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영화 다른 시선(5) - 영화 <고령화 가족>
영화 <고령화 가족>을 보다 보면 캥거루란 동물이 떠오릅니다. 캥거루는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와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는 포유류인데요, 다른 동물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캥거루 암컷의 경우 아랫배 앞쪽에 소위 주머니라 불리는 육아낭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출산 직후 새끼는 자신의 앞발을 이용해 엄마의 육아낭까지 기어올라간 후 그 안에 위치한 엄마의 젖꼭지를 빨며 자란다고 하네요. 캥거루에게 있어 육아낭은 소위 외부에 있는 자궁이며, 새끼를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방패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고령화 가족>에서 가족의 구심점이 되어주는 엄마(윤여정 분)는 69세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식들을 키워 먹여야 하는 캥거루처럼 보입니다. 집이라는 주머니에 자식들을 안전하게 담아 연신 자신의 젖꼭지를 물려주고 있죠. 어찌 보면 자신의 노후를 편히 즐겨야 할 나이임에도 안타깝게도 자식들을 향한 그녀의 책임과 의무는 끝이 없네요.
경제 용어 중에 ‘캥거루 가족’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고령화 가족>에 등장하는 자식들처럼 이미 성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혹은 다시 돌아와) 부모의 품 안에서 캥거루 새끼처럼 지내는 그런 자식과 부모로 구성된 가족을 의미하는 말이라 할 수 있죠. 가족이란 측면에서만 생각해 본다면 과히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를 떠올리며 잘 지내왔던 과거를 추억할 수 있을 테니 말이죠.
하지만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네요. 캥거루 가족의 경우 연령대로 본다면 대개 60~70대 부모와 미혼 혹은 기혼의 30~40대 자식으로 구성됩니다. 부모의 나이는 은퇴 직전 혹은 이미 은퇴하여 연금으로 생활하는 케이스가 많다 할 수 있죠. 그동안 모아 놓은 자산이 좀 있다면 그나마 경제적으로 쪼들리지 않게 지낼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자녀들까지 챙기기에는 버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식들은 백수가 아닌 이상 자신이 버는 소득에서 일부를 생활비로 내어 놓습니다. 어찌 보면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라 할 수 있죠.
그러나 최근의 캥거루 가족 추세를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청년 취업시장의 문이 갈수록 좁아지다 보니 제대로 취업을 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서 어쩔 수 없는 취업준비생으로만 남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경제적 자립, 독립이 요원해지는 것이죠. 생활비를 보태기는커녕 오히려 생활비만 더 축내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넉넉하지 못한 부모의 입장에서는 경제적으로 더 곤궁해질 수밖에 없는 거고요. 한마디로 잔잔한 파도에 안전하게 떠 있던 배가 점점 가라앉는 상황으로 가게 되는 겁니다.
영화 <고령화 가족>의 장남 한모가 바로 그런 케이스라 할 수 있겠네요. 물론 영화상에서는 조폭 출신이라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으로 나오지만, 어쨌든 현실에서 한모의 직업은 바로 ‘백수’입니다. 이에 반해 둘째 인모는 집안 유일의 대학 출신으로 상당히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려 ‘영화감독’이죠. 그러나 아쉽게도 백수와 다를 바 없네요. 첫 작품부터 줄줄이 흥행 참패를 하며 낙제점을 받았으니까요. 다행히도 셋째인 미연은 직업을 가지고 있어 집에 생활비를 보태고 있는데요, 그나마 캥거루 가족의 힘든 경제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유일한 자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영화에는 의외로 많은 식사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는 극 중 엄마의 대사와도 연결이 됩니다.
"가족이 뭐 대수냐.. 같은 집에 살면서 같이 살고 같이 밥 먹고 또 슬플 땐 같이 울고 기쁠 땐 같이 웃는 게 그게 가족인 거지. “
가족의 기본은 밥을 함께 먹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족은 식구(食口)라는 말로도 표현되죠. 집에서 먹는 식사, 즉 집밥의 기본 메뉴는 밥과 기본 반찬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국(또는 찌게)과 메인 혹은 특별 메뉴가 추가되죠. <고령화 가족>의 메인 메뉴는 삼겹살입니다. 엄마는 다 큰 자식들을 위해 거의 매일 삼겹살을 굽습니다. 지글지글. 고소한 냄새에 군침이 도네요!
기름기가 많아 고소하고 씹는 식감까지 쫄깃쫄깃한 삼겹살은 돼지의 배 부위를 말합니다. 붉은 살코기와 지방이 삼겹의 층을 형성하고 있다 해서 삼겹살이라 부르죠.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돼지 한 마리 무게(고기 부위만 약 70~90kg)) 당 삼겹살은 약 10kg밖에 되지 않는다 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는) 크게 비싸지 않은 가격 덕분에 서민들이 퇴근길에 동료와 함께 별 부담 없이 소주 한잔과 함께 그날의 피로를 푸는데 큰 힘이 되는 음식이자 가족의 외식 메뉴로도 뛰어난 가성비를 자랑하던 음식이 바로 삼겹살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치솟는 물가는 어쩔 수 없나 보네요. 자료를 찾아보니 이 영화가 상영되었던 2013년 삼겹살 가격은 100g 당 1,600원 정도(600g 1근 기준 9,600원)였는데 반해, 2021년에는 거의 2,100원(600g 1근 기준 12,600원)으로 8년 전에 비해 무려 31%가 올랐습니다. 삼겹살이 아닌 금겹살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었네요. 만약 지금 다시 <고령화 가족>을 찍는다면 삼겹살을 매 끼니마다 먹는 장면은 등장하기 쉽지 않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금겹살을 수시로 먹는다? 이는 서민들의 삶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아무래도 무리가 있을 테니까 말이죠.
”근데 엄마. 엄마 한 달에 얼마나 벌어? 허구헌 날 이렇게 고기 사 먹이는데 어떻게 감당하나 해서..“
둘째 인모와 엄마의 식사 장면. 항상 그렇듯 삼겹살을 구워주는 엄마에게 인모가 돌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자 엄마는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먹기나 하라며 말을 끊습니다. 그리곤 아들을 은근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돈 걱정을 해주는 아들이 상당히 기특해 보인다는 표정이네요.
이 영화의 상당히 많은 식사 장면에서 딱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매번 삼겹살을 굽기만 하는 엄마를 위해 3남매 중 어느 누구도 엄마에게 이제 고기 그만 굽고 편히 앉아서 식사하라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삼겹살이 너무 맛있어서였을까요? 뭐 굳이 유교 사상이나 부모에 대한 효도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엄마의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장면에 추가되었더라면 조금 더 진짜 가족다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물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 이 글은 2022년에 출간될 책 <같은 영화 다른 시선(가제)>의 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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