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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유랑경음악단 Dec 09. 2019

13회 안녕, (언제일지 모르지만) 다음에 봐

1. 여행의 끝은 항상 아쉽다


숙소의 창을 열고 12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차가운 공기를 마신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아니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여행의 끝은 항상 아쉽다. 모든 끝이 그렇지만 여행의 끝은 더 그렇다. 그동안 부린 여유는 이제 옅은 후회가 된다. ‘저긴 다음에 봐야지, 저건 다음에 먹어야지, 여긴 다음에 더 더 자세히 봐야지’라는 말이 얼마나 공수표인지, 여행에서만큼 현실감 있게 느껴질 때가 어딨을까. 이건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다음에 밥이나 먹자’는 말을 나누며 헤어지는 순간 같다. 다음은 계속 ‘다음’ 일 뿐 ‘지금’이 될 확률은 낮다. 우리 모두 그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더구나 여행에서 만난 러시아의 모든 도시와 정거장은 오래된 친구처럼 친근해진 터였다. 그래서 더 다정하고 서운하다. 우리는 이 여행에서 만난 친구 중에 제일 옷을 잘 입는 멋쟁이,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조금 더 보고자 마지막 부지런을 떨어 이른 체크 아웃을 하고 짐을 맡긴 뒤 성 이삭 성당을 방문하기로 했다. 성 이삭 성당은 이 도시의 랜드마크일 뿐 아니라, 전망대에 오르면 이 도시의 전경을 시원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 이삭 성당의 이모저보를 잘 그린 영상



2. 이 도시의 최고 존엄 성 이삭 성당


성 이삭 성당의 위용 (c) Alex 'Florstein' Fedorov from wikipedia.org


상트 페테르부르크 어디에서 눈에 뜨이는 성 이삭 성당은 당대에는 러시아 최대 규모였고 현재는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다. 길이 111.2미터, 폭 97.6미터로 만 4천 명이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며, 높이는 30층 건물과 맞먹는 101.5미터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어디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100kg의 금박이 입혀진 둥근 황금 돔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독일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회색으로 덧칠했었다는 비화도 있다.


최초의 성 이삭 성당 from ru.wikimedia.org


최초의 성 이삭 성당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 치하에 건립되었으니, 이 도시의 역사가 성당에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강 건너 북쪽 바실리옙스키 섬에 지어졌던 성당은 18세기 초 지금의 자리에 새로 만들어졌다 낙뢰로 소실되었고 예카테리나 2세 때 재건되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르 1세는 더 크고 아름다운 성당을 원했다. 이에 프랑스 출신의 젊은 건축가 오귀스트 드 몽페랑(Auguste de Montferrand)은 위에서 봤을 때는 십자가 형태의 중앙 돔에 네 모서리에는 작은 탑을 올리는 웅장한 설계로 알렉산드르 1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시작된 대공사는 알렉산드르 1세와 니콜라이 1세를 거쳐 알렉산드르 2세 즉위 직후인 1858년에 끝났으니, 1818년부터 무려 40여 년이나 걸린 셈이다. 이 성당 아래 2만 4천여 개의 말뚝이 박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 했는지 짐작이 간다. 원래 습지인 지반에 이렇게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을 축조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던 것으로 그야말로 건축사의 불가사의, 건축사의 쾌거가 아닐 수 없다고 한다. 아무튼, 30대 초반의 나이로 성당 건설에 참여한 몽페랑은 성당 완공 직후인 그 해 7월,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 성당에 뼈를 묻은 것이다. 실제로 몽페랑은 이 성당에 묻히길 원했다. 그러나 정교회 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의 유해는 고국인 프랑스로 돌려보내 진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러시아에 거주하며 필생의 과업을 수행했던 이에게 무척 아쉬운 마지막이다. 다행히 성당 한쪽에 몽페랑의 작은 흉상이 자리하고 있다.   


몽페랑의 공사 현장 스케치 from ru.wikimedia.org


오귀스트 드 몽페랑의 흉상 (c) A. C. Tatarinov at wikimedia.org



3. 성 이삭 성당을 만든 모든 이들에게 경배를


성경에 나오는 장면이나 성인들 그린 성화와 부조가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한 성당에서 이 흉상은 다소 다른 정서를 선사한다. 몽페랑의 단호한 표정과 당당한 분위기는 데상 시간에 등장하는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석고상의 그것과 같다. 이 모든 것이 내 지휘 하에 만들어졌소이다,라고 말한다. 사실 몽페랑은 자신의 모습을 서쪽 파사드 현관의 높은 부조에도 새겨 놓았다. 이 부조는 성 이삭이 동로마 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와 그 부인에게 축복을 내리는 광경을 그린 것인데 왼쪽 끝에는 로마식 토가를 입고 성 이삭 성당의 모형을 든 몽페랑이 자리하고 있다. 이 부조 속 몽페랑의 시선과 표정 역시 자부심이 가득하다. 러시아 정교회의 성인과 동로마 황제조차도 내 작품 속에선 내가 컨트롤하는 소재라는 창작자로서의 당당함 같은 게 느껴진달까?


