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제 일찍이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역에서 초고속열차인 삽산을 타고 약 4시간을 달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유럽으로 통하는 창을 뚫기 위해, 저 바다 앞에 발을 굳게 딛고 일어서기 위해 자연은 이곳을 우리에게 점지해준 것이다"
- 푸시킨, 청동 기사, 1833
푸시킨의 표현처럼 표트르 대제는 발트해의 동쪽, 핀란드만과 접해있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던 이곳에 서구화와 근대화라는 목적을 가지고 1703년 러시아에서 가장 유럽다운 인공의 운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설립하였다. 이후 3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이 도시는 몇 개의 공식 명칭을 더 거치는데, 1차 세계대전 시 독일과 대결하게 되면서 러시아식 발음 페트로그라드(1914-1924)로, 레닌의 사망 후에는 그를 기념하기 위한 레닌그라드(1924-1991)로,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 해체 직후인 1991년 9월 6일 원래 이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되돌아갔다.
네바 강과 상트페테르부르크 Image from wikipedia common, Public Domain
2. 레닌그라드의 추억
레닌그라드. 지금은 사라진 이름.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러시아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20여 년 전부터 나에게 레닌그라드라는 명칭은 낯설지 않았다.
바로 영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1989) 덕분이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영화포스터,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1996. 05 개봉, 출처: 다음영화
인적이 드문 툰드라 지역의 음악밴드 "레닌그라드 카우보이"는 영화 속에서 내내 "형편없는 밴드"로 묘사된다.
쓰레기도 팔린다는 미국으로 가라는 흥행업자의 얘기를 듣고 "미국인들로 구성된 밴드"라는 거짓말을 내세워 뉴욕으로 향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관계자 역시 이들의 연주를 듣고 실망하며 멕시코에 있는 자신의 사촌 결혼식에 너희들의 음악이 필요할 테니 가보라고 한다.
밴드는 뉴욕에서 다시 멕시코로 부지런히 이동하며 틈틈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가는 곳마다 그들의 음악을 듣는 관객들의 반응은 차갑지만, 툰드라 지역을 떠나기 전까지 그들이 전혀 접하지 못했을 로큰롤, 컨트리, 하드록 등의 음악을 분위기에 맞춰 얼렁뚱땅 잘도 해내는 모습이 내게는 어찌나 근사하던지. 강렬한 비주얼과 무표정으로 연주하는 화려한 플레이, 거기에 어색한 듯 조금씩 진화하는 위트 있는 퍼포먼스는 나를 더욱 행복의 세계로 인도했다. 그렇게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와 사랑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잡지에 소개되어 있는 텍스트를 읽어보는 것 외에 다른 정보는 부족했던 그 시절,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레닌그라드"가 가상의 지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보이지 않게 던져져 있던 그 추억이 약 20여 년도 더 지난 오늘, 레닌그라드를 만나면서 가장 먼저 떠올려졌다는 게 참 재미있다. 자본주의와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비판이 담긴 블랙코미디 영화에서 왜 그들의 밴드 이름에 레닌그라드가 붙었는지, 그 의미가 가볍든 무겁든 그 자연스러움에 이제 와 고개가 끄덕여진다.
3. 혼자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해 가질지 안 가질지
계속되는 레닌그라드의 이야기, 이번에는 러시아 영화다.
새해가 되기 전날 러시아 TV에서 반드시 방영한다는 러시아의 국민영화 "운명의 아이러니"(엘다르 리아자노프 감독, 1975, 러시아)는 소비에트 시절 레닌그라드가 과거의 때를 벗고 공산주의식으로 개조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획일화된 아파트를 건설했던 바로 그 시대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건축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만들어진 획일화된 아파트가 전지역에 도배되는 내용을 담은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한다
새해 전날 친구들과 함께 사우나에서 술을 진탕 마신 남자 주인공 "제냐".
술에 취한 채로 원래의 목적지 모스크바가 아닌 레닌그라드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제냐는 자신이 도착한 곳이 다른 도시일 거라는 의심 없이 자신의 집과 똑같은 주소, 똑같은 아파트, 심지어 열쇠 구멍까지 똑같은 그 집으로 들어가 잠이 든다.
