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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 Sep 10. 2024

겨울의 봄

03 겨울과 인옥

 겨울은 좀처럼 연락이 되지 않는 여름을 걱정했다.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바쁜지 여전히 부재중이었다. 겨울이 진료를 대기하며 상철과 교섭에게 보내야 하는 돈을 이체했다. 송금하고 나니 얼마 되지도 않는 공무원 월급은 절반이나 줄어있었다. 이윽고 간호사가 그녀의 이름을 호명했다.

 “서겨울님-”

 겨울이 재빨리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꾸고는 진료실로 향했다. 그녀는 언제부턴가 두통이 심해지면서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신경성 두통이었다. 의사는 그녀가 민원인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업무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게 원인이라며 약을 처방했다. 진료를 받는 사이 인옥에게서 계속해 전화가 왔지만 겨울의 핸드폰은 화면만 밝아질 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진료를 마치고 나온 겨울의 핸드폰엔 인옥의 부재중 전화가 10통이나 찍혀있었다. 또다시 찾아오는 두통에 겨울이 대기실 의자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녀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머리를 움켜쥐었다.     


*     


 아마도 동사무소에서 교섭을 만난 뒤부터였을 것이다. 가뜩이나 인옥과 상철의 일로 머리가 어지러운 마당에 겨울은 민원인으로 방문한 교섭까지 마주한 적이 있었다.     


 “나 복지카드 신청하려고 왔는디요?”

 모니터를 향해있던 겨울의 시선이 그가 내민 신분증으로 옮겨갔다. 정교섭,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얼굴이었다. 겨울이 고개를 들자, 자신을 쳐다보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서겨울, 서겨울…. 그 역시 갸우뚱한 표정으로 그녀의 이름을 되뇌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떠올랐다는 듯 겨울의 얼굴을 쳐다봤다.

 “니 상철이 조카 아녀?”     


 그는 어릴 적 삼 남매가 살던 아파트 단지 1층 슈퍼마켓의 주인이었다. 겨울은 그의 가게에서 커피우유를 사곤 했는데 어린아이가 과자도, 젤리도 아닌 것을 사가는 걸 보며 그가 물었다.     


 “몇 살이야?

 ”7살이요.”

 “어이구, 아저씨 아들보다두 어리네. 그란데 이거는 너이가 먹을 수 없는건디?”

 “… 이모 줄 거예요.”     


 교섭에게는 초등학생 아들이 한 명 있었다. 이혼한 부인 앞으로 키우느라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아이들이라면 유난히 애틋하게 생각하는 그였다.     


 “네가 첫째고, 여름이, 가을이가 동생이여? 봄이는 없고?”

 교섭의 실없는 농담에 겨울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끄덕였다.   

  

 그의 말처럼 삼 남매의 인생에 봄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섭은 아이들의 곁에 보호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간혹 멀리서 이모라는 사람이 보살펴주러 오곤 했지만 불안정한 눈빛과 손을 떠는 모습에 아이들을 제대로 돌봐줄 순 없다고 판단한 교섭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삼 남매에게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겨울이 이모에게 준다며 커피우유를 고를 때면 초콜릿우유를 하나씩 쥐어주기도 했고, 막내 가을이는 제 아들처럼 예뻐하며 밥을 사 먹이기도 했다. 어느덧 삼 남매는 교섭을 아빠처럼 따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편의점에 밀려, 쫓겨나듯 가게를 정리하고 이사를 온 교섭이었다. 이목구비는 그대로였지만 얼굴빛이 검어지고, 주름이 늘어난 걸 보니 그가 살아온 인생을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다. 반가움도 잠시, 교섭이 인옥의 근황을 물었다. 

“그라믄 지금 이모도 같이 살고 있는겨? 삼춘은 없고이?”

 겨울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묘하게 어두워졌다.    

