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비 Oct 24. 2024

모두 다 꽃이야

하나같이 소중한 모든 아이들


 

서로 다른 연령대, 다양한 범죄로 입건된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을 마주할 때면 기도문을 외우는 심정으로 애정하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되뇐다. 내게 와닿을 아이의 일생을, 감히 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들을 환대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아이들은 그런 내 마음을 훤히 다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같이 내 품에 답삭 저들의 사연을 고스란히 안겨주었다. 제 아무리 흉악범죄를 저지른 아이라고 해도 내 앞에 앉은 저 아이는 그저 한 떨기 꽃이었다. 매서운 눈길로 나를 찌르지도 않았고, 뾰족한 마음으로 나를 헤치지도 않았다. 경찰서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이니 당연히 고분고분하겠거니 넘겨짚는 분들이 없기를 바란다. 무턱대고 낯선 어른에게, 심지어 자신을 환대하는 상대에게 침을 뱉을 만큼 막 돼 먹지는 않은 아이들이다.

 


 

많은 부모님들께 부디, 마음 다해 자신의 아이들을 지켜달라 부탁하고 싶다. 10대가 되면서부터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고 아이부터도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부단히 노력하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라도 어릴 때처럼 초밀착 육아를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그것의 의미를 보다 풍부하게 사유해 보기를 권한다. 그 어떤 순간에도, 설령 내 아이가 나를 밀치고 쏘아붙여도 부모인 내가 아이의 손을 절대로 먼저, 함부로 놓지 말 것. 본질은 몹시 간단명료하다. 말썽을 부리는 아이든 그렇지 않은 아이든 인간을 독립된 인격체로 키워내는 일은 당연지사 고되고 어려운 일이다. 어릴 때와는 달리 자꾸만 마음이 부딪히고, 하니 바람만 날리는 아이가 미워질 때면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를 번씩 떠올려보는 것도 좋겠다. 

 

면담 과정에서 가족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연차가 거듭되면서 아이들에게 항상 기습 질문 하나를 던지곤 한다. "지금부터 마디로 정리해 보는 거예요. 오직 시선에서 표현해 보는 거니까 편안하게. 자! 나의 엄마/아빠는 (         )다!" 부모님을 수식하기 위해 각자의 단어들을 끌고 빈칸을 채우라는 미션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게임 퀘스트라도 받은 듯 신이 나서 빨리 답을 하고 싶은데 한 마디라는 조건 앞에서 적당한 말을 고르느라 초조하게 고민하는 아이, 조금 전까지 원활하게 대화한 것이 무색하게 갑자기 침묵을 지키며 내 눈 대신 바닥이나 벽, 천정을 오래도록 응시하는 아이, 애꿎은 제 손톱을 툭툭 뜯으며 불안한 기색으로 입을 다무는 아이, 큰 고민 없이 툭 커다란 진심을 꺼내는 아이... 정형화할 수 없이 무수한 반응들이 쏟아진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누구도 대답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 아이들의 단골멘트인 "모르겠는데요"가 여기서는 나오는 법이 없다. 대답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도 대부분은 적절한 수식어를 고르기 위함이지, 원망스럽고 밉기만 한 부모를 떠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령 저를 보육원에 맡긴 채 나 몰라라 하고, 자살 시도로 응급실에 실려갔어도 본체 만 체 하고, 제가 새벽에 어딜 돌아다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신체 및 언어적 폭력을 숨 쉬듯 쏟아내는 부모를 가졌어도 그랬다. 

 

아이들이 고심해 꺼낸 진심들은 이렇다. "친구 같은, 대단한지켜주고 싶은사랑스러운닮고 싶은무뚝뚝하지만 자상한, 존경하는, 보고 싶은, 믿음직한, 고마운, 편안한, 든든한..." 아이들의 입에서는 화려하고 멋진 단어들 대신 단순하고 소소하고 평범한 단어들이 나온다. 그 속에 담긴 묵직한 진심이 진술실 가득 진동할 때 덩달아 내가 코끝이 찡해진다. 내 아이의 고백을 이 아이들의 입을 빌어 듣는 착각까지 든다. 이 곱고 예쁜 진심을 부모님들이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까울 지경이다. 해서 최근에는 지금 그 말, 부모님께 꼭 들려주라는 부탁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하기 힘들면 새해나 어버이날,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을 이용하라는 팁도 함께. 아이들은 그런 말 한 번도 안 해봤다, 뭘 쑥스럽게 말하느냐, 못 한다 투덜대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전할 날을 떠올리며 배시시 웃어 보인다. 

 

 

 

 

보이는 것 그 너머의 것들을 바라보는 부모님, 주변 이웃, 어른이 많은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무너져내리는 한 인간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사소하지만 확실한 관심과 믿음, 지지 같은 것이다.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피어있어도 모두 다 꽃이다. 산에 피어도, 들에 피어도, 길가에 피어도, 봄에 피어도, 여름에 피어도, 몰래 피어도 모두 다 꽃이라 말하는 [모두 다 꽃이야] 노래 가사 중 일부를 마지막으로 전하며 글을 매듭짓는다. 우리의 소중한 꽃들을 지키는 사회, 각자가 소중한 꽃임을 인정하는 마음이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

 

 


이전 12화 우린 조금 더 섬세하고 예민해져야 할지도 몰라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