그 집의 원래 주인인 여자 주인공 "나댜"는 자신의 집에서 자는 이 낯선 남자를 보고 놀랄 수밖에.
그 남자를 쫓아내려고 싸우고, 티격태격하다가 영화의 엔딩에서는 결국 두 사람이 서로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구소련의 상징으로 느껴지는 전통적인 이미지의 모스크바와 유럽 느낌의 예술과 낭만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꽤 대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운명을 같이하고 같은 그림을 만들어내던 시절이 있었다니, 또 그러한 시대에 만들어진 로맨틱 코미디라니. 특수한 환경이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던 그 아이디어가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온다.
<운명의 아이러니>는 영화와 더불어 음악 또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러시아 특유의 대중음악 장르인 "에스트라다" 음악들로 채워져 있다. "에스트라다"는 단일한 대중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보급된 친정부적 소련 팝이다. 대중음악 전반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장르로 이것이 무엇이라고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지만 에스트라다 음악을 들어보면 멜로디가 쉽고 귀에 잘 들려 누구나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다. 전 세계에서 통하는 약간 예스럽고 정감 가는 촌스러움이 가미된 올드팝 감성이랄까.
영화음악은 작곡가 "미카엘 따리베르지예프"가 작업했는데 그가 만든 연주곡, 그의 노래 그리고 우리에게는 백만 송이의 장미로 익숙한 "알라 뿌가쵸바'의 아름다운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영화의 아이디어가 그러했듯 노래 가사에서도 사회주의 체제를 살아가는 그들의 감성과 위트가 보인다.
<모스크바 게스트를 위한 아리아>
(Сергей Никитин - Ария московского гостя (Aria for a Moscow Guest))
지금 우리가 와있는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 예카테리나 2세가 등장하는 역사적 장소일 뿐 아니라 푸시킨, 고골, 도스토옙스키로 대표되는 수많은 문학 작품들의 배경지이며 차이콥스키와 쇼스타코비치 음악의 무대이고 변화를 꿈꾸는 혁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화학자 멘델레예프, 음악가 스트라빈스키, 소설가 나보코프, 소련 젊은이들의 우상 빅트로 최 등등의 많은 이름들이 연관된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1890년대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스카이라인 이미지 Image from wikipedia common, Public Domain
자연과 인공이 절묘하게 결합한 운하의 도시, 줄지어 서 있는 우아한 유럽식 건물들이 그 자체로 야외 박물관을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도시. 물론 그 이면에는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고, 열악한 위치적 장애로 인한 홍수 피해의 두려움도 있었다. 이러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이중성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이 도시와 함께했고, 그러한 특성으로 인해 푸시킨도, 고골도, 도스토옙스키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사랑했고 동시에 미워했다.
5. 네프스끼 거리를 믿지 마라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넵스키 대로는 예카테리나 2세 시절 이후 고급 백화점, 호텔, 상점, 궁전, 극장, 카페, 서점, 레스토랑, 은행 등등의 건물들이 가득 들어서면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쇼핑가를 연출했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 거리에는 여러 계급과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9세기 네프스키 거리의 모습 Image from wikipedia common, Public Domain
"뻬제르부르그에는 네프스끼 거리보다 더 나은 곳이 없다. 이 거리는 이 도시를 위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 그 거리가 즐겁지 않은 자가 대체 누구란 말이가? 네프스끼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이미 산책하는 기분에 젖어든다. 해야 할 어떤 중요한 일이 있어도 이곳에만 오면 확실히 모든 일을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
"오, 이 네프스끼 거리를 믿지 마라!... 모든 것이 기만이고 모든 것이 꿈이며 모든 것이 겉보기와는 다르다! (...) 이 네프스키 거리라는 건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 무엇보다도 밤이 이 거리의 구석구석까지 들이차고 짙어지면서 하얗거나 크림색으로 빛나는 집 벽들이 드러나게 될 때, 도시 전체에 굉음과 번쩍이는 불빛이 넘쳐흐른다. 무수한 마차가 다리 쪽에서 몰려오고 마부가 고함을 치며 말 위에서 뛰어내릴 때, 그리고 악마가 모든 것들을 실제 모습으로 보여주기를 거부하고 램프의 불을 직접 켤 때, 네프스끼 거리는 더욱 심하게 사람들을 속인다."