 

*


 인옥은 삼 남매를 두고 집을 나가버린 엄마의 친언니였다. 엄마의 행방은 인옥만 알 터였지만, 겨울은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정확히는 알고 싶지 않았다. 삼 남매를 불쌍히 여긴 탓에 인옥은 조카들에게 용돈이라도 주기 위해 공장에 다니곤 했는데, 그마저도 건강이 악화되면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꽤나 오랜 시간 신체적·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가족이라고 하나 있던 남동생 상철이 문제였다. 그는 멀쩡한 사지로 노동을 하기는커녕 사고만 치고 다니며, 인옥에게 돈을 뺏기 위해 협박하는 게 일상이었다. 상철은 도박에 빠져있었고, 게임에서 지고 올 때면 언제나 인옥은 그에게 화풀이 대상이 됐다. 겨울이 고등학생이 돼서야, 예전의 젊고 건강하던 이모의 모습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늘 떨고 있었고, 상철을 두려워했다. 인옥으로부터 알게 된 삼촌의 폭력은 겨울에게 충격적이었지만, 겨울이 그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상철이는 나 없으면 못 살어, 얘.”

 습관처럼 말하던 인옥이었다. 겨울은 이모가 살기 위해선 삼촌을 버려야 된다고, 굳게 결심하지 않으면 자신도 도와줄 수가 없다고 늘 간절히 외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동생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성인이 된 겨울에게까지 손을 벌리고 마는 인옥이었다.

 그때부터 겨울은 동생들에게 인옥의 연락을 받지 말라고, 집에 찾아와도 문을 열어주지 말 것을 당부했다. 가슴이 아팠지만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만 했다. 존재조차 모르는 아빠의 부재와 어린 자식들만 두고 떠나버린 엄마를 생각하면 삼남매는 기필코 잘 살아야만 했으니까. 가족이란 이름으로 자신과 동생들의 인생까지 망치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날이 갈수록 삼남매를 향한 인옥의 집착은 심해졌다. 겨울이 도서관에 있을 때도,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심지어는 면접을 볼 때도 인옥에게선 계속해 전화가 왔다. 그녀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가족이라는 동정심으로 눈을 감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삼 남매에게 가족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교섭에게까지 손을 벌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겨울의 몸이 굳어버렸다.     


 “니 이모가 돈 빌려달래서이, 내가 계-속 빌려줬는디 언제부터 연락이 안 닿어!”

 겨울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교섭을 외부 공터로 데리고 나갔다. 직장에서 아무도 들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인옥이 교섭에게까지 돈을 빌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겨울의 다리가 풀려버렸다. 처음에는 5만 원, 그다음에 10만 원, 20만 원…. 겨울은 그 돈을 그녀가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상철의 폭력과 협박에 시달리며 여기저기 돈을 빌리다가 나중에는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을 터였다. 삼 남매를 안타깝게 여겼던 교섭만 빼고.

 “그 돈들 다- 감옥 간 니 삼춘한테 간 거여!”

 교섭이 소리쳤다. 겨울은 문득 불안해졌다. 그는 인옥의 일로 계속해 동사무소에 찾아올 터였다. 어쩌면 인옥이나 상철과 연락이 닿아 자신의 직장과 집 주소까지 알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삼 남매의 평화로운 일상이 깨지는 건, 아니 인생이 망가지는 건 한 순간일 것이다.

 “… 제가 갚을게요, 삼촌. 저도 사정이 어려워서 한 번에는 못 드리고 나눠서요. 그 대신 약속은 꼭 지켜주셔야 돼요.”

 겨울은 교섭에게 다시는 동사무소로 찾아오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행여 상철과 연락이 닿더라도 직장과 사는 곳을 절대 누설하지 않기로 몇 번이나 부탁하는 겨울이었다.

 “그 사람이 알게 되면, 그땐 삼촌도 저도 다 끝이에요….”

 교섭이 알았다며 돈을 받아간 뒤에도 겨울은 한동안 혼자 멍하니 서있었다. 자신은 왜 늘 힘들기만 한지, 어쩌면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를 인생이었다. 겨울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어릴 적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부모 대신 두 동생을 키웠고, 상철에게 맞을 때마다 찾아오는 인옥을 보호했다. 자신에게 의지하면서도 상철의 손을 놓지 못하는 인옥으로 인해 동생들에게까지 피해가 갈까 늘 가슴 졸이며 살아온 겨울의 인생이었다.

 선월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고, 어렵게 시험에 합격해 겨우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조금은 삶에 안정감이 생길 거라 세상은 그녀에게 그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겨울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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