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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일춘 Oct 22. 2021

합격자 발표를 하고 문득


같은 방향으로 뛰면 1등은 하나밖에 없습니다그러나 동서남북으로 뛰면 네 사람이 1등을 하고, 360도 방향으로 각자 달리면 360명이 모두 1등을 하지요.”  - 이어령 짧은 이야기긴 생각” 에서



차단벽이 설치된 책상에 앉아 마스크를 쓰고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은 지 수 시간째다. 히터를 틀어놓았지만 평가장은 온기가 1도 없다. 창문과 문을 활짝 열어놓은 터라 삼지사방에서 영하의 찬바람이 매섭게 들이친다. 자판을 두들기는 손가락 마디마디에 북서풍이 휘휘친친 감긴다. 찬바람이 코끝을 할퀸다. 한겨울에 아이스크림을 깨물어 먹은 것처럼 알싸하다. 바르르 몸이 떤다. 춥다. 그 끝에 잠이 솔솔 온다. 졸리다. 한 며칠 푹 자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기일 내 평가를 마무리해야 된다는 조바심이 갈마든다.


여느 해와 달리 지난 두 달여간 이렇게 추위와 싸웠다. 아니 코로나19와 싸웠다. 수험생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도 싸웠고 끝내 버텨냈다. 학생 선발과 관련된 평가업무만으로도 진이 빠지는데 코로나19 방역까지 더해져 정말 고된 시간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대학입시도 모든 게 처음이다. 발열체크, 문진표 작성, 방역, 수시로 환기, 비대면 면접, 유증상자 관리 등등      


무엇보다 입시업무 담당자들의 건강관리가 가장 큰 이슈였다. 만에 하나 단 한 사람이라도 확진이 되거나 자가격리를 하게 되면 업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남없이 수시로 발열체크를 하고, 손을 씻고, 식사시간 외에는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개인적인 일정 등은 모두 뒤로 미루고 학교, 집, 학교, 집의 단조로운 생활패턴을 유지했다. 심지어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생활했다. 이런 노력 덕분이었을까?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를 했다. 합격자 발표는 수험생뿐만 아니라 입시 업무에 종사하는 우리에게도 얼마나 고대하고 고대한 날인지 모른다.          




합격자 발표와 동시에 우리 대학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수험생들과 학부모가 이 발표를 얼마나 기다렸을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비단 우리 대학만 그럴까? 아니다. 다른 대학들도 합격자 발표와 동시에 실시간 검색어 순위권에 든다. 이는 수험생과 학부모의 간절함의 결과일 거다. 이 간절함의 결과를 마주할 때마다 부채감이 늘 마음 한구석에 남는다. 


대학에 기대하는 것은 아마도 태생적인 격차를 줄여주고, 신분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해줄 거라 믿기 때문일 거다. 우리 앞 세대가 그러했다. 대학 진학이 신분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그 일련의 출세(성공신화)를 오랜 기간 동안 목도(目睹)해왔으니 이런 기대를 갖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학벌과 학력을 신분으로 만든 불평등 구조를 재생산해냈다. 이 재생산은 다시 대학 경쟁으로 이어졌다. 좀 더 빨리 달리고자, 좀 더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자 선행학습이 오늘도 성행중이다. 




대학입시의 이슈는 상당 부분 구조적 불평등에서 기인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정'이라는 이슈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다. 대입제도 개혁이라는 기치를 들고 외친 공정성 논의는 공허할 뿐이다. 교육 외부의 연원(淵源)을 대입전형에서 그 해결책을 찾는 꼴이니 어찌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니겠는가?


대학입시 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지 오래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건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졌다. 개인의 타고난 운이 일생을 좌지우지하고, 출발선의 격차가 일생의 격차로 고착되는 모양새다. 기껏 대책이라고는 ‘아랫돌 빼어 윗돌 괴고 윗돌 빼어 아랫돌 괴는’ 식이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대학입시 제도는 조변석개(朝變夕改)했다. 지난 12년 동안 대학 입학 업무에 종사하며 교육은 절대 정치적 중립의 영역이 아님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학교육의 근본 목표는 무얼까? 아마도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기초를 마련해주는 것이 아닐까?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해주는 것이 아닐까? 평가라는 잣대로 ‘특별한 아이들’을 ‘평범한 아이들’로 살게 하고 있진 않은지? 계층을 재생산하는 일에 동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를 하고 교정을 나서며 문득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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