘기처럼 여러 성장통을 겪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왔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끝나지 않는 진로 고민과 내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걱정한다. 내 나이 마흔에 또다시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백세 시대에 진로 고민은 당연하다 쳐도 내가 누구인가라니.....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나의 민낯을 독일에 살면서 자주 마주하곤 한다. 처음에는 부정했고 외면했고 경멸했고 분노했고 결국 마지막에는 벌거벗은 나라는 인간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과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당연하게도 여전히 이 단계를 무한 반복 중이며 아직도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는 나를 이해해 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기도 했다. 이 사람 저 사람, 오랜 친구, 새 친구 등 날 이해해 줄 사람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모두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다른 누군가를 보담아 주기에는 각자 살아가는 게 팍팍했다. 나를 완벽히 이해해 줄 이는 오로지 나뿐이었다. 그때부터 내 안의 나와 싸움이 시작되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다가 그래 너 죽고 나 죽자로 바뀌었다가 그래도 잘 이겨내 보자 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렇게 지금은 어쩌다가 독일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