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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마레 Aug 07. 2024

북 치는 사람

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씬으로 읽는 단편영화


시에 쓰는 몸





제목이

심상치 않다.


뭐지? 뭘까!


처음 내 손에 쥐어진 제목은

'모든 작은 몸'이었다.


단편영화 <시에 쓰는 몸> 중에서


이 영화는 옴니버스다.

아이의 시' 이마', 청춘의 시 '땅'

노년의 시 '북 치는 사람'

각기 다른 세대를 사는

여성 3인이 스스로 각성하는

몸에 대한 탐구를 그린

아트무비다.




기획의도가 좋았다.


각 세대가 느끼는 생각을

몸으로 말하고 표현한다는 게 좋았다.


시가 좋았다.


내가 맡은 김혜순 님의 '흐느낌' 편은

 상징적이었고 호소력이 있었다.


나의 몸, 노년의 몸은

시인 김혜순 님의 '흐느낌'을 어찌 입게 될까.


나는 시에 기대 보고자 했다.


감독이 영감을 얻고

표현하고자 하는 노년의 몸이

거기에 있으니.


김혜순 님의 시 ' 흐느낌'부터 만나보자


그럴 때가 있다 갑자기


 느닷없이 내가 내 몸속으로

깊이깊이 숨어들 때가


 그러면 또 내가 그걸 못 견뎌서

내 몸속에서 춤추는 사람 천명이

쏟아져 나온다

  

여름비가 오열하는 파도처럼

춤추는 사람 천명을 때린다

격정적으로 때린다


숲의 천 그루 나무들이

전신으로 물방울을 튀기며

쏴아 쏴아 군무에 빠져 있다


그럴 때가 있다 갑자기

느닷없이 내가 내 몸속으로 깊이깊이

숨어들 때가


들어가선 못 빠져나와 안간힘 쓸 때가


그러면 또 내가 그걸 못 견뎌서

내 몸속에서 북 치는 사람 천명이

쏟아져 나온다


그래도 아직 몸통 속에 갇힌

눈물 한 방울 간신히 몸 밖으로 떨어지고

세상의 모든 우물이 넘쳐흐른다.


  광릉 수목원 앞길 자동차들이

배처럼 떠 있다.


김혜순, 시집 한잔의 붉은 겨울 ' 흐느낌'

문학과 지성(2004)



            

 '북 치는 사람'  

시의 한 문장에서 따 온 이 말은

세 번째 옴니버스의 제목이 되었다.


 북 치는 사람.


시인은 분명 노년의 삶을 두고 쓴

문장은 아니었을 텐데

감독은 또 왜 이 문장에서

아니면 이 시 전편에서 노년의 몸을 떠 올렸을까.


이 영화는 세 편의 시로 이뤄져 있다.

몸으로 세 편의 시를 상징화했다.


1, '이마'는

톡톡 건드려지는 몸이다.

이마는 아이에게 세상과 만나는

작은 창과 같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싱그럽기 그지없는 아이의 몸.

배우가 직접 시를 쓰고 몸으로 표현했다.

시에 쓰는 몸 1편 '이마' 중에서

2, '땅'은

봉긋 솟아오르는 몸이다.

울뚝불뚝 척추 마디마디,

작은 봉우리들이 산맥을 만들듯

청춘의 몸은 꿈틀거린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이 영화의 조연출이자 배우로 출연한

정하민감독이 직접 시를 쓰고 몸으로 해석했다.

시에 쓰는 몸, 2편 '땅 '중에서


아이와 청춘의 몸은 노년에 이른다.


3, '북 치는 사람'


감독은 의도한 듯

스크린의 사이즈를 다르게 했다.

길어지고 좁아졌다.


그 한가운데를 흰 천이 가로지른다.

<시에 쓰는 몸,> 3. '북 치는 사람'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숲 한가운데.

노년의 시간, 노년의 몸이 걸려 있다.


 나무줄기가 이어진 듯 숲을 가로지른

빨랫줄, 속옷 두장과 흰 천.


이곳은 어쩌면 미처 손볼 틈 없이

이래저래 내 팽개쳐 둔,

노년의 내면일지도 몰라,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곳에서 노인은 작정한 듯

주먹을 날린다.

날린다.

날린다.


마치 여름비가 오열하듯

격정적으로.


자꾸만 눌렀으나

또 자꾸만 솟아오르는 내 안의

천 개의 꿈틀거림.


둥. 둥. 둥.


세찬 빗소리와 함께

심장소리처럼 울리는 북소리.


주먹을 날린다.

지나온 세월에.


주먹을 날린다.

누렇게 변색된 세월의 흔적에.


주먹을 날린다.

여전히 자꾸만 소리쳐대는

북 치는 사람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격정적으로.

<콘티>

나에게 흰 천은 벽이다.

그 안에 갇힌 몸이다.


북 치는 사람은,

살아있으나 한 번도 존재하지 못한

꿈틀거리는 나다.


감독과의 미팅에서

나는 두 가지 제안을 했다.


저것을 가차 없이

걷어버리고 싶다.


살면서 몇 백번을 널고 걷었을

이불홑청과도 같은 흰 천.


 벽처럼 느껴졌다.

그 벽 안에 갇힌 몸.


저것을 걷어내고 싶다.


그리고는,


절규하고 싶다.

절규하고 싶다.

절규하고 싶다.


한 번도 소리 질러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노년의 몸 안에서 꾹꾹 눌러온

북 치는 사람 천명이 쏟아져 나오는데,


어찌 평온할 수 있을까.


이 시에서 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듣는다.


나는, 북 치는 사람이다.

 모른 척했다.


사라진 줄 알았으나,

여전히 존재하는.

성장하지 못한 꿈이다.

 시절이다.


행간 사이사이.

북 치는 사람의 치열한 전투.


그것은, 내가 마땅히 치러야 할

마지막 전쟁이어야 했다.


<촬영현장, 모든 몸이 여기 있다. 나의 동지들>
<청춘의 몸은 푸른 이파리처럼 싱그럽다>


늙음은 어떤 모양일까.

어떤 모양새여야 할까.


근사한 노년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마치 노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노년은 있으나 늙음은

없어야 한다는 듯.


무엇이 옳은 것일까.

나는 알지 못한다.


여전히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싸우며 몸살을 앓고 있다.


노년의 몸은 끝내 평온을 얻게 될까.


영화는 내게

질문을 던진다. 오늘도.


노년이란...


뭐지? 뭘까.


나는 여전히

북 치는 사람이고 싶다.



시에 쓰는 몸_ Fiction/ Color/2024/07'27"

감독: 박시원

시: 황주은 '이마, 정하민 '척추', 김혜순 '흐느낌' 한잔의 붉은 거울 문학과 사상(20024)

출연: 황주은, 정하민, 장마레, 이진

같이 만든 사람들: 오민재, 김유빈, 이수영, 최세영



 한 사람의 몸을 넘어

세대의 시절을 탐구하는

박시원 감독의

영화로운 시절을

응원합니다.




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100명의 마레가 산다'


수요일은 장마레의 브런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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