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기억나는 우울은 22살의 봄과 25살의 여름이다. 22살 봄에는 허영심으로 인한 우울이었고, 25살의 여름은 자의식 과잉과 잘하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괴로워하던 우울이었다.
22살 봄에는 친구가 나에게 빛을 잃은 것 같다는 말을 했었다. 늘 웃던 모습은 사라지고 걱정이 될 정도로 어둡다고. 그 말은 여전히 나에게 남아있다. 그리고 궁금하다.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떤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봤을까?
그때의 우울은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은 나의 현실에 대한 괴리감에서 왔다. 사실 그때 나는 테마파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어트랙션에서 근무가 꿈이었지만 어떤 우연인지 그전에 근무하던 상점으로 다시금 일을 하게 되었고 그게 싫었다. 하지만 되돌아보니 그곳에서 만난 인연과 오래오래 연이 길게 닿아있고, 즐거웠던 때였다. 그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여하튼, 나는 현재를 즐기지 못했고 늘 불평하고 현재에서 도망가려고 발버둥만 쳤다.
25살 여름에는 나의 첫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옥죄여오던 부담감이 있었다. 잘하고 싶지만 무서워서 도망가고 싶었던, 모두가 나의 결과물을 바라보는 것 같았던 그때. 그 망상이 나를 괴롭혔다.
그러면서 속으로 울면서 되뇌었던 것 같다. 이게 나야. 이렇게 잘 해내지 못하는 게 나라고. 나를 탓하는 소음만 커져갔다.
하지만 이 시기들 덕분에(정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명상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내 생각이 얼마나 진실과는 먼 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생각은 진실이 아니며, 그 생각으로 마음을 혼란스럽거나 힘들게 하지 말 것. 부정적인 생각이 일어날 땐 재빨리 알아차리고 끊어낼 것. 대신 현재에 있는 감각을 살릴 것. 그리고 될 수 있다면 기쁨을 느낄 것.
누군가는 긍정을 좋지 않게 본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안다. 긍정은 나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고, 더 많은 희망을 주며, 성장하는 나를 만들어준다는 것. 그 마음들이 매일 쌓여 행복한 나를 만든다는 것.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인생에서 행복을 수단처럼 사용하라'는 말. 내 인생을 잘 살기 위한 수단으로 맘껏 부려먹으라고. 목표가 되면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수단이 되면 언제든 꺼내어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여하튼 수단이나 목표나 그 단어들이 뭔 상관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