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편식하지 않았다. 가리는 음식이 없으면 다양한 양분을 얻을 수 있어 생존에는 유리하지만, 나는 본래 입맛이 둔했다. 뭔가를 맛있게 먹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저 주면 먹고 아니면 말았다. 누군가가 내게 음식을 주는 건 당연하지 않으니 불평을 해선 안 된다고도 판단했다. 원하는 맛과 음식이 있다면 상대에게 요구할 게 아니라 스스로 해 먹어야 떳떳하다는 나름의 가치관도 있었다. 그래도 분명 꺼림칙한 음식이 있기 마련임에도 미련하게 견디고 삼켰다. 당시 학교에서는 식판을 무조건 깨끗이 비워 검사를 받아야 했다. 식사 중 업무를 맡은 선생님들에게도, 먹지 못하는 반찬을 강제로 먹어야 하는 학생에게도 꽤 고역인 제도였다. 나는 또래보다 적게 먹지만 몸집이 큰 탓에 많은 양을 배급받아 늘 마지막에 식당을 벗어날 수 있었다. 애초에 적게 달라고 요구하면 되는데 그 말이 이상하게 어려웠다. 무튼 10년 넘게 혹독한 훈련을 거치면서 둔감한 입맛이 더 무뎌졌다. 입에서 시작된 무딘 감각이 삶의 전반적 행동까지 번졌다. 반드시 필요한 것 외의 즐거움은 대부분 느끼지 못했고 억지로 외면했다.
내 주변에는 유독 맛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한 입만 먹어도 재료의 신선함과 간의 적절함, 국물의 농도 등을 자세하게 분석했다. 가게 간판이나 주변만 훑어도 맛집을 알았고, 그중에서도 취향에 맞는 곳을 선정했다. 음식에 무심하던 나는 Y가 이끄는 대로 갔다. Y는 재료, 밑간, 요리에 관한 것은 물론 그릇의 온도, 가게 분위기, 장소 등 경험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표현했다. 어떤 때는 다섯 살에 처음 먹었던 번데기의 국물까지 맛깔나게 재현했다. Y와 다니는 시간이 늘고 식사경험이 쌓이며 맛보는 법을 배웠다. 일괄적으로 배치되었던 시간이 그제야 밥 먹는 시간이 되었다. Y와 대화하며 취미와 경험을 나누는 게 즐거웠다. 본래 내게도 맛에 대한 호오정도는 있었을 테지만, 내 취향을 발설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요리하는 사람이나 사회의 규칙, 평가, 나와 다른 의견을 살피는 습관 탓이다. Y가 자연스럽게 자신을 나타내고 취향을 드러낼 때, 자신만의 기준을 갖추고 솔직하게 말할 때, 나도 조금쯤 기호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가끔 실제로 맛있다고 느낀 건지 지인이 말해서 그렇게 받아들인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말하는 걸 망설였다. 말투도 행동도 자연스러운 Y를 보며 내게 취향이 생길 순간을 몰래 동경했다.
몇 년 후 서로의 일로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그때 분명하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음식이 생겼다. 그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의 요리였다. 지금보다 어릴 때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나는 요령이 없었다. 원하는 일을 성취할 재능이 부족하다는 열등감에 뭐든 무작정 열심히 했다. 재능이란 노력부족을 합리화하는 말이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타인에게는 열정으로 보였겠지만 나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신에게 치열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내게는 평생에 걸친 꿈이었고, 실력을 시험하는 자리였다. 몇 달 동안 밤새 작업했고 끝내 호응은 받지 못했다. 자주 독하다거나 노력은 인정한다고 들었지만 그날은 유독 사무쳤다. 발표를 마치고 저녁 8시가 되어 문을 나섰다. 어둑해진 거리로 낙엽이 떨어졌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예보에 없던 가을비가 내렸다. 우산을 쓸 맘이 들지 않아 폭우 속을 10분간 걸었다. 멀리 정류장이 빛났지만, 드문드문 모인 사람들을 보며 멀찍이 멈춰 섰다. 몸이 흠뻑 젖은 상태에서 정리되지 않는 감정과 생각을 소거하려 노력했다. 분명 마지막 기회는 아니었는데 그날따라 끝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타인의 인정과 관계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건만, 막상 어떤 호응도 받질 못하니 막막해졌다. 울대를 툭치며 올라오는 열기가 분출되지 못하고 깔딱대는데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왔던 길을 천천히 되돌아갔다. 길은 점차 높아지며 서늘해졌다. 고개를 들었을 땐 야산 입구였다. 한참 산으로 향하는 비탈을 오르다 문득 국물이 마시고 싶어졌다.
