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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마레 Jul 17. 2024

곧 크리스마스인데, 뭐 할 거예요?

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씬으로 읽는 단편영화


크리스마스




그윽한 조명

잘 차려진 식탁

두 개의 촛불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저녁.

그러나,

따뜻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대본리딩

이 영화는,

네 명의 식탁에서 시작되고 끝이 난다.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한 여자와

크리스마스가 슬픈 또 한 여자가 주고받는

그날에 관한 이야기다.




누군가를 처음 만난다는 건,

 어색한 일이다.


더구나,

아들 병우의 여자친구.

연인 병우의 부모님이다.


식사 후, 후식 타임으로

설정하긴 했지만

긴장되기는 마찬가지.


무거운 잠시의 정적을 깨는

병우 엄마의 한마디.


곧 크리스마스인데, 뭐 할 거예요?


여름 장맛비가 시작된 7월에 꺼내든

크리스마스 이야기라니 하실지도.


실제 촬영도 2022년 6월이니

여름의 크리스마스가 맞겠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그들의 대화를 씬 1의 대본을 통해

들여다보자.




S#1. 병우의 집 / 저녁



병우, 병우의 부모님, 소요는 식사를 모두 마치고

간단한 후식을 즐기고 있다.

한동안 대화 없이 정적이 흐른다.


병우 엄마


(소요를 바라보며)

곧 크리스마스인데, 뭐 할 거예요?


소요


네?


병우 아빠


이이는 이맘때쯤만 되면

저 질문을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해요.

크리스마스 몇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누굴 만날 때마다 그날에 뭐 하냐고

물어봐요. 뭐 해줄 것도 아니면서.


병우 엄마


여보. 그게 뭐 어때서.

크리스마스만 생각하면

설레는 건 사실이잖아.


소요


....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좋으세요?



병우 엄마


소요씨는.. 안 그래요?


대답을 회피하는 소요


병우


엄마, 엄마가 선물 받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좋아해?


병우 엄마


아니. 뭐 그야...
 에이 좋은데 이유 있나? 그냥 좋은 거지.

어릴 때 추억이 참 많았지.

크리스마스에 대한.


병우 아빠


사실 우리 둘도 그맘때쯤 만났어요.


소요


아. 그러세요?


병우 엄마


그리고 25일 날 우리 둘이 손 잡고 성당 갔어요.

이 양반은 그때가 성당을 처음 가본 날이었대.


소요


아.. 그러시구나..


병우 엄마


이렇게 생각하니 크리스마스는

 참 특별한 것 같아.  안 그래요 다들?

 (오늘도 소요씨랑 이렇게

크리스마스 이야기하며 처음 만나보고.)


(위를 보며)

참.. 크리스마스날

좋은 인연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소요 허공을 보며 과일만 오물오물거린다.


병우


엄마. 좀 오버야.
 오늘이 크리스마스도 아니잖아.


그리고 소요는..

크리스마스를 그렇게 챙기는 편이 아니랬어.


소요가 포크를 문 채로 병우를 쳐다본다.

그리고선 병우 옆구리를 툭 친다.


대본 S#1 중에서



곧 크리스마스인데, 뭐 할 거예요?


병우엄마인 나는 누구나 크리스마스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그날은

좋은 인연을 만나는 날이다.


병우의 연인인 소요는 크리스마스가

그리 좋지 만은 않다.


그녀에게 그날은

인연을 잃은 날이기 때문이다.


소요는 친구를 잃었다.

크리스마스에 갑자기 사라졌고

지금까지 소식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날만 되면

몸이 기억한다.


그 친구의 부재가 떠올라

몸이 아프고

그 친구가 다시 오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들어

집에서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일까.

영화의 맨 마지막 씬은,

 똑똑똑~ 누군가

병우의 집 문을 두드리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 친구일까.

아니면...


우리의 그 어떤 날은

기억으로 정의된다.


누구에게나 좋을 법한 날이라도

누구에게나 좋은  날일 수는 없다.


알지만 우리는,

잊곤 한다.


이채빈 감독은 아리 에스터 감독의

오컬트 영화 '유전'의

식탁씬을 오마주 하고 싶어 했다.


따뜻해야 할 가족의 식탁이

그로테스크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촬영 전 식탁 세팅에 분주한 감독님과 스텝들>


그렇게 탄생한 식탁씬.


네 명의 대화씬에서

대척점을 이룬 병우엄마인 나와

병우의 연인 소요는

의상마저도 대비되도록 했다.


초록과 빨강,

세명의 가족과 다르게

 소요의 의상은

색상과 채도까지 고려됐다.


어찌 보면 소요는

이 가족에겐

낯선 이방인이니까.


소품부터 의상까지.

한 편의 영화가 나오기까지

 세세하고 섬세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채빈 감독은 따뜻해야 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균열과 긴장감을 이렇듯

차곡차곡 쌓아갔다.

<국민대에서 대본리딩 중, 안소요배우님과/ 집에서 틈틈이 대본리딩 촬영본을 보며 모니터 했다>


나는 늘 영화를 통해 만난

인연의 무게를 생각한다.


이 영화를 통해 만난 배우님들.


특히, 소요역을 맡은 안소요 배우님은

잔나비 소곡집 2.

 '초록을 거머쥔 우리는'

 앨범의 뮤직비디오를 찍은,

인연이 있기도 했다.


소요님은 '초록을 거머쥔 우리는'

나는 '여름가을겨울 봄' 편.


당시 잔나비 뮤직비디오

촬영스텝이셨던

감독님이 캐스팅 제의를 하셨으니

 사람의 인연은 참으로 운명적이다.


처음 보자마자 닮았네 싶었던

아들 병우역의 안병우 배우님,


 연극으로 다져진 묵직한 내공의

병우아빠 김아천 배우님.


촬영이 끝난 지 벌써 2년.


그 사이,

이채빈 감독과는

장혜진 감독의 '셋둘하나' 촬영장에서

스텝과 배우로 또 만났다.


단단한 내면을 지닌

안소요배우님은

독립장편영화 '비닐하우스'를 통해

 배우와 관객으로 다시 만났다.


안병우 배우님과

김아천 배우님과도

어느 날 문득 촬영장에서 만날지도.


우리들이 만나는 그날이

크리스마스처럼 해피한 날일 듯.


안 그래요 다들~

오랜만에 병우엄마스러운 바람을 해본다.


<2022년 6월 12일 밤, 촬영 후 단체인증샷)

크리스마스: Fiction/Color/2022/07'10"

연출: 이채빈

각본: 이채빈, 박기민

출연: 안소요, 안병우, 장마레, 김아천

같이 만든 사람들: 고산, 안효슬, 윤지혜, 고혜원, 홍성진, 임수현, 이소연, 안예림



더없이 따뜻한 온기로

삶의 이면을 보듬을 줄 아는,

이채빈 감독의

영화로운 시절을

응원합니다.





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100명의 마레가 산다'


장마레의 브런치북은 수요일 아침 10시



추신, 이 브런치북에서 뮤직비디오 촬영이야기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느 수요일 문득. 기대하세요.

제가 찍은 4편의 뮤직비디오가 들려 올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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