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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면 돼? 이 짧은 말에는 없는 따뜻한 마음 씀씀이의 가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나는 내 시간과 노력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삶에서 원하는 것을 구매한다. 집, 차, 먹을 것, 입을 것, 그리고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대부분의 것은 내가 번 돈을 지불하고 그 대가로 얻게 된 것이다.
때문에 나와 그 사람들 사이에는 교환적 가치를 주고받는 것 이상의 것은 없다. 그 사람은 내 요청을 들어주고 다른 사람으로 대가를 받아서 내가 하는 것과 동일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기 위해 내 요청을 들어줄 뿐이다. 그렇게 서로는 서로가 필요하면 대가를 지불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요청이 지연돼서 짜증을 내기도 하고, 다툼이 벌어지도 하고, 9시 뉴스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나는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할 바를 다했는데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얻지 못했다는데서 느끼는 분노일 것이다.
이런 '대가지상주의'가 판치는 세상 속에서는 남에게 고마워할 일이 별로 없다. 어쨌든 나는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했으니 상대방이 나에게 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을 때마다 자판기에 감사하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한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충분치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내가 대가를 지불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뭐든 받았으면 저런 말을 건넨다(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차마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 상대방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무언가 일을 하는데 필요한 조언 또는 도움이 있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도우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들 위해서가 아니다. 정말로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이 비용을 지불하고 대가를 받는 것으로 삶의 대부분을 채우는 것이 불행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다.
다행히 이런 방식으로 삶을 마무리하는데 별다른 후회감은 들지 않는다. 남의 일을 신경 쓰다가 거지가 되지도 않았고 직장에서 싫은 소리를 듣지도 않았다. 그리고 집에 오면 아주 다행히도 내가 스스로 추구하는 삶의 형태를 조금은 지켜냈다는 안도감에 편안하게 잠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다행이다. 이제까지 무수히 바보 같은 선택을 하고, 좋은 것을 놓쳐왔는데 솜털보다 가벼운 믿음은 실천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대가로는 얻을 수 있는 따뜻함을 아직까지는 믿을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