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영화 다른 시선(6) -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이탈리아 여행을 2번 정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밀라노는 두 번 모두 들렀었지만 아쉽게도 피렌체는 시간 관계상 대충 한번 둘러만 본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죠.
이 두 도시는 이탈리아에서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곳입니다. 밀라노는 잘 아시다시피 세계적 패션과 디자인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으며, 유명 패션 및 명품 브랜드의 본사와 더불어 각종 패션, 디자인 박람회가 열리는 도시죠. 피렌체는 가죽의 도시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 본사가 많이 위치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의 꽃을 피운 도시인만큼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예술작품 덕에 관광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남녀 주인공인 쥰세이와 아오이는 각각 피렌체와 밀라노에 살고 있는데, 여기에는 당연한 이유가 숨어있습니다. 쥰세이는 미술품 복원가란 직업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예술작품이 많은 피렌체가 적합하고, 아오이는 명품 브랜드샵의 직원으로 등장하니 패션의 도시 밀라노가 딱이었던 거죠.
영화에서 주인공의 직업은 인물의 성격을 나타내 주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0%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직업에 따라 주인공의 성격이 어느 정도는 드러난다고 볼 수 있죠. 영화 <열정과 냉정 사이> 남자 주인공 쥰세이의 직업 또한 그의 성격과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영화에서 쥰세이의 직업은 미술품 복원사입니다. 그는 조반나가 운영하는 유명한 미술품 복원 공방에서 일하고 있는데, 미술품 복원사란 건축, 조각, 그림(회화)과 같은 예술작품의 훼손, 파손된 부분을 복원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그림 의사 혹은 페인팅 닥터라고 할 수 있죠. 영화의 무대였던 공방의 실제 주인이자 무려 50년의 복원 경력을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 미술품 복원사 스테파노 스카르펠리는 복원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복원이란 작품의 재료, 기법을 알게 되는 것이며 작품 속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작가의 성격, 습관 등 화가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것으로, 한마디로 작품을 통해 그 안에 숨겨진 작가 자신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일이다.”
멋지죠? 복원에 대해 조금만 더 알아볼까요? 예술품 복원에는 다음과 같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총 4가지 원칙이 있다고 하네요.
1. 최소한의 부분만 복구한다. 훼손된 부분을 완벽히 가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보는데 지장이 없는 선에서 최소한의 부분만 복원한다.
2. 고전 그림에 쓰이는 복원 재료는 ‘자연주의’가 원칙으로, 해당 시기에 썼던 재료를 찾아 사용한다.
3. 작품 수정은 ‘가볍게, 섬세하게, 정확하게’를 원칙으로 하며, 붓터치는 점을 찍듯 한다.
4. 원본 그림 위 채색은 절대 금지!(복원은 아픈 곳만 치료하는 것)
쥰세이는 자신이 복원 중이던 작품이 파손됨에 따라 범인으로 몰리게 됩니다. 하지만 결백을 인정받죠. 그러나 일하던 공방이 폐쇄되며 결국 일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소위 백수가 된 겁니다. 일본의 명망 있는 화가인 할아버지는 내심 쥰세이가 자신의 뒤를 이어 화가의 길을 걷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쥰세이는 복원가란 직업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할아버지의 기대를 꺾어 버리죠.
“복원사는 죽어가는 걸 되살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리는 유일한 직업이거든요.”
이탈리아로 돌아온 쥰세이는 다시 복원사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루도비코 치골리의 작품인 <천사들 사이의 성모 마리아 축일>를 멋지게 복원해 냅니다. 파손되었던 작품 <회개하는 막달라 마리아> 또한 같은 화가의 작품이었으니 재기작으로는 최고라 할 수 있었죠. 참고로 루도비코 치돌리는 16세기 말 피렌체에서 왕성하게 활성했던 화가로써 이성적 르네상스와 감성적 바로크 시대를 연결하는 화가로 알려져 있는데, 피렌체라는 지역적 특수성과 이성과 감성의 교차라는 시대적 상황이 이 화가의 작품이 영화에 등장하게 된 배경이 되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쥰세이와 미술품 복원사. 영화에서 쥰세이는 잘 맞는 옷을 입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어쩌면 쥰세이에게 복원사란 직업은 천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업적 성공뿐 아니라 그의 말마따나 죽어가는 걸 되살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리는 일을 통해 시든 화초와 같던 그의 삶에 활기가 생겨나고, 더 나아가 오랫동안 헤어져 지낼 수밖에 없던 그의 연인 아오이 또한 시간의 복원을 통해 멋지게 재회하게 되니까요. 복원, 참 마법 같은 일이군요.
<덧붙임> 이 영화의 유명한 OST를 빼먹으면 떡 없는 떡볶이나 마찬가지죠? 첼로의 아름다운 선율, 감상해 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cyYHJXd8jUc
※ 이 글은 2022년에 출간될 책 <같은 영화 다른 시선(가제)>의 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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