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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끄로 Jan 24. 2024

눕자마자 해가 뜬다니

두 번째 시베리아 횡단열차

초초에게

 우연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어. 러시아 꼬마아이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세차게 팔을 흔들더라. 푸른 하늘, 드넓은 초원 속 그 밝은 미소랑 인사가 아름다워서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야. 창 밖만 바라보고 있어도 시간이 빠르게 흘러. 새파란 하늘에서 새하얗고 뿌연 하늘, 그리고 다시 예쁜 구름이 걸린 파란 하늘. 그림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

 아름다운 그림들이 너무 빨리 지나가네.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어. 이 여유랑 풍경을 즐기기에 열차의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아. 대합실에서 말한 걱정과는 사뭇 다른 감상이지? 그만큼 여기서의 시간이 귀해. 저녁 9시가 넘었는데도 해가 지지 않는, 한국과 너무나도 달라 비현실적인 이곳이 좋아. 언젠가 이 시간을 아주, 아주 그리워할 것만 같아.


 새벽 열차에 올라서 자리에 눕자마자 해가 뜨기 시작했어. 너는 2층에 누워서 잘 모르려나? 창 쪽에서는 해가 뜨고, 복도 쪽에서는 간간이 사람들이 지나다녔어. 4인 자리에 있었던 1차 때보다 조금 어수선한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침대 시트로 내 자리에 가림막을 만들었어. 겨우 잠들었다 눈떴을 때 흰 커튼에 반사되는 따뜻한 햇빛이 너무 좋더라. 게으른 일요일 아침에 늦잠 자고 일어나서 바라본 창문 사이로 햇살이 드리운 느낌이었어. 평화로움 그 자체. 다음엔 너도 1층에서 잘 테니까, 내가 커튼 잘 쳐줄게. 이 포근한 기분을 너도 느껴봤으면 좋겠어.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계속해서 바뀌고 있어. 레슬링 팀으로 가득했던 왁자지껄한 열차가 따뜻한 미소를 띤 아이들과 할머니로 바뀌었다가 친절한 러시아 언니들로 또 바뀌었어. 초초 네가 수줍게 전한 마이쮸 하나에 우리는 더 큰 선물을 받았어. 너는 모르려나? 할머니랑 꼬마 아이가 건넨 빠까빠까 인사. 춥다고 덮어준 이불. 그리고 긴 여정동안 먹으라고 전해준 빵들. 네가 2층에서 자는 동안 나는 잠시 깨서 이 많은 것들을 받았어. 큰 선물을 껴안았어.


 새로 탄 두 명의 러시아인도 우리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 초초 넌 한국에서 소중히 준비해 온 작은 선물을 드렸어. 그 덕분에 우리가 받은 닭요리. 뜻밖에 횡단열차에서 고향의 맛, 찜닭을 느꼈어. 이런 맛을 횡단열차에서 맛볼 줄은 몰랐지. 많은 정을 주고받다 보니 하루하루 쏜살같이 흘러가네. 이곳에서의 모든 것이 너무 특별해. 그치? 매일 더 큰 선물을 받고, 마음이 점점 풍요로워져. 오늘 새로 탄 아저씨도 좋으신 분 같아서 마음이 놓여. 새로운 곳에서는 또 어떤 인연들을 만날까? 새로운 인연이 생기긴 하겠지?

 편지를 쓰는 지금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따사로워서 기분이 몽글몽글 해. 구름도 몽글몽글하게 하늘에 딱 걸려있다. 앞으로 내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이 자꾸 아쉽기만 해. 아쉬운 만큼 더 잘 챙겨 먹고, 창 밖도 더 많이 쳐다보고 그러면 되겠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중에 오늘의 하늘이 가장 쾌청하고 예뻤던 것 같아. 아무것도 안 하고 하늘만 보고 있었는데 시간이 훅 지나가 버렸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해.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풍경들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게 슬프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소중해서 낮잠 한 번 안 잤어. 첫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똑같이. 모든 게 너무나도 소중해. 내 하루가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이 열차에서 지낼 나날을 더 귀하게 아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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