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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 May 29. 2023

무심하지만 괜찮습니다

처음 저지른 무모한 짓은 인라인스케이트 타기였다. 한창 인라인스케이트가 유행할 때 더 큰 스릴감을 맛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비탈 꼭대기에 올랐다. 일반 도로로 사거리가 두세 번 교차되는 위험한 곳이었다. 또래들도 거긴 좀 높지 않냐고 말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높이 올라가고 싶었다. 등 뒤에서 바람이 불었다. 앞으로 쭉 뻗은 길이 내려다보였다. 우거진 산기슭에서 풀잎이 나부꼈다. 숨을 멈추고 브레이크를 풀었다. 교차로를 한 번, 두 번 거치며 속도가 올랐다. 손끝이 짜릿했다. 마지막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가속도가 붙어 멈출 수 없었다. 속력을 낮출 생각조차 않았다. 그렇게 주택 왼쪽으로 돌다 정신이 번쩍하고 멀어졌다. 눈을 떴을 때는 볼이 바닥에 붙어있었다. 저릿한 충격이 전신에 느껴졌다. 헬맷을 쓴 아저씨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 뒤의 빨간 오토바이를 봤다. 반대편에서 달려 나오던 오토바이와 부딪혔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때는 엎어져 있느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오토바이 주인에겐 재앙이었을 것이다. 괜찮냐며 붙잡는 손길을 거부하고 의연한 듯 일어났다. 후들대는 다리를 끌며 겨우 집으로 돌아갔다. 사건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꼴사납게 넘어진 모습이 알려지거나, 부모님이 인라인을 금지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다행히 보이는 상처는 크지 않았고 충격으로 인한 근육통도 잦아들었다. 목격한 아이들은 표정 한 번 바뀌지 않았다고 놀라워했다. 다음날부터 초등학교에서 카리스마로 불렸다. 너무 촌스러워서 교실에만 머물렀다. 그럼에도 졸업 전까지 같은 별명으로 통했다.


하루는 외가의 이모가 귀걸이를 보여줬다.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넌 무서워서 귀 못 뚫겠지?"하고 놀리던 목소리만 기억난다. 나는 이모에게 "뚫을 수 있어요"라고 답했다. 그 길로 당장 시내 팬시점으로 끌려갔다. 늦여름,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팬시점에 앉아있었다. 이모와 대화하던 아주머니가 부채질을 멈추고 작은 알맹이가 박힌 귀걸이 여러 개를 보여주셨다. 모두 똑같은 바늘침처럼 생겨 아무거나 한다고 했더니 이모가 귀걸이를 골랐다. 지금도 그런 지 모르겠지만 당시 '총'이라고 불리는 기구로 귀를 뚫었다. 나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기분으로 자리에 앉았다. 귀에 바싹 닿은 총구에 침을 삼켰다. 총에는 귀걸이가 장착되었고 탕하는 소리와 함께 귀가 얼얼해졌다. "아프지?"라고 묻는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드디어 양쪽이 뚫려서 안도했는데 아주머니가 이모에게 "한쪽이 낮아서 다시 뚫어야겠는데?"라고 말했다. 이때 아주머니의 푸근한 얼굴이 사납게 보였다. 모든 고통은 끝났다고 안심할 때 다시 찾아오는 법이다. 외가로 돌아온 후 귀에 염증과 고름이 생기지 않도록 매일 소독해야 한다고 들었다. 소독약을 쥐고 망설이자 엄마가 나를 방으로 불렀다. 일주일 동안 엄마가 내 귀걸이를 뽑아 소독한 뒤 다시 꼽아줬다. 물론 이모에게는 들키지 않았다. 이모는 내가 방에서 나올 때마다 은근한 표정을 지었다.