테오도시우스 황제와 성 이삭의 만남을 그린 성당 서쪽 파사드 현관의 부조 (c) LoKi from ru.wikipedia.org


토가를 입고 손에는 성 이삭 성당의 모형을 들고 있는 몽페랑의 모습 (c) LoKi from ru.wikipedia.org


이런 개성과 자부심은 성 이삭 성당의 내외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그림과 모자이크에서도 느낄 수 있다. 22명의 저명한 예술가들이 참여한 150점의 그림과 63점의 모자이크 등은 종교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경건한 개성을 지닌다. 원래 정교회의 종교 예술품인 이콘은 예술로서의 성격보다는 일종의 신앙 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에 정형화된 구도와 방식이 고수되었다. 그래서 개인이 돋보이는 창작은 지양되었고, 이콘 화가들은 수도자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성 이삭 성당에 그림을 그린 이들은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었다. 특히 중앙 돔의 동정녀 마리아와 천사를 담당한 카를 브률로프(Karl Bryullove)는 ‘칼 대제(Karl the Great)’라고 불릴 만큼 러시아 미술사 전체를 통틀어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또한 부모 모두가 러시아에 귀화한 프랑스인인 프랑스 혈통이며, 어린 시절 이탈리아에 유학해 유럽을 휩쓸던 신고전주의를 깊게 습득했다는 점이다. 프랑스인이며 신고전주의 색채를 짙게 가지고 있었고 광적으로 그리스와 로마시대 유물을 수집하던 몽페랑에게 카를 브률로프는 매우 매력적인 예술가였을 것이다.


12 사도에 둘러 쌓인 동정녀 마리아를 그린 메인 돔의 천정 벽화 (c) Igor Abramov (i-abramov@yandex.ru) from ru.wikipedia.org


(c) D. Alyoshin from wikipedia.org


어느 구석 하나 그냥 지나치기 힘들 정도로 화려한 성당의 내부는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과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림과 모자이크, 색색의 석조 기둥들은 섬세하게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 성당의 건축에 동원된 40만 명의 인력과 수많은 예술가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설계하고 감독한 몽페랑에서 마음 깊이 찬사를 보내며 우리는 한쪽에 그냥 잠시 앉아 있기로 했다. 성당의 거대한 아름다움이 우리의 머리와 눈에서 과부하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 성당의 모든 것을 다 제대로 보기엔 시간도 체력도 넉넉하지 않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게으름 피우지 말고 미리 한 번 와볼걸. 안 그래도 서운한 여행의 마지막 날에 또 다른 아쉬움이 더해진다.


 성 이삭 성당의 내부 360" 뷰 (c) Ximeg from ru.wikipedia.org



4.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일몰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여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 이삭 성당을 방문한 두 번째 주요 목적, 전망대로 발길을 옮겼다. 전망대, 콜로네이드의 입구는 성당의 입구와 다르다. 원형으로 된 계단 262개를 밟아 전망대에 오르면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전경이 오밀조밀하게 펼쳐진다. 성당의 천사상 너머로 피의 사원, 삼위일체 성당, 그리스도 부활 성당, 해군성, 네바강, 그 건너 페테르 파블롭스크 요새, 에르미타주 미술관, 궁전 광장, 알렉산드로브스키 정원, 성 이삭 광장 등을 찾을 수 있다.


천사상 너머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전경 from 상트페테르부르크 관광청 홈페이지 visit-petersburg.ru


북쪽의 겨울은 해가 짧다. 세 시 반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해가 지고 있다. 그림 같다는 진부한 표현이 망설여지지 않는다. 겨울 오후의 비스듬한 햇살 속의 도시는 너무 아름답다. 순간 빨개진 코끝이 찡해지면서 여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마지막은 또 다른 시작이다. 이 여행과 이 도시에서의 아쉬움은 우리를 어디로든 이끌 것이다. 다시 이 곳일 수도 있고 다른 곳일 수도 있다. 안녕, 언제일지 모르지만 다음에 봐. 우선은 집에 돌아가야겠다. 이제 짐을 찾고 공항으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다.




방유랑 경음악단의 <시베리아 황당 열차>는 2주에 한 번 업데이트됩니다.

가상여행과 함께 창작된 음악도 함께 올려집니다.

낭독과 사운드트랙은 유튜브와 오디오 클립, 사운드 클라우드(사운드트랙만)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유튜브 낭독: https://youtu.be/U8e-TYfg8sY 

유튜브 사운드트랙: https://youtu.be/T7WBqPT_qyE


네이버 오디오클립 낭독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431/clips/26

네이버 오디오클립 사운드트랙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431/clips/27 

사운드클라우드 사운드트랙 https://soundcloud.com/bangyurang/1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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