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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Aug 18. 2020

날이 쨍하니 또 장마가 그립다

날이 개었다. 정말 오랜만이다. 비가 그치니 사람들 얼굴까지 화창하다. 비록 마스크에 가려져 있지만 말이다.


도로 반대편 카페에 가기 위해 횡단보도에 섰다. 여름 바람이 다리를 감싼다. 물기를 머금지 않은 산뜻한 바람이다. 기분이 좋다. 얼마나 기다리던 맑은 날인가.


카페로 걸어가는 5분 동안 바람과 온도를 실컷 즐겼다. 걷다 보니 등에 땀이 맺힌 것 같다.


카페에 앉아 얼음 잔뜩 들어간 음료를 들이키며 생각한다. 날이 너무 쨍한데. 이거 이거 덥겠는데. 지겹도록 내리던 비가 벌써 그리워지는데….






역사적인, 기록적인 장마로 한동안 우리의 인사말은 '비 피해 없어?' 였다. 강원도 사는 내게 산 아래에 사는 내게 몇 통의 안부 전화도 왔었다. 다행히 나는 안녕했다.


비가 그만 쏟아지길 바랬다. 우리집 뒷산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뉴스에서 물을 퍼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내려가는 소의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비가 그만 쏟아지길, 모두들 피해가 없길 바랬다. 우리 모두가 그랬다.


근데 막상 비가 그치고 날이 더우니 그날이 그립기도 하다. 비가 쏟아지던 시원한 여름이. 그날에 난 걱정에 사로잡혀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단 사실도 잊고 있었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걱정이다. 폭염이면 폭염이라고 걱정이다. 재해는 대비해야 마땅하지만, 매일 어떤 피해도 없는 게 최상이겠지만, 걱정에 사로잡혀 해야 할 일을 못하는 내가 될까 봐 또 걱정이다.


익숙함은 또 어떤가. 인간은 종종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망각한다.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그 소중함을 잊는다. 낯선 것이 익숙한 것이 되면 원래 내 것인 양 여긴다. 우리에겐 '의도적으로 낯설게보기'가 필요할지 모른다.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가진 것의 소중함을 기억하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 내게 없는 것에 집중하지 않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장마에는 시원함을 폭염에는 뜨뜻함을 즐기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아까 주문한 음료를 쭉 빤다. 찬 얼음이 입안에 들어오자 머리가 띵하다. 너무 찬 걸 시켰나.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후후 불어 넘기는 저 어르신의 선택이 탐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작은 차, 작은 집도 모두 원하던 것들이네요. 아 지금의 직장도 들어가기 위해 많이도 애썼던 기억이 있고요. 이렇게 우리가 원하던 것을 가져도 매 순간 행복하지 않은 건, 익숙함 때문이고 걱정 때문인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걱정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애써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낯설게 보려, 걱정 대신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 애써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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