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이른 장마가 이어졌다. 계사의 태양광 배터리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거의 매일 산을 올랐다. 거주지에 문제가 생겨 밭과 생활공간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다. 그렇다 보니 계사로 가려면 편도로 3시간은 감안하고 출발해야 한다. 이 거리를 매일 오가는 체력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몇 년을 회사 사무직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근력이란 최소한의 생존도구일 뿐이었다. 이제 근력은 필수품이 되었다. 자전거로 1시간, 비탈을 20분씩 달리며 체력이 붙었다. 추가로 물과 사료를 이고 지고 다니며 어깨도 단단해졌다. 취미로도 볼 수 있지만 원치 않을 때는 노동이나 다름없어서 불만이 쌓였다.
밭에는 새로 심은 오이와 가지가 열렸다. 발목 높이의 옥수수도 허벅지까지 자랐다. 밭을 향한 애증의 감정과 달리 식물은 곧게 자랐다. 꾸준히 성장하고 파랗게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아침 이슬과 빗물을 머금은 잎에는 모순이 없다. 밭은 산과 맞닿아 있어 넝쿨의 습격을 받는다. 칡과 환삼덩굴이 턱을 넘고 위로, 나무로 뻗어온다. 뜯어내도 2~3일이면 다시 무성해진다. 그래서 밭의 끄트머리를 제외하곤 넝쿨에 손을 대지 못했다. 밭 아래는 칡이 뒤덮어서 땅이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부모님은 머리 위까지 칡에게 점령당한 나무를 가리키며 저게 매년 열리는 매실나무라고 했다.
엄연히 따지면 매실나무는 우리 것이 아니다.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밭들의 경계에 놓인 야생 나무로 먼저 길을 내는 사람이 열매를 얻었다. 어릴 적부터 매년 매실청을 담아왔는데, 그때는 저 나무에서 매실을 얻은 줄 몰랐다. 몇 년 전부터 밭을 오가며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내게 나무속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물을 대어둔 대야 앞으로 나아갔다. 나무 그늘 아래로 파란 열매가 보였다. 지금이 수확시기라고 했지만 근처는 뱀과 개구리가 서식하는 야생이었다. 대지를 뒤덮은 넝쿨 잎들이 머리 위까지 덮어서 바람이 불면 저 끝부터 밭 아래까지 파도쳤다. 열매가 보일 정도의 거리였지만, 헤쳐나갈 과정을 생각하면 막막했다.
발에는 장화를, 손에는 낫을 장착하고 넝쿨 앞에 섰다. 손바닥보다 큰 칡의 잎이 눈앞에서 흔들렸다. 발을 가슴께까지 들어 넝쿨을 밟고 낫으로 베어냈다. 줄기가 장화 아래로 풀썩 쓰러지며 찔레가 나타났다. 작은 아카시아 묘목과 찔레의 가시가 손을 찔러왔다. 큰 가시에 베였는지 장갑을 뚫고 피가 새어 나왔다. 옆에서는 엄마가 칡과 씨름 중이었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땡볕 아래서 풀과 씨름하는 동안 눈썹에 맺힌 땀이 콧등을 타고 턱으로 뚝뚝 흘렀다. 겨우 도달한 나무 아래서 옷을 털었다. 흰 옷은 짓이긴 풀의 진액과 잔해로 파랗게 물들었다. 이마의 땀을 훔치고 고개를 들었다. 잎 그늘 아래 초록 열매가 드러났다. 칡을 걷어낸 나무로 흰 구름이 흘렀다. 엄마가 매실을 딸 바구니를 가져오라고 했다. 밭으로 돌아가기 위해 돌아섰다. 풀숲 사이로 난 길은 선명했다.
Y, 엄마, 나 셋이 매실에 매달렸다. 손이 닿는 곳부터 비탈 근처까지 열매가 빼곡하게 달렸다. 매실을 던질 때마다 덜컹이던 바구니가 순식간에 차올랐다. 바구니 두 개와 타포린 가방 하나가 가득 찰 때쯤 서로 그만하자고 말했지만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머리 위 초록 과실로 손을 뻗었다. 잎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꼭 그만두려고 할 때쯤 숨어있던 열매를 발견했다. 그만하고 떠나자고 서로 수십 번 말한 뒤에야 나무에서 벗어났다. 뱀과 개구리가 서식하는 미나리 밭을 지나 위로, 밭으로 올라갔다. 매실이 담긴 가방을 어깨에 지고 산을 내려가는 길에 노을이 졌다. 어깨에 짊어진 매실에서 산뜻한 향이 풍겼다.
일요일 아침 가족 모두 식탁에 모였다. 엄마가 깨끗하게 씻어 말린 매실이 식탁에 올라왔다. 수북하게 쌓인 매실이 바구니 옆으로 굴러 떨어졌다. 나는 그중 하나를 들어 포크로 쑤셨다. 풋사과 같은 향기가 즙과 함께 튀어 올랐다. 사방에 무늬가 생기도록 여러 번 구멍을 내고 나면 이쑤시개로 갈색 꼭지를 떼어냈다. 이렇게 작업한 매실은 까만 독 안으로 또록 소리를 내며 던져졌다. 허리 높이의 큰 장독에 들어간 열매는 설탕에 절여져 1년 후 매실청이 된다. 우리 집에는 매년 담은 매실청이 여럿 있다. 어떤 청은 장독에서 5년을 보냈다. 국자로 뜨면 갈색 진액이 뚝뚝 흘렀다. 올해 담근 매실도 베란다에 놓였다. 이 장독도 무르익을 예정이다. 이틀의 노동을 끝내고 진액, 물, 얼음을 섞어 마셨다. 미지근한 컵에 금방 냉기가 서렸다. 컵의 물기를 닦아내던 엄마가 내년에도 매실이 많이 맺힐지 혼잣말처럼 물었다. 창밖의 무르익어가는 더위를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는 성가셨던 일이 바람이 되었다. 나는 내년에도, 다음 해에도 매실이 맺힐 테니 함께 따러 가자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