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재 Mar 14. 2020

재택근무가 좋은 줄만 알았다

재택근무의 장점과 단점

"다음 주부턴 재택근무 실시합니다."


처음엔 좋았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꿈꾸던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랄까, 자유로운 영혼이 된 느낌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기에 숨죽여 좋아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마주한 현실은 생각 같지 않았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좋을 것만 같았던 재택근무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재택근무의 장점과 단점을 몇 가지 적어보았다.




재택근무의 장점


1. 마음이 편하다

남의 돈 받으며 일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랴. 아무리 좋은 직장에 있다고 한들 출근길이 즐겁긴 어렵다. 출근길에 겪는 자극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전화를 비롯한 각종 소음들. 여기에 지친 내게, 재택근무는 회색빛 건조함에서 벗어난 새로운 근무 경험을 제공했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심리적 위안도 있다. 파티션 대신 이불이 있는 우리 집. 청소가 안 되어 있어도 이곳은 따뜻한 빛깔이다.



2. 자유롭다

머리가 아프면 잠깐 산책을 한다. 상사의 허락 없이 근처 마실을 다녀온다. 전에 보이지 않던 계절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일을 하다가도 자주 창밖을 내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햇살이 우리 집에 길게 드리운다는 걸 알았다. 여유가 있다. 자유가 있다. 촌각을 다투던 곳과는 다른 무엇이 확실히 있다. 이 여유 때문에 이따가 조금 바쁠지언정, 지금을 누린다. 그래서 문득문득 행복하다.



3. 지출이 줄어든다

직장 생활을 유지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든다는 걸 알았다. 출퇴근 자체가 돈인 것이다. 출근을 하지 않으니 옷을 살 일도 적고, 외식도 줄었다. 운전을 하지 않아 기름값도 절약된다. (주차장의 차는 며칠째 요지부동이다.) 퇴근길에 괜히 사 오는 것들도 있는데, 이것마저 없다.


그래서 확실히 지출이 줄었다. 이번 달 생활비는 최근 몇 년 사이 최저이다. 하지만 가정 경제를 지켰다는 생각과 동시에 마음이 편치 않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고통받는 상인들을 생각하면 그렇다.



4.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아내도 나도 직장생활을 한다. 모든 맞벌이 가정이 그러하겠지만 퇴근 이후 저녁에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누가 회식이 있는 날이면 그 마저도 없었다. 회식이 많을 땐 일주일 내내 잠자는 얼굴을 마주한 적도 있다.


지금은 아내도 나도 재택근무를 한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논다. 재택근무는 물론이고, 바깥 활동도 현저하게 줄어 함께하는 시간이 더 늘었다. 하루 세끼를 같이 먹으니 매일이 주말 같기도 하다.


단톡방의 친구들은 '육아 지옥'이라며 힘들어한다. 하지만 개도 자식도 없는 우리에겐 아직 딴 세상 이야기다.

순간을 음미하며 차를 마시고 반찬통을 정리한다. 나는 분명 여유가 있다. 정말이다.




재택근무의 단점


1. 오히려 근무 시간이 더 길어진다

휴일에 출근해 음악만 실컷 듣고 일의 진척이 없었던 경험. 직장인이라면 공감할지 모르겠다. 이처럼 재택근무는 사람을 늘어지게 한다. (나만 그런 건가?) 처음에 의자에 기댔다가 이내 자리에 눕는다. 간이 작아 눈을 감지도 못할 거면서.


헌데 업무량은 동일하다. 그래서 근무 시간은 더 길어진다. 거기에다가 필요한 자료를 사무실에 두고 왔다. 바로 옆에서 물어볼 동료도 없다. 일하는 데 효율이 없다. 일과 쉼의 구분이 모호해서 퇴근 시간이 지나 일을 해도 크게 억울하지 않다.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사무실에선 그렇게 더디게 가던 시간이 집에서는 빨리 간다. 아무래도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시간은 쉽게 낭비되는 것 같다.



2. 마음이 붕 뜬다

직장보다 긴장도가 떨어지니 마음이 붕 떠 있다. 평일 이 시간에 집에 앉아있는 것도 이상하고, 핸드폰으로 자꾸 업무지시를 받는 것도 이상하다. 카톡은 이미 업무 메신저가 된 지 오래다.


뭔가 허전하다. 사람이 좀 그립다. 재택근무에다가 바깥 외출도 거의 안 하니 누군가 보고 싶다. 재택근무가 길어질수록 그림움이 짙어진다. 역시 랜선만으로 인간적인 무엇을 채우기는 부족함이 있나 보다.



3. 왠지 불안하다

직장에 자리를 비웠다는 게 왠지 불안하다. 하라니까 재택근무를 하는데, 그래서 일을 하긴 하는데, 왠지 불안하다. '일하고 있다'는 느낌이 적게 든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는 느낌이다.


업무 전화가 계속 오면 투덜대다 없으면 또 불안하다. (이런 이중인격자 같으니라고.) 업무도 어딘가 빼먹은 것 같다. 재택근무가 끝나면 내 역할도 끝나는 건 아니겠지. 이번 달 월급은 나오겠지.



4. 집안일도 해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보통 점심시간에는 쉰다. 그런데 재택이다 보니 점심을 차려 먹고 설거지를 한다. 아내와 같이 구내식당, 아니 가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설거지는 내 담당이기에 조금 손해다. (여보, 미안.) 크게 힘든 일은 아니다만 점심시간에 안 하던 일을 하려니 그렇다는 말이다.


업무 자료로 내 방이 더럽혀진다. 원래도 정신없는 방에 새로운 것들이 얹혀진다. 청소를 하면서 업무 자료를 한쪽에 둔다. 참 적응 안 된다.

설거지하고 일하고, 설거지하고 일하고. 이게 바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인가?




재택근무의 장점이 아무리 많더라도 이 시국이 하루빨리 끝났으면 한다. 방역과 진료에 모든 것을 바친 분들과 고통받는 대구 시민들과 한숨짓는 상인들, 사태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든 분들에게도 봄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조금은 직장이 가고 싶다. 재택근무가 끝나, 가기 싫은 그곳에서 다시 시달리더라도. 기꺼이 그렇게 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정답을 얻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