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나큰 재앙조차 결국은 흔적으로밖에 자신을 증명하지 못한다
그 당시에도 떠올릴 수 있었을까, 이 폭설로 내린 모든 눈들이 곧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을
아마 대한민국 역사에서 2024년은 절대 잊히지 않을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모두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문자 그대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으니까. 그리고 그 일은 현재 진행형이다.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앞으로 다가올 혼란이 두렵고 미래에 대해 단언할 수 없다.
이런 혼란과 불안감이 엄습할 사건이 벌어지기 며칠 전, 폭설이 먼저 세상의 혼란을 일으켰다. 어디서는 건물의 일부가 무너지고, 교통사고가 급증하고, 죽고 다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 난리통에서 부득불하게 걸어서 퇴근하던 날, 무릎 바로 아래까지 차오른 눈을 보며 퇴근길이 평소와 같은 거리였음에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현재, 그때는 영원할 것 같은 눈은 찾아볼 수 없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골목 어딘가, 눈을 쌓아두었던 도로 옆 정도를 제외하고 세상 대부분에서 그때 내렸던 눈은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많은 피해를 입히고, 그 피해가 현재도 진행 중이며 나를 힘들게 했던 기억이 생생했음에도 말이다. 평소와 같이 달리기를 하던 트랙 옆 잔디밭에 쌓여있는 단 하나의 눈 무더기가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두 손가락으로 만져본 눈은 여전히 차갑기는 해도 일주일전과 같은 위압감은 없었다.
다시 이야기를 현재로 돌려보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혼란도 언젠가 눈처럼 없어져서 희미해질 것이다. 지금은 실제하고 있는 혼란 때문에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렇게 될 것이다. 나에게는 여느 무속인들처럼 그 시기나 방법을 예측할 신통력은 없지만, 그런 날이 올 것임을 단언할 수 있다.
어두운 밤, 손전등을 비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무서운 순간, 이 어둠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과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으로 이 시기를 견뎌내 보자. 우리, 모두, 지금, 함께라면, 어쩌면 어둠의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