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엄마는 너희에게 물려주고 싶은 두 가지 삶의 정신을 담은 편지를 쓰고 있어. 그래서 요즘 엄마의 머릿속은 온통 그 두 키워드로 가득하단다.
엄마가 쓰고자 하는 두 가지 키워드 중 하나가 ‘무관심’이야. 그 단어에 사로잡혀 마치 정육면체 큐브를 공중에 띄워놓고 이리보고, 저리보고, 아래서 보고, 위에서 보고, 돌려보고, 들여다보듯 진땀을 빼며 ‘무관심’이란 놈하고 한판 승부를 하는 느낌이야.
그런데 그거 아니? 너희들도 나도 옛날부터 큐브 진짜 못했잖아. 엄마는 그게 그렇게 안되더라. 가장 기초 2*2, 3*3 큐브조차 책을 보고, 유튜브를 찾아봐도 잘 안되는 거야.
그냥 보기엔 금방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말이지.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닿을 듯 닿지 않고, 될 듯 되지 않아 엄마를 더 갈증 나게 했어. 이게 뭐라고 슬슬 약이 오르더라. 손가락 기능의 문제인 건지, 이해력이 떨어지는 건지... 겉으로는 ‘못할 수도 있지...’ 쿨한 척 말했지만, 그럴수록 속으로는 꽤나 답답하고 너무 맞추고 싶었어.
어느 날, 엄마가 근무하던 초등학교에 큐브 유행이 일었어. 쉬는 시간마다 여기저기 저학년 아이들이 복도, 도서관, 식당에 모여 앉아 누가 더 빨리 큐브를 맞추나 지들끼리 겨루고 있었지. 마치 엄마를 놀리듯 한 손가락으로 ‘까닥까닥 휘리릭 짠!’ 하며 완성해 내는데 관심 없는 듯 곁눈질로 보았지만 마음 한편엔 부러움이 쌓였단다.
그 무렵부터 엄마는 대형서점에 갈 때마다 큐브를 하나 둘 사들이기 시작했어. ‘그래 뭐든 장비빨이지! 비싼 큐브는 한 손으로 잡고 한 손가락으로 돌려도 부드럽게 잘 돌아가는군!’ 미끄러지듯 기분 좋은 핸들링에 이런 큐브라면 나도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 착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단다. 역시 고수는 장비를 탓하지 않음을 다시 확인하고 맞춰지지 않은 큐브는 너희들에게 슬쩍 떠넘겨졌지.
너희들은 큐브에 관심이라고는 전혀 없었는데 마치 선심 쓰듯 비싼 큐브라며 잘해 보라고 주었단다. 그런데 엄마가 안 되는 큐브를 너희도 진짜 못하는 거야. 엄마 마음속 못된 놈이 슬슬 올라오더라고. ‘도대체 왜 이게 안되지? 쟤네들은 잘도 하는데 저것 좀 뚝딱 잘해서 너희라도 엄마 속 좀 시원하게 풀어주면 안 되나?’ 나는 너희들에게 큐브 잘 맞추는 동영상을 보라고 독려하고, 같은 반 친구에게 좀 물어봐서 배워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큐브에 대한 엄마의 관심을 넘은 집착이 너희들에게 느껴졌을까? 어느 날 네가 알록달록 큐브를 그려왔다. 엄마가 좋아하는 큐브라며... 내밀더구나.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게 큐브였을까? 큐브를 잘 맞추고 싶은 집착이었던 걸까? 며칠 후엔 저녁을 먹고 한가로운 시간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에게 또 큐브 좀 맞춰달라고 하니 아들이 나한테 하는 말 “엄마 큐브가 그렇게 맞추고 싶어?”하고 물었어. 그러더니 집에 있는 망치로 큐브를 순식간에 ‘쾅!’ 내려쳐 산산조각을 내었지. 아직 붙어 있던 조각은 손으로 잡아 뜯더니 기꺼이 나를 위해 색깔별로 조각을 다시 맞춰선 건네주는 것이야. “이렇게 맞추면 되지, 꼭 돌려서 맞춰야 해?”라며 건네준 큐브는 야무지게 끼워지지도 않아서 우르르 부서지고 말았다. 그 순간 당황스럽고, 어이없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무언가 해결되지 않고 묶여 있던 게 풀어지는 느낌을 느꼈단다. 그리곤 너와 한참을 웃었던 그날이 아직도 기억나.
엄마가 큐브 하나에만 관심을 갖고 집착하고 있을 때, 너희는 어떻게든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애쓰고 있었지. 너희 마음이 너무 순수하고 예뻐서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져.
엄마의 관심은 온통 큐브였고,
너희들의 관심은 오로지 엄마였나 봐.
글을 쓰며 회상하니 엄청 찌질한 엄마였다 그렇지?
그 순간 깨진 건 단지 큐브만이 아니었을 거야. 아마도 엄마의 집착, 기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 같은 것들도 함께 산산조각 났던 것 같아.
‘무관심은 선택적 관심의
다른 이름’이었어.
그날 이후 엄마는 무관심의 가치를 조금씩 달리 생각해 보게 되었어. 그리고 처음으로 ‘무관심’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생각하게 되었단다.
그때 너희가 큐브 그림을 그려주고, 큐브를 ‘깨뜨려서’ 보여준 건, 정답이 아니라 해답이었어.
엄마가 집착했던 건 결국 형식이었고, 너희는 마음을 전달하는 본질을 알고 있었던 거야.
무관심은 꼭 외면이나 차가움이 아니란다. 때로는 놓아주는 용기이자, 상대의 방식과 속도를 존중하는 진짜 사랑일 수도 있어. 큐브에 무관심했던 너희는, 너희만의 방식으로 큐브를 ‘완성해’ 엄마에게 보여줬던 거야.
아마 니들이 그렇게라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여적 미련을 못 버린 채 마음 한편에 큐브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을 거야. 이제 엄마는 큐브에 무관심이다. 너희만큼 똑똑하진 못해서 엄마는 아직도 엄마만의 큐브를 맞추는 방법은 발견하진 못했어. 하지만 괜찮아. 니들이 알려줬듯이 인생엔 정답은 없어도, 누구나 자기만의 해답은 있으니 엄마도 천천히, 나만의 때에, 나만의 방법으로 찾아갈게.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가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 했던 어린 시절 그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
엄마는 그게 얼마나 귀한 건지, 절대 잊지 않을게.
그게 바로 엄마가 큐브를 통해, 무관심을 통해, 그리고 너희를 통해 배운 삶의 한 조각이야.
아직도 배우는 중인, 느림보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