어디로든 걸었다. 눈앞이 밝아져 고개를 들었다. 멈춰 선 곳은 쌀국숫집 앞이었다. 저녁시간이 지나고 한산한 내부를 둘러보다 키오스크에 섰다. 가게 구석에 앉아 비를 피해 내달리는 사람을 봤다. 조리대에선 낯선 언어가 들려왔다. 벽시계는 어느덧 9시에 가까워졌다. 가게 안으로 카키색 잠바를 입은 사람이 들어와 조용히 통화를 시작했다. 생경한 언어에서 묘한 유대감을 느꼈다. 번호가 울리고 안내에 따라 음식을 받으러 갔다. 뭉근하게 피어오른 김이 얼굴을 감쌌다. 낯선 향과 마주하고도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손에 닿은 그릇이 따뜻했다. 조금 진정된 상태로 쌀국수를 삼켰다. 따뜻한 국물이 식은 몸으로 흘러들어왔다. 울대에 얹혀 깔딱대던 무언가가 국물과 함께 속으로 녹아 내려갔다. 몇 달만의 제대로 된 식사였다. 한 그릇을 모두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을 쓸어 닦아내고 비를 피해 달리는 사람들 틈을 지나 우산을 샀다. 비를 피해 정거장 지붕 아래 선 사람들과 섞여 다음에 올 버스를 기다렸다. 몇 년이 흐른 뒤 음식점은 사라졌지만 힘들 때면 낯선 타향 음식이 떠오른다.
직진하던 꿈을 접은 뒤 태평한 시간을 보냈다. 보다 못한 친구가 지원해 보라 해서 넣은 서류가 덜컥 붙어 모르는 회사에 취직했다. 분명 나를 뽑은 사람임에도 직속 상사가 유독 나를 불편하게 여겼다. 업무를 주지 않아 할 일이 없지만 딴짓을 할 순 없어 가만히 시간을 보냈다. 그때 밥값은 해야지,라고 말하지만 애초에 일을 주지 않는 건 상사였다.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는 일이나 시기도 아니었다. 나는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한 채 회사가 요구한 대로 머물고 시간을 줬으니 밥값은 하고 있었다. 그날부터 언제 그만두거나 잘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칫솔과 슬리퍼까지 챙겨 출퇴근했다. 그게 더 신경을 건드렸을지도 모르겠다. 입사초에는 이유 모를 허기가 돌았다. 모두 불편해서 일찍 젓가락을 놓아도 보란 듯이 음식을 끝까지 먹었다. 본래 이렇게 열심히 먹은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짜장면, 볶음밥, 국밥을 바닥까지 삼켰다. 그 회사는 식비가 제공되는 대신 대표를 비롯한 직원 모두가 함께 밥을 먹어야 했다. 주변에 음식점이 드물다 보니 배달을 시켜야 했지만, 그마저도 종류가 적은 탓에 정해진 가게에서 반복적으로 주문했다. 보통 막내 직원 3~4명이 음식점을 정한 뒤 메뉴를 받아 주문을 넣는 방식이었는데, 상사나 동료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막상 원하는 식사를 하긴 어려웠다. 먼저 식사를 시작할 수도, 대충 때울 수도, 자리를 뜰 수도 없어서 점심때 개인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다들 말수가 적어 식탁 주변으로 기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차라리 말이 적은 게 나을 정도로 비하발언이 오가거나 서로의 불편한 부분을 건드리기도 했다. 그즈음 다시 음식에 대한 취향을 포기했고 맛에 둔감해졌다. 어디에서 어떤 메뉴를 시키든 모든 음식에서 같은 맛이 났다.