대학생이 되어 동아리에 가입했다. 별생각 없이 교정을 돌아다니다 친구의 손에 끌려간 결과였다. 영화동아리였는데 졸업까지 본 영화는 한 편이었다. 실상 친구나 연인을 사귀기 위한 장소였다. 그걸 4년 동안 몰랐던 나는 동아리방을 도서관 대용으로 썼다.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했다. 그러다 술모임에 따라갔는데 선배가 술 좀 마시냐고 물어서 좀 마신다고 했다. 그래도 나한테는 안 될 거라고 덩치 큰 선배가 말했다. 예의 없는 상대라고 생각했는데 부장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사를 하지 못했다. 속이 쓰렸지만 부장이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내가 휙휙 삼키자 이것 보란 듯 더 따라줬다. 한참을 마시고 아침이 왔다. 내 방이 아닌 엄마 방이었다. 어제 함께 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친구가 나를 집에 데려다줬다고 말했다. 택시로도 1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친구에게 사과하자, 그날 선배가 뒤처리해줬던 건 기억나냐고 물었다. 이후 선배와 마주쳤을 때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말하기 어색해서 사과하지 않았다. 선배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다만 함께 술을 마실 때 내가 잔에 손을 대자 조금 눈치를 줬다. 반발심에 한 잔을 더 마셨다. 건방진 행동을 반복한 탓에 거리감이 생겼다. 술을 많이 마셔서 자랑스러울 것도 없는데 이후로도 미련한 짓을 반복했다. 시간이 흘러 Y에게 말했더니 "정말 강한 사람은 져준다"라고 했다. 지금은 그 의미를 알게 되었지만 나는 아직 변하지 못했다. 


평온하게 대처해야 한다. 무엇이든 적당히 거리를 두면 좋다. 알지만 잘 되지 않는다. 무모한 행동을 하는 반면 얼굴에 드러나지 않았다. 덕분에 나와 가까이 지내던 친구는 혀를 찼고, 엄마는 아직도 내가 얌전하다고 한다. 요즘은 집에 더 무모한 가족이 있어서 가려졌나 싶다. 내 성격이라 생각했는데 유전인 듯 보여 의심 섞인 눈으로 지켜보는 중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아주 순한 편이다. 역시 성격이란 상대적이다. 예컨대 Y는 나보다 무모하다. 이렇게 말하면 반발한다. 본인은 계획적이고 섬세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주변에서 만류할 때 유정란을 주문한 건 Y였다. 설마 정말로 부화를 시키겠냐고 생각했는데 부화기와 육추기까지 직접 만들었다. 호기심에 Y를 따라다녔다. 그때 태어난 병아리가 지금은 어엿한 닭이 되었다. 회사도 그만두고 닭과 고양이만 안고 시골로 향했다. 무모한 것끼리 만나면 인생이 어디로든 튄다. 정신없이 뛰어다닌 것 같아도 막상 폭풍의 눈은 평온하다. 어쩌다 보니 해결되더니 다시 문제가 생기고의 반복이다. 내가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이유다. 


무모하다는 건 남이 말려도 하고야 마는 성격을 일컫기도 한다. 고집이 강하다의 다른 표현이다. 고집이 강하려면 상대에게 좀 무심해야 한다. 상대의 말을 모두 들어주며 고집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Y는 내게 고집이 강하다고 종종 말한다. 나는 상대에게 많은 걸 양보하고 지냈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Y는 비웃는다. 내가 남의 눈치를 살피며 외모를 가꾸거나 행동을 바꾼 적이 있냐고 되물었다. 그렇지 않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신경은 쓰였다. 그래도 나는 고집이 강하지 않다, 고집이란 분명한 가치관을 갖고 밀고 나가는 성향인데 나는 오히려 명확한 기준 없이 상대의 말에 휘둘릴 때가 많다, 앞의 사건도 상대의 도발에 쉽게 넘어간 거다, 눈치를 많이 봐서 좋고 나쁘고를 표현하지 못한 때가 많았다, 나는 강요하지도 표현하지도 않고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그러니 고집이 세지 않다 답했다. 맞다, 아니다, 공방이 몇 차례 오갔다. Y는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고집이라고 했다. 내가 보기엔 Y가 더 똥고집이었다.


