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씬으로 읽는 단편영화
나는 노인이다.
나이 60이 넘었다.
| 별 볼일 없는 단출한 노부인
| 푸석하고 건조한 잿빛 머리
| 얇은 살가죽의 손등, 깊은 주름, 모난 손톱
| 기품 있는 노인은 아니며,
자신을 꾸미는 일에 무관심
| 관계를 맺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며,
혈육도 가족도 친구도 없음 (집에 외로움이 묻어날 것)
|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듯 무표정함
| 늙음에 어느 정도 체념해 있음
| 쌀쌀한 날씨에 목에 오래 사용한 듯한 스카프
| 브랜드가 없는 따뜻함만 신경 쓴 듯한 평범한 외투
| 평범한 특징 없는 검정바지
| 길지 않은 중단발, 숏컷 머리
감독이 내게 건넨 그녀의 캐릭터였다.
대본리딩
이 영화는
구병모작가의 장편소설 '파과'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으며
노년의 늙음.
'오로지 늙는 것은 서럽다'
라는 주제만을 담아낸
이야기다.
신민기감독의 말이다.
늘상 오가던 길.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
무언가 반짝였다.
가슴이 울렁거린다.
저걸 가져야겠다.
그렇게 훔쳐내 듯 움켜쥔
반짝이는 열개의 가짜 손톱.
아. 반짝인다는 것은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이토록 빛바랜 노인에게.
'파과, 흠집이 난 과실'
구병모의 소설 속
그녀는 기억을 잃어가지만
이름은 있다. '조각'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
그녀는
기억은 있으나
이름과 말을 잃었다.
이름을 가졌으나
불러주는 이 없고
목소리를 가졌으나
들려줄 이 없다.
그저 노인이고 노인이고 노인일 뿐.
끝까지 대사 한 줄 없이
이미지와 상황만 있는 대본.
씬 1을 들여다보자,
#Scene 1
한 손에 과일이 담긴 검정 봉지를 들고
느릿느릿 걸어간다.
네일숍 앞을 지나가던 중 가게 안에
반짝 빛나는
가짜 손톱이 눈에 들어온다.
노인은 이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점원은 도저히 당신과 같은 할머니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침묵하거나
헛기침하며 흘끔거린다.
노인은 그 시선이 서럽지만 익숙하다.
<씬 1 대본 중에서>
이십 대의 신민기감독은
노년, 늙음이 두렵다고 한다.
늙음에 대한 숱한 형용사 대신
서럽다는 한 문장으로
이 영화의 톤을 결정할 만큼.
영화 속 그녀처럼
60을 훌쩍 넘겼다고 다를까.
때때로 두렵다.
60을 바라보는 나 역시.
다른 게 있다면,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늙음을 체감하는 나이라는 것?
그렇다고 더할까.
그래서 덜할까.
아휴.
나이타령은 그만하자.
그깟,
나이가 뭐 대수라고.
2년 전.
22년 11월.
이 영화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이 소설을 몰랐다.
구병모 작가의 소설이라고
알려 주었지만
책부터 덜컥 사서 읽지는
않았다.
감독의 생각이 먼저니까.
그 생각을 듣고 이해하는 게 먼저였다.
충청도에 사는 감독은
나와의 첫 미팅을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종각의 어느 조용한 스터디룸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녀는 큰 키에 뽀얀 얼굴을 한 채
설렌 마음 가득 안고 나를 기다렸다.
그녀와의 첫 만남.
피맛골에서의 늦은 점심.
그리고 촬영날 보자는 인사와
함께 굿바이.
반가웠어요.
감독은 나의 프로필 사진 중에서
이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나는 오디션을 볼 때마다
물어보고는 한다.
저의 어떤 이미지를 보고
픽하셨나요?
프로필 사진마다 영화 속 캐릭터마다
감독들이 고른 사진도 이유도 천차만별.
장편소설 '파과'의 주인공
'조각'은 킬러였다.
