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영화 다른 시선(7) -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두 주인공 사쿠라(女)와 하루키(男)의 만남은 우연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병원에 간 하루키가 바닥에 떨어진 사쿠라의 공병문고를 줍게 되고, 이를 사쿠라가 발견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펼쳐지죠. 이 우연한 만남은 사쿠라의 적극적 대시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개인적 성향의 하루키를 차츰 바꿔놓게 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게 되는데, 영화의 제목인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고 고백할 정도로 깊은 마음의 교류를 나누게 되죠. 사쿠라는 자신의 공병문고에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이렇게 적어놓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경제학의 정의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경제학이란 ‘자원의 부족함을 전제로 이러한 자원을 가장 효과적, 효율적으로 소비하기 위한 일반적 법칙을 규명, 사회의 여러 경제 관련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학문’이라고 하네요. 많이 어렵죠? 이를 매우 단순명료하게 표현하자면 경제학은 한마디로 ‘선택의 학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있는 자원을 대상으로 가장 최대의 효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경제학의 기본 정의라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점심시간이 되어 외부에서 식사를 한다고 가정해 볼게요. 동일한 메뉴를 같은 가격으로 팔고 있는 A와 B, 두 식당이 있습니다. A식당은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라 항상 사람들이 줄을 서 대기하고 있는데 반해, B 식당은 (A 식당에 비해) 다소 맛은 떨어질 지라도 자리 걱정없이 언제든 가서 먹을 수 있는 곳이죠. 여러분이라면 어느 곳을 선택할까요?
경제적 측면으로 본다면 당연히 B식당을 가는 것이 맞습니다. 왜냐고요? 여기에는 2가지 선택지가 있죠. 일단 첫 번째는 맛으로 접근하는 방식인데, A식당이 맛집인만큼 이에 대해서는 A식당의 우세승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맛은 객관적 비교 자체가 되기 어렵습니다. 감정에 의해 좌우되는만큼 B식당의 맛 또한 그날의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더 맛있거나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두 번째는 투입되는 자원의 양으로 여기서는 시간의 소요량으로 비교해 볼 수 있는데, 당연히 B식당의 소요량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을 비용으로 생각한다면, 그만큼 ‘경제적으로 효율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죠. 소위 가성비가 더 좋다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 측면으로 본다면 당연히 B식당을 가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 할 수 있죠.
조금 장황하게 이야기했는데, 제가 이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 주목한 핵심 포인트는 바로 ‘선택’입니다. 사실 두 주인공 앞에는 아래와 같은 수 많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 만약 사쿠라가 자신의 공병문고를 집은 하루키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 하루키가 사쿠라의 적극적 접근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선택했다면
- 사쿠라의 버킷 리스트를 이행하는데 하루키가 돕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 사쿠라의 여행에 하루키가 동행하지 않기로 선택했다면 등
이처럼 두 사람의 선택에 따라 영화의 전개는 많이 바뀔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과거 예능 프로그램 중에 ‘인생극장’이란 코너가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살아가다 어떤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고, 이때 A와 B, 두가지 중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죠. 예를 들어 정말 바쁜 일로 목적지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던 중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 길을 막고 도와달라 간청할 때 돕느냐, 안 돕느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달라지게 된다는 겁니다.
영화에서 사쿠라는 하루키를 선택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가 우연히 자신의 공병문고를 들춰보았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이보다는 하루키가 친구없이 지내는 외톨이나 마찬가지였고, 그로 인해 자신의 병에 대해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측면으로 본다면 사쿠라의 입장에서 죽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시간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상대가 바로 하루키였다고 할 수 있죠. 부모처럼 자신의 삶에 깊이 관여하거나, 혹은 절친 코코처럼 감정적으로 너무 슬퍼함으로 인해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을 빼앗지 않을 것이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루키는 사쿠라를 선택함으로써 어떤 혜택을 보았을까요? 일단 하루키는 사쿠라처럼 먼저 상대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사쿠라의 적극적 접근을 상당히 수동적으로 허용했는데, 이는 하루키가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활 패턴에 대해 누구의 관심도 원치 않았고, 혼자 만의 세계에서 머물러 있었죠. 하지만 사쿠라와의 거듭된 만남을 통해 그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의 껍질을 깨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관계의 유익성을 깨닫게 되고 마침내 함께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 알게 됩니다. 마치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싱클레어처럼 말이죠.
사쿠라가 하루키를 만남을 통해 시간의 효용성에서 혜택을 보았다면, 하루키는 단순한 경제적 효용성을 벗어나 선택의 다양성 측면에서 큰 도움을 얻었다 할 수 있습니다. 혼자 만의 작은 세계에서는 선택의 다양성이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동행을 통해 보다 넓은 세계에서 살아갈 때 선택의 범위는 무한히 증폭될 수 있죠. 이렇게 볼 때 하루키는 자신의 세계에서 알을 깨고 나옴으로써, 2차원이 아닌 3차원, 더 나아가 4차원의 세계로 발을 들인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으며, 경제적 측면에서 또한 한단계 높은 단계로 올라섰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경제적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역시나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부각시키며 마무리되고 있네요. 아래와 같이 말이죠.
따스한 봄(하루키)이 오랜 기다림에 목말라 했던 벚꽃(사쿠라)의 향연을 이끕니다.
벚꽃 또한 눈이 시리도록 화사한 꽃잎들을 봄에 선물하네요.
흩날리는 벚꽃의 황홀한 자태 덕분에 봄은 생명을 가득 담은 봄으로 탈바꿈합니다.
눈부시게, 그래서 더욱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그런 봄으로 말이죠.
※ 이 글은 2022년에 출간될 책 <같은 영화 다른 시선(가제)>의 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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