네프스끼 거리가 뻬쩨르부르그의 모든 것이라는 찬양으로 시작하는 고골의 소설 속에서 결국 이 거리는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허위와 환영의 공간, 영혼 없이 몸들만 걸어 다니는 '악의 공간'으로 정리된다.
고골의 작품 속에서 이 거리는 속물적인 다수의 귀족을 만족시키는 곳이면서 동시에 그들의 바로 옆 어둡고 작은 골방에서는 순수한 영혼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네프스끼 거리는 영혼이 부재한 음탕하고 퇴폐적인 쾌락의 장소였던 것이다. 씁쓸한 도시의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에도 넵스키 대로는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많은 이들이 모인다.
가보아야 할 명소들이 너무나 많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이지만 마지막 여행지가 주는 느긋함 때문인지 궁전도, 박물관도, 성당도 어느 곳 하나 굳이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우리는 보트를 타고 예르미타시 박물관, 성 이사악 성당,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의 명소들을 지나며 도시의 운하와 네바강 전경을 감상했고 구해군성에서 알렉산드르 넵스키 수도원까지 4.5km로 뻗어있는 넵스키 대로를 천천히 걸었다.
모이카 강 주변 모습
운하와 하천을 따라 아름답고 정교하게 늘어선 건물들, 북방의 베네치아로 불린다.
넵스키 대로의 랜드마크 싱거 빌딩, 옐리세예프 서점, 아브로라 영화관을 지나고, 꽤 추운 날씨에도 거리에 나와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를 만난다. 모이카 운하와 그리바예도르프 운하, 폰탄카 강을 가로지르며 계속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
"예쁘다... 왜 강이 있는 곳은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까."
어느덧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밤이 찾아왔고,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씩 켜지며 밤의 색채로 그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6. 예술을 사랑하는 도시
"언니. 우리 재즈클럽 갈래요?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재즈클럽이 많더라고요."
"좋아. 근데 왜 이곳에 재즈클럽이 많은 거지?"
"모르겠어요. 원래 러시아에서 재즈는 부자들이 듣는 음악이었다는데. 우리 같은 평범한 여행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재즈바들도 많으니 참 다행이에요."
"재즈 얘기가 나오니 생각났는데, 강이 있어서 그런가? 왠지 지금 우리가 <미드나잇 인 파리> 포스터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어."
"아! 그러게요. 낮에는 도시가 회색 섞인 푸른 파스텔톤의 느낌이었는데 밤이 되니 오히려 불빛에 비친 강의 파란색이 더 짙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포스터처럼요."
"우리 그럼 칵테일 한 잔씩 마시면서 라이브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곳으로 가자"
우리는 이제 막 라이브가 시작된 듯한 가까운 재즈바로 들어갔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재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말을 들었는데 재즈 뮤지션들이 펼치는 잼 연주도, 그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도 이 도시의 밤과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The Hat Bar에서 PM 10:00~AM 2:00(상트페테르부르크 시간, 우리나라와의 시차는 6시간)에 진행되는 공연을 실시간라이브로도 볼 수 있다.
러시아를 여행하는 동안 거리에서 우연히 본 버스킹부터 오늘의 재즈 라이브까지 나를 실망하게 한 공연이 하나도 없다. 여행이라는 게 어차피 낯선 곳에서 발견되는 새롭거나 익숙한 것들의 개인적인 감성과 감각을 즐기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허영과 욕망이 섞인 것인지, 순수한 것인지 그들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볼 능력은 없지만, 내가 느낀 러시아는 예술을 정말 많이 사랑하는 나라다.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예술을 정말 많이 사랑하는 도시다
해가 질 무렵 네바강의 모습
방유랑 경음악단의 <시베리아 황당 열차>는 2주에 한 번 업데이트됩니다.
가상여행과 함께 창작된 음악도 함께 올려집니다.
낭독과 사운드트랙은 유튜브와 오디오 클립, 사운드 클라우드(사운드트랙만)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