식사시간이면 자리에 앉아 집을 떠올렸다. 전날 밤 읽은 논문에 따르면 닭은 맛에 둔감하다던데, 키워본 바로는 닭마다 취향이 있었다. 어떤 닭은 곡물 중에서도 조를 가장 좋아했고, 어떤 닭은 오디나 딸기 같은 과일류를 잘 먹었다. 누구는 밀웜을, 누구는 빵을 가장 먼저 먹었다. 맘에 들지 않는 야채는 입으로 한 번 쪼았다가도 다시 뱉어내고 발로 찼다. 아플 때 억지로 먹였던 음식을 보고 슬쩍 피하는 걸 보면 우리처럼 상황과 맛을 연결 지어 기억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어쩌면 그 논문은 아주 오래전 이뤄진 연구였거나, 선택이 제한적인 닭을 실험에 동원했을 수도 있다. 혹은 평균치로 묶어내다 보니 종별 특징으로 퉁쳤을지도 모른다. 객체로 보면 각각의 입맛과 취향이 있다. 선택 가능하다는 걸 경험하고 나면 원하는 것을 찾아간다. 맞은편 창을 보며 이런 생각에 잠긴 후에는 식사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철없는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입맛과 관련된 생각이나 대화에만 관심이 생겼다. 회사의 계약이나 직원으로서의 책임감이나 사회의 이슈는 마주한 동료의 음식취향문제에 비해 작게 느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조류는 부리 끝과 목 입구에 맛을 감지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생물마다 객체마다 맛보는 법이 다르다 보니 누군가는 일찍 맛보고 누군가는 늦게 맛보곤 한다. 시골로 내려온 뒤에도 메뉴는 한정적이었다. 밭에서 자란 상추와 쌈장, 참기름, 밥이 다일 때도 있었다. 그게 무척 맛있어서 밥 한 그릇을 비웠다. 양질의 칼로리를 섭취할 때보다 배가 불렀다. 나는 이걸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취향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지만 힘들 때 특정 음식을 떠올리면 맘이 편해진다. 입맛도 훈련과 선택 경험이 필요하다. 모든 음식이 양분이 되는 건 아니다. 어떤 음식은 창자 그 너머까지 덥혀온다. 후덥 한 더위에 삼키는 냉면 육수 한 모금이 각별하듯 상황에 따라 식사의 경험이 달라진다. 하나씩 쌓인 기억이 추억으로, 취향으로 맺힌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면 우선순위가 조금 더 명확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할 수 있다는 건 단순하고 분명한 기쁨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단순한 감정이 좋아진다. 대단한 일이 아니라도 자신이나 상대가 좋아하는 걸 알아가는 순간에 성취감이 든다. 대부분의 일은 어찌 되어도 괜찮다. 극단적으로 이 일로 세상이 망하는 것도 내가 죽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조금쯤 편해진다. 그러니 그래도 괜찮은 일에 관해서는 나를 속이거나 상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그런 시간이 하루에 10분쯤 있어도 좋다. 짧은 식사라도 혼자 먹는 밥이라도 좋아하는 걸 원하는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자양분이 된다. 나는 요즘도 종종 식사 시간을 잊는다. 그때 식사하셨나요 라는 인사가 쌀국수를 먹던 기억으로 이어진다. 단순한 인사말이 스며드는 순간이다. 지금도 그날 밤 야산에서 쌀국숫집으로 되돌아온 심정으로 인사를 건넨다. 식사는 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