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없이 기침이 튀어나왔다. 기침이라기보다는 토악질에 가까웠다. 대책 없이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일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첫 모금을 빨아들였을 때만 해도 괜찮았다. 안심하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는 순간, 연기보다 더 쓴 맛이 목구멍을 죄어왔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온 몸이 화끈거렸다. 폐가 뒤집힐 것 같았다. 정확히 몸 속 장기들이 어디에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느껴질 정도의 날카로운 통증.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문득, 담배 끝을 매끄럽게 빨아들이던 지후 형의 입술이 떠올랐다. 아무렇지 않게 내뿜던 희뿌연 연기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서둘러 담배를 비벼 껐다. 두어 개피 남은 담배 곽을 구기듯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아무리 사복을 입었기로서니, 어린 놈이 대낮부터 광장 한 켠에서 떡 하니 담배를 피워대도 누구 하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모두 다 같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기라도 한 걸까. 3월의 광장은 더없이 쓸쓸했다.
봄볕이 제법 따뜻해졌지만, 광장에는 예전만큼 아이들로 붐비지 않았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 학교에 묶인 애들이 더 늘어난 탓이었다. 대낮의 광장은 말 그대로 텅 비어 있었다. 바람에 떠밀려 날아다니는 비닐봉지나 전단지 조각이 유일하게 움직이는 풍경이었다. 예전엔 바이크로 꽉 찼던 자리가 공터처럼 뼈대를 드러낸 채 잠들어 있었다. 그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내 꼴은 안 봐도 뻔 했다. 안 하던 짓을 해도, 늘 하던 짓을 해도 딱히 달라질 건 없었다. 뭘 해도 헤어나올 수 없는 늪 같았다. 더럽고 비참했다.
“야, 딸딸이.”
뒤에서 날카롭고 거친 목소리가 날 불러 세웠다. 깃대 형이었다. 반가움인지 놀람인지 모를 어떤 감정이 올라와 울컥, 목울대를 뻐근하게 쳤다. 오랜만이었어도 긴 다리를 휘적이며 느릿느릿 걸어오는 특유의 폼은 여전했다.
“아, 이거. 곰 형이 맡겼던 건데...”
나는 중요한 걸 들킨 사람처럼 얼른 주머니 속에 넣었던 담배 곽을 꺼내들었다. 괜히 말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궁색하기 그지없다. 괜히 안 해도 될 변명을 찾느라 쩔쩔 매는 형국이었다. 깃대 형은 담배 곽을 흘끗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야, 곰이 그딴 걸 기억이나 하겠냐. 니나 펴라, 새끼.”
“아 ...”
“몇 번 피면 괜찮아 져, 처음엔 다 기침 해.”
아까 쿨럭거리던 볼상스러운 모습을 본 게 틀림없다. 얼굴로 뜨거운 피가 훅 솟았다. 깃대 형은 그러거나 말거나 담배 곽을 한 번 더 손바닥으로 툭 치며 내 가슴팍에 밀어붙였다.
“곰이랑 칼이, 당분간 안 보일 거다.”
순간 담배연기보다 더 쓴 냄새가 목구멍을 훑고 올라왔다. 뜨거워졌던 얼굴이 단숨에 싸늘하게 식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특수 폭행. 걔네 소년원 갔다.”
건성으로 던지는 말투가 꼭, ‘오늘 급식에 카레 나왔다’고 일상을 전하는 것 같아 속으로 몇 번이고 말을 되뇌었다. 특수 폭행, 소년원, 폭행, 소년원 ... 아무리 곱씹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단어들의 나열이었다. 칼 형의 얼굴에 항상 도장처럼 찍혀있던 흉터는 정말 폭력의 기록이었던 걸까. 깃대 형은 어깨를 으쓱이며 근처 벤치에 텉썩 앉았다. 그제야 언뜻, 깃대 형의 이마와 턱에 긁힌 상처가 보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도 생긴 지 얼마 안 된 상처들이 자리를 잡았을 게 뻔했다. 내 시선을 읽은 듯 깃대 형이 옅게 웃었다.
“... 나는 빠졌어. 직접 휘두른 건 없으니까. 봉사시간이나 실컷 채우게 생겼다.”
담배 연기가 빠져나간 자리마다 낯선 말들이 하나, 둘 깊숙이 파고드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소문의 일부는 맞았고, 일부는 틀렸다. 형들이 경찰서에 잡혀갔던 것은 진짜. 내가 걱정했던 사건은 가짜. 내가 모르는 세계가, 너무 가까운 곳에서 정신없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 다들 바이크 때문이라고 ...”
“뭐? 바이크?”
“제가 딸딸이 쳐서 형들이 ..”
“아, 씨. 그건 그냥 애들 장난이지. 새끼, 그래서 쫄았냐?”
깃대 형은 내 등짝을 손바닥으로 세게 쳤다. 따끔거리는 통증이 아무렇지 않게 몸에 새겨졌다. 그것도 모르고 한동안 집 안에서 칩거했다. 고립된 섬처럼 살았다. 이제와 내 잘못은 없다고, 그저 장난이라고 하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불행이라고 해야 하나.
“쫄았으면 집에나 처박혀 있을 것이지, 광장은 또 뭣 하러 기어나왔냐.”
꼭 사람 마음을 다 아는 것처럼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그러게. 나는 뭘 기대했던 걸까. 뭘 기다렸던 걸까. 텅 빈 광장이 이전보다 곱절은 더 큰 공백으로 온 몸을 짓눌렀다. 내가 있을 자리라 믿었던 곳이, 실은 처음부터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