Y 외에도 내게 고집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꽤 무심한 생김새라고 여겨왔는데 자주 낯선 이가 다가왔다. 대학생 시절 로비에 앉아있을 때였다. 할아버지 한 분이 맞은편에 앉았다. 남루한 차림에 미간의 주름이 깊은, 깐깐한 생김새의 노인이었다. 함께 있던 동기는 일어나려 했지만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내치는 건 예의가 아니라 생각해 친구를 붙잡았다. 자리를 뜨면 내가 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참 혼자 떠들던 할아버지의 표정이 점차 굳어갔다. 나의 어떤 부분이 거슬렸는지 손금을 봐주겠다며 손목을 가져가놓곤 손을 보지 않은 채 "고집이 세서 안 돼!"라고 소리쳤다. 당황한 동기와 소리치는 할아버지 사이에서 고집이 강해서 안 된다는 건 무슨 말일까 고민했다. 써먹기 곤란하단 걸까, 성격이 글러먹었다는 걸까. 모든 성격에는 장단점이 있는데 글러먹었다고 생각하는 건 자신의 취향과 평가기준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무례한 행동이다. 누구나 나름의 고집이 있는데 상대에게 고집부린다고 화내는 건, 자신의 말을 들으라는 윽박으로 오히려 본인의 아집이다. 말하면 큰 소동이 벌어질 것 같아 조용히 상대의 화가 가라앉길 기다렸다. 나름의 배려였지만 그 사람에겐 기다리는 내 행동도 고집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의 방식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할아버지는 손금이 아니라 관상을 보는 사람이었나 보다.


한동안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돌았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독한 인내와 상대를 질투하지 않는 강한 성격이라고 평하곤 했다. 스스로도 아쉬움이나 질투가 적은 편이라 생각했지만 자존감이 썩 높지도 않았다. 자존감이 낮은 편인가 높은 편인가 가늠하던 때도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자존감은 높아야 한다고 하지만, 또 너무 높으면 겸손과 배려가 부족하다고 했다. 무엇이든 중용이 중요하다지만 어디가 중간인지 매 순간 알 수는 없다. 나름대로 고민하다 지나치게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의 인간적 매력이 있으리란 결론에 다다랐다.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와 수치는 '낮으니 높아져야 한다'라는 압박을 준다. 상대적으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을 보며 왜 나는 낮은가라고 생각하며 더 비교하는 형상도 발생한다. 상대방도 주변 상황이나 심적 상황에 따라 자존감 수치가 바뀌기 마련인데 잠깐의 높은 수치만 보게 된다. 차라리 자존감에 대해 모를 때는 신경 쓰지 않던 스스로의 모습들에 대해 샅샅이 평가한다. 모든 성격이나 행동에 대한 수치는 평균치가 있다는 건데, 평균을 낼 수 있을 만큼 상황과 심리가 일정하지 않다. 평균이 절대적으로 옳지도 않다. 자존감이라는 말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에 대해 무심해진다. 그때 상대나 이상적 성격과의 비교가 끝나서 내 모습과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


나는 대부분의 일에 무심하다. 사람들이 원하는 배려나 유순함은 적다. 오히려 무뚝뚝하며 건방지다. 노력해도 바꾸기 어려운 천성이다. 덕분에 세상살이가 썩 쉽지 않지만, 정반대인 사람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누구나 그렇지만 나도 내가 원한 성격은 아니다. 나를 유들하게 바꾸는 것보다 짖어줄 새를 찾는 게 빠를지도 모른다. 내가 바뀌려 노력하는 행동도, 상대를 바꾸려고 구는 행위도 껄끄럽다. 세간에 적당히 맞출 줄 아는 사람들에게 나는 고집불통 우물 속 개구리다. 그렇지만 그 우물이 아무도 닿지 못할 만큼 깊다면 개구리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한 콜럼버스다. 모두 하늘로 향할 필요는 없다. 땅을 뚫어서라도 길은 만들 수 있다. 어디에든 자신만의 세계와 법칙이 존재하니 어깨를 펴자. 상대에게 집착하고 자신의 정의를 강요하느라 상처 주는 경우도 많다. 위 상황에서도 할아버지가 먼저 내게 다가왔다. 정확하게는 자신이 원하는 반응을 내가 보여주길 기대했다. 그 요구가 어긋나서 성을 내었다. 하지만 상대도 나도 맞춰줘야 할 이유는 없다. 자판기처럼 누르는 대로 원하는 음료를 제공할 의무가 어떤 생물에게도 없다. 당연하지 않기에 상대의 배려는 달고 감사하다. 극단적으로 호랑이가 원한다고 사슴이 제 목을 줄 수 없는 상황과 같다. 호랑이는 호랑이대로 사슴은 사슴대로 산다. 그게 생물의 긍지다. 제 정의와 삶을 유지하기 위해선 오기도 필요하다. 삶에서 절대적으로 옳은 정의는 몇 없다. 그렇다면 나는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 선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더 좋고 나쁜 성격은 없다. 그러니 좀 무심한 것도 삶을 사는 한 방식이다. 어떤 성격이든 취향과 어울림의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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