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연습실의 사내들(3)
“근데 형은 왜 음악을 그만뒀어요?”
내가 물었다. 바삭, 나무의 껍질이 부서져 내리는 것처럼 그의 손이 부자연스럽게 머리칼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건 왜?”
“형이 음악을 그만두면서 성이도 밴드를 그만 뒀다고 들었거든요.”
피식, 패리가 몽타주 같은 표정을 부수며 살짝 웃었다.
“좋은 친구네. 얘기하자면 좀 긴데……. 같이 자취하던 친구가 있었어. 소설가 지망생인 친구였는데, 둘이 아르바이트하면서 겨우겨우 먹고 살았지.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술집에서 새벽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걸어서 집에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어.”
다시 한번 피식. 밋밋한 몽타주의 왼쪽 눈이 꿈틀거렸다.
“사고 당시, 녀석의 손에는 반쯤 먹다 남은 햄버거가 들려있었어. 왜 있잖아, 편의점에서 파는 그런 거. 그리고 주머니에는 햄버거 포장지 하나가 들어있었고. 알고 봤더니,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택시비로 3천 원인가 얼만가 날마다 받아서 그걸로 햄버거 사 먹고 집까지 걸어온 모양이더라고. 그걸 아니까, 괜히 기분이 나쁜 거야. 순간 배신감이 들더라고.
그 전날 마침 도시가스비가 석 달이나 밀린 바람에 이번에 안 내면 끊기게 생겨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가 그거 냈거든. 쌀도 떨어졌을 때라 당장 밥도 못 먹게 생겼는데, 한 겨울이라 가스 끊기면 난리 날까 봐 어쩔 수가 없었지. 그래도 굶을 수는 없어서 집안을 다 뒤져서 동전 모으고, 집에 쌓여있던 술병 팔고 해서 겨우 빵으로 한 끼 해결했어. 참 암울했지.
그래도 걘 일하는 데서 밥은 먹었겠지. 난 아르바이트 하는 날도 아니어서 빵 하나 먹고 하루 버티고 있는데, 녀석은 당장 자기가 배고프니까 혼자 햄버거 두 개 사 먹은 거야. 그게 왜 그렇게 얄밉고 서운하던지.
그러다 생각했어. 아, 결국 세상은 먹고 사는 문제가 다였구나. 걔가 애는 원래 참 착했거든. 하지만 당장 배고픈 상황 앞에서는 걔도 친구고, 의리고, 양심이고, 뭐고 아무 것도 없는 거야.
한참 친구를 원망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름이 끼쳤어. 그렇게 친하고 좋아했던 친구를 고작 햄버거 한 두개 때문에 속으로 죽일놈을 만들고 있는 나를 발견한 거지. 배고픔 앞에 진짜 치사했던 건, 배신했던 건 걔가 아니라 나였던 거야.
순간 내가 지금 뭐 하나 싶더라고. 사실 그냥 기타를 쳤을 뿐, 기타가 미치도록 좋았던 것도 아니었어. 기타를 정말 잘 쳐서 어떻게 잘 돼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그래서 집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아버지한테 돈을 빌려서 포장마차를 시작했지.”
말하는 중간에 말보로 하나를 입에 문 패리는 말을 마칠 때까지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았다. 그저 종종 필터를 씹으며 손을 움직일 뿐. 그러다 말이 끝날 즈음에는 아예 입에 물었던 담배를 오른손으로 옮겨 들었다.
"그 친구분이랑은 여전히 친하게 지내요?"
"처음엔 마음이 상하기도 했고, 뒤에는 녀석 옆에 같이 있는 것조차 부끄러웠고. 그렇게 어색해져서 멀어졌어. 이젠 아예 생활의 결도 다르고."
“후회 안 하세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패리는 고개를 저었다.
“후회 안 해. 어차피 기타야 집에서 혼자 갖고 놀아도 되고, 허전하면 애들 모아서 여기서 잼 한 번 하면 되고. 다행히 이 건물이 베이스 치던 친구네 거라 웬만하면 이 연습실에서 쫓겨날 일은 없거든.”
