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 반수

by 반디

오른쪽 머리에서 발끝까지 몸의 절반이 쑤시면서 통증이 계속되고 있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짐승들이 깨어나려 하는 모양이다.


최근 뉴스 기사들을 보면 유독 자기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끔찍한 사고나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기사들을 접할 때면 평소 잊고 있었던 인간 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대략 몇 개월을 집요하게 도끼눈을 뜨고 바락 바락 달려들던 인간들이 있었다. 그런 인간들의 특징은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 궤변 늘어놓기, 자기 합리화하기, 상대의 약점 파고들기, 상대방 기선 제압용 큰소리치기,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버티기 등이다. 상대방이 멈칫하는 찰나도 놓치지 않고 더욱 파상공세로 공격을 퍼붓는다. 유유상종이라고 함께 온 인간들이 있다면 협공까지, 그 누구도 막아내기가 쉽지 않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면 평화가 아닌 마음속에는 더한 전쟁이 시작된다. 머리와 심장은 폭탄 투하로 온통 불바다고, 몸은 생리적으로 진정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계룡산 폭포에서 도를 닦는 심정으로 불붙은 감정을 식히기 위해 긴 호흡을 수차례 해야 겨우 진정된다.

인간이 인간을 공격할 때는 마치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 반인반수 같다. 그래서 유독 짐승에 빗댄 욕설이 많은가 싶다. 이럴 때면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이해해야 할지, 인류애적으로 이해해야 할지 참으로 어렵다. 인간이 다른 종과 다른 점은 생각할 수 있는 지성이 있기 때문이라는데 그 생각이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행동할 때는 본능에 충실한 짐승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코엘료 소설 '악마와 미스 프랭'에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소설의 말미에서 작가는 말한다. 동전의 양면처럼 선악이 공존하는 존재라고.

맞는 말이다. 사이코패스조차 선천적인 유전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이 복합되어 나타난다고 하니 극단의 인성을 지닌 인간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이 양면의 균형을 깨뜨리고 인간을 그렇듯 공격적이고 잔인하게 만드는 것일까?

영화 '성난 사람들'에서 주인공 대니는 가뜩이나 가난으로 꼬여만가는 일상이 주차장에서의 시비를 기폭제로 그 균형이 깨지고 만다. 균형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 되면 대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재되어 있던 악, 야수의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 또한 인간의 본성이라면 받아들여야겠지만 문제는 어떻게 다시 균형 상태로 돌아가느냐이다. 결국 돌아가지 못하면 극단으로 치우쳐 극단의 결과를 불러올 것이고, 균형을 찾는다면 작은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SNS에서 심심하면 이슈로 등장하는 것이 갑질이다. 약자 앞에 강하고, 강자 앞에 약한 것이 동물의 본성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균형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만 같아서 씁쓸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선악의 총량이 같기 때문일 것이고, 야수적인 본성이 드러나더라도 아직 절반의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 일 것이다.

문득 내면에 잠들어 있는 짐승들이 깨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밤, 계룡산까지는 멀어서 갈 수 없으니 책이라도 펼쳐놓고 내 안의 야수를 달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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