어쩌면 이 사진은
이름을 잃고 노인이 되기 전의
'조각'의 모습일지도.
나는 이 영화를 찍기 전에도
그리고 이 영화를 찍은 후에도
노인역을 꽤나 맡았다.
염색을 하지 않은
머리카락 때문일까.
아니면 사연이 있어 보이는
얼굴 때문일지도.
노인역을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리가.
간혹,
미처 겪지 못한 감정과
나이를 연기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기야 하지만.
노인역에 대한 감독의
서러움이란 것에 반기를 들을 리가.
늙음에 대한 생각이
다양해져야 하고
다양한 목소리로
늙음을 말해야 한다고
믿으므로.
그렇게 내 나이 55세이던 그 시절에
나는 65세의 노인이 되었다.
'파과'를 찍을 당시,
얼글과 손, 팔 여기저기에
검버섯을 더 그려 넣을 만큼.
나는 아직은 그녀보다 젊을 때였다.
그렇게 2년이 훌쩍 지났고
브런치를 연재해야지 싶어
감독에게 연락을 했다.
그 사이 신민기감독은
대학교를 졸업했다.
'파과'를 유투브에 링크했는데
그걸 공유해도 좋다고도 했다,
아싸.
첫 공개.
오랜만에 영화를 감상하자 싶어
들어가 본 그녀의 유투브.
그녀의 일상을 찍어 올린
브이로그 옆에 나란히 올라온 '파과'
앗.
반짝.
나는 그곳에서
반짝이는 그것을 보았다.
노인이 한눈에 반해버린
그것처럼.
거침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그녀는 알까.
자신이 지금 얼마나
반짝거리는지.
모를 테지.
반짝일 때를 모르는 게
청춘 아니던가.
아싸.
처음이다.
영화의 링크를 공유해야 할 시간.
잠깐.
그전에 못다 한 이야기가 있다.
'파과'의 엔딩.
감독은 마지막 씬, 4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그녀의 초라한 뒷모습에
어깨가 흔들리고 신음이 새어 나온다. "
그토록 갖고 싶었던
반짝이는 그것을 나는 손톱에 붙였다.
영원하기를 바랐다.
강력접착제로 꽁꽁 붙였다.
마치, 내 몸인 것처럼.
마치, 처음부터 내 것인 것처럼.
그래서 더 허망했다.
참을 수 없이 서러웠다.
소설, '파과'를 읽으신 분이라면
'손톱'의 의미를 알 것이다.
손톱이 지닌
상실의 의미.
자신에게 잠깐 허락됐던
분명,
'존재'했던 시절,
분명,
'반짝'이던 시절은
사라진다.
사라진다.
감독은 이 장면에
클래식한 BGM을 삽입하려고 했었다.
굳이 현장음을
녹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도
했다.
나는
그 장면에서 터져버렸다.
무력한 노인의
시간.
신음이 아닌 울음이다.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꺼이꺼이 터져 나왔다.
컷이 울리고
감독은 한참을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최종본을 받은 나는
그 서러움의 넋두리를 들었다.
신민기 감독은
BGM 대신
나의 목소리를 들어주었고
긴 호흡으로
나의 뒷모습을 지켜봐 주었다.
사라진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지금이야말로 주어를 살아야 할
나의 잃어버린 목소리.
나의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위로였고
찬사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HhdLHj54RfI&t=301s
파과: Fiction/ Color/07'34"/2022
각본/연출: 신민기
출연: 장마레, 김나연
같이 만든 사람들: 김강현, 신창민, 이현서, 박태양, 최준혁, 이선재, 송미소, 황채린, 유상아, 윤창빈, 김영서, 박대혁
반짝이는
반짝이는
반짝이는
오롯이 자신으로
반짝이는
신민기감독의
영화로운 시절을
응원합니다.
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100명의 마레가 산다'
장마레의 브런치북은 수요일 아침 10시.
PS. 유투브에 링크된 영화 '파과'의 더보기 란에는
감독의 제작후기가 있답니다. 필독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