‘피식’보다는 ‘훗’에 가까운 느낌으로 그가 가볍게 웃었다. 그제야 그는 다시 담배를 입으로 옮겨 불을 붙였다. 훗, 가볍게 들이켰다 내쉰 연기가 그의 가벼운 웃음소리처럼 근처에서 술렁거렸다.
원래 내가 묻고 싶었던 말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담배 연기를 보자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든 저것이든, 후회 따위는 없다는 듯한 느낌으로 패리는 담배를 피웠고, 그의 담배 연기는 그 만큼이나 가볍고, 편안해 보였다.
“나 보다는 저 새끼가 진짜 후회하고 있을 걸.”
패리가 담배를 든 손으로 성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소파에 앉아 턱에 손을 괴고 있던 성이가 되물었다.
“내가 뭐?”
“너 진짜 후회 안 하냐? 지금이라도 말만 해. 다른 밴드라도 소개해줄 테니까.”
“됐어. 나도 알아. 나 기타 소질 없는 거. 그리고 내가 형 없이 딴 밴드 가서 잘 적응할 리도 없고. 난 후회 안 해.”
“웃기지 마. 마루타, 넌 어떻게 생각하냐?”
그가 화살을 내 쪽으로 돌려 물었다. 그러나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당장 그가 기타를 쳤고, 밴드를 했었다는 사실도 어제 처음 들었다. 내가 그의 기타와 음악과 밴드 생활에 관해서 뭐라도 아는 게 있을 리 없었다.
“우리가 알고 지낸 지 십 년쯤 돼. 그동안 쟤는 꼭 나를 중구 형이라고 본명 딱 써서 불렀어. 내가 패리라는 별명을 짓고도 어색하다고 한 번도 그렇게 부른 적이 없는 놈이야. 근데 밴드를 시작한 후로는 저 새끼, 절대로 나한테 중구 형이라고 안 부른다. 꼭 리더 형이라고만 부르지. 지금도. 그런 놈이야, 쟤는. 난 언젠가 꼭 저 새끼가 다시 기타를 잡을 거라고 믿고 있어.”
패리의 말을 들으며 성이를 살폈다. 성이는 턱에 괴었던 손을 푼 채, 눈을 땅으로 내리깔고 있었다. 표정이 조금 침울해 보였다.
“야, 그러고 있지 말고 친구도 데려왔는데 노래나 하나 불러 봐. 나도 오랜만에 네 노래 한 번 들어보자.”
패리가 말했다. 그러나 성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유난히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됐어. 노래는 무슨 노래야. 기타도 없고.”
“기타? 상진이가 옛날에 쓰던 통기타 연습실에 버리고 갔다. 턱 없는 핑계 대지 말고 한 번 해봐. 연습실까지 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친구 그냥 보낼래?”
패리가 턱짓으로 나를 가리켰다. 그 짧은 순간 그는 내게 알듯 모를듯한 눈빛을 보냈다. 나 역시 녀석의 기타가 궁금했던 차였으므로, 곧장 그를 따라 성이에게 말했다.
“나도 들어보고 싶어. 너 기타 치는 거.”
내 말에 성이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기타 어디 있는데?”
“저기 캐비닛 옆에 어디 있을 거야.”
“튜닝은 돼 있는 거야?”
“저번 주에도 상진이 술 처먹고 쳤는데 괜찮은 것 같더라.”
성이는 캐비닛 옆으로 다가가 주변에 쌓인 상자와 쓰레기봉투를 치우고 검은색 가죽 케이스에 들어있는 기타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기타를 어깨에 둘러메고 몇 번 줄을 튕기며 상태를 확인했다.
“한다.”
성이가 조금 굳은 얼굴로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패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살짝 미소를 지으며 성이에게 가볍게 박수를 보냈다. 성이는 기침을 몇 번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타 줄에 손가락을 얹었다.
나는 숨을 죽였다. 그리고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아직 기타를 튕기기도 전인데, 나는 이미 무언가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공기의 울림이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의, 약간의 먼지가 떠도는 것 같은 공기의 울림. 그 울림이 어딘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이미 내 몸이 그 울림에 반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성이가 기타를 튕겼을 때, 나는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완전히 어두워진 시야에서 부드러운 색 띠의 환영이 유유히 떠돌았다. 잠시 후, 성이의 노래가 기타 선율 위에 얹혔다.
분명 그것은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그날의 Delight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