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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마레 Aug 14. 2024

누구세요.

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씬으로 읽는 단편영화


잊지 말아요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똑똑.


모르는 사람이다.

누구세요?


당신은 누구입니까.

단편영화 <잊지 말아요> 중에서


이 영화는

치매로 딸 윤슬조자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 조경과

여전히 

어린 시절 어긋난 엄마와의 시간을

잊지 못하는 윤슬의

기억에 관한 

어느 여름날의

이야기다



 

윤슬은 매일 엄마의 집, 문을 두드린다.

 딸 윤슬을 알아보지 못한 엄마 조경은

여전히 서른 살에 머물러 있다.


윤슬은 

 새로 이사 온 이웃이라 둘러대며 

서른 살 동갑내기 친구가 된다.


엄마와 딸이 현관에서 마주치는 이 장면은

같은 앵글과 대사로 두 번 반복된다.


 대본을 통해 모녀의 만남을 들여다 보자.




5. 조경의 집 부엌 ­ 저녁 


부엌에 서 있는 조경의 모습이 보인다. 

끓고 있는 찌개가 보인다. 

조경이 쌀을 씻다가 중간에 멈춘다. 

손가락을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 접어본다.
 그때 울리는 초인종 소리. 


조경 


(손을 행주에 닦으며 문을 향해 걸어간다)

 네~ 현관에 다가가 문을 열자 윤슬이 떡이 담긴 접시를 들고 서 있다. 


윤슬 


(활짝 웃으며) 안녕하세요! 


조경

누구세요? 



윤슬 

(떡이 담긴 접시를 내밀며) 


306호로 이사 온 사람인데, 

떡 좀 드리려고 왔어요! 

조경이 윤슬이 건네는 떡을 받아 든다. 





31. 조경의 집 앞 복도 ­ 낮 


윤슬이 조경의 집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른다. 

집 안에서 조경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조경

누구세요? 


윤슬 

엄마, 나야


 문을 여는 조경.

 두 눈이 커진 얼굴로 윤슬을 바라본다. 


조경

누구.. 세요? 


-END- 




딸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에게

 딸 윤슬은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대신 엄마가 좋아하던

떡과 과자를 건네고

 노사연의 노래 '바램'을

같이 듣고 함께 밥을 먹으며

매일매일 곁을 맴돌 뿐.


기억을 잃은 엄마는 

매일매일을 수첩에 기록한다.


수첩은 엄마와 딸을 이어주는

전하지 못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딸 윤슬이 어린 시절

일기장에 적어 놓은 

엄마에 대한 마음처럼.


젊은 조경은 돈을 벌어 

딸 윤슬을 잘 키우고 싶었다.


어린 윤슬은 엄마의 바쁜 시간을 

돈으로라고 사고 싶었다,


소풍날 혼자서 김밥을 싸던

어린 윤슬은

 바닷가에 같이 가기로 한 날조차 

일 때문에 약속을 어긴 엄마가 너무 밉다.


딸의 손에 몇 푼의 돈을 아이 손에

쥐어주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던 

엄마 조경은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건넬 수가 없었다.


딸 윤슬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엄마 조경의 나이가 될 즈음,

둘은 다시 그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처음으로 찾은 바닷가.

그제야 엄마 조경은 잠시나마

딸 윤슬을 알아본다. 


그제야 

둘은 그간 못 나눈 마음을

건네기에 이른다.


 엄마의 기억은

끝내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만다.

오늘도 문을 두드리는 딸 윤슬을 

향해  다시 묻는다.


누구세요.

>2021. 8.22 3회 차 태안 촬영현장>

2021년 8월

잊지 말아요 팀의 여름은 뜨거웠다.

태안의 바닷가는 그래서 더 반짝였다.

<젊은 조경, 어린 윤슬, 어른 윤슬 배우님들과 대본리딩>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

우리는 매번 마스크를 썼다 벗었다 했지만

즐거웠던 리딩현장의 눈웃음을 가리지 못했다.


치매와 관련된 단편영화들이 참 많다.

내일 촬영을 앞둔 영화 한 편도 

치매와 관련이 있다.


치매는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나 자신의 이야기가 된 시절이다.


3년 만에 노트북 폴더에서 다시 꺼내 본

단편영화 '잊지 말아요'


새로웠고 눈부셨다.

함께 한 그 시절이 다시 소환되는 매직.


그래요. 우리

'잊지 말아요' 


윤슬처럼  빛나는 우리들의 시절.

<타이틀 시퀀스>



잊지 말아요: Fiction/Color/2021/35'44"

각본/감독: 공윤경

출연: 오유선, 유인, 홍채은, 장마레, 이준빈, 김하영, 공윤경, 이택진, 양예진

같이 만든 사람들 : 정예진, 이준호, 김수연, 최수연, 이준빈, 이민혁, 정해슬, 김민지, 원민식, 임명건, 이준영, 이택진, 김하영, 박금령, 김혜수, 양예진, 이준호, 이규현, 석준수


     사랑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사랑의 크기와 무게는

 다르지 않음에 주목한

공윤경 감독의

    영화로운 시절을 응원합니다.




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100명의 마레가 산다


수요일은 장마레의 브런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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