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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 Jun 02. 2023

새가 된다면

아는 새라곤 참새, 비둘기, 까치, 까마귀, 딱따구리 정도였다. 어쩌다 호반새까지 알게 된 건 취미로 등산을 시작한 뒤였다. 사람이 북적이는 시간대를 피해 새벽 동이 트면 잠옷바람으로 산을 올랐다. 코스의 끝에는 암자와 작은 연못이 있었다. 대나무와 소나무로 둘러싸인 고요한 장소였다. 못 한가운데 놓인 청동 관음보살상은 대나무 빛이 스며 더욱 푸르렀다. 봄이면 못 안에 잉어나 자라가 헤엄쳤고 가끔 낮은 돌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구름이 비쳤다. 나는 잉어가 하늘을 유영하는 광경을 보기 위해 산을 올랐다. 그날도 인기척이 드문 시간이었다. 푸르스름한 하늘을 보며 길을 오르고 올랐다. 어떤 목적이나 이유는 없었지만 그저 연못이 보고 싶었다. 연신 하늘과 땅을 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숨이 가빠졌다. 정말 더 이상 가기 힘들다고 생각할 때쯤 암자에 도착했다. 투박하게 놓인 돌계단을 올랐다. 무릎이 뻐근할 정도로 층계가 높았다. 계단이 시야를 가려 벽처럼 보이지만 벽을 넘어서면 탁 트인 정경이 드러났다. 나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묵묵히 오르다 암자로 향하는 길과 연못, 뒷면의 청정한 산맥을 올려다봤다. 마침 동이 터 오르는 시간에는 빛이 조용히 차올랐다. 고요한 공간에 새소리와 물소리만 울렸다. 자라가 물에 뛰어드는 소리가, 잉어가 물표면에 입을 대고 뻐끔대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었을 때 관음상 머리 위의 낯선 생물이 보였다. 흔히 보던 갈색, 검은색, 흰색이 아닌 선명한 주홍빛이었다. 몸체보다 긴 부리가 딱하고 물렸다. 나는 그 두툼한 부리를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다가가다 결국 날려 보냈다. 새는 이쪽 대나무에서 저쪽 대나무로 옮겨 다녔다. 뾰로로 맑은 소리를 따라 고갤 돌렸다. 대나무잎사이로 주홍색이 스쳤다. 바람에 대나무숲이 번질 때마다 얼핏 새가 보였다. 새가 가는 길마다 나뭇가지가 유연하게 휘었다. 이리저리 나는 모습이 어릴 적 보았던 무협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집에 돌아와 검색했을 때 호반새라는 걸 알았다. 호반새의 특징이 나열되어 있었지만 정보는 기억에 남지 않았다. 그보다는 당시의 풍경과 감탄이 맘속 깊이 자리 잡았다. 다시 보고 싶은 맘에 매일 산을 올랐지만 만나지 못했다. 새가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애초에 참새, 까마귀, 까치만 보고 살아온 사람에겐 와닿지 않는다. 봄의 침묵이라는 책을 읽어도 혹은 제목만 들어도 아직 비둘기나 다른 새소리도 들린다고 쉽게 넘기고 만다. 애초에 새소리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겪어보지 못한 일을 상상하고 이해하기란 어렵다. 내가 처음 시골로 내려가 새소리에 눈을 뜨고 놀란 이유였다. 새는 생각보다 몹시 소란스럽고 다양했다. 도시에서는 인식하지 못했던 새들이 마당이나 처마로 날아들었다. 딱히 새를 공부해야겠다고 마음잡은 건 아닌데 보다 보니 알게 되었다. 울음소리만으로 새를 맞추는 박사를 도인으로 여겼는데, 내가 그 행동을 하고 있었다. 뿌듯한 맘에 박새야, 딱새야 불렀다. 이름을 부르니 친근감이 들었다. 인기척을 느낀 새는 멀리 날아갔다. 시골에 내려와 새소리에 깨는 아침이 익숙해졌다. 겨울이면 기러기가 북풍을 가로질러 온다. 새벽 다섯 시, 해가 뜨기 전 산을 넘어왔다. 꺼억꺼억 특유의 울음이 마당과 처마를 지나 기찻길 너머로 나아갔다. 입춘이면 제비가 처마 아래 둥지를 틀었다. 여름 초입에서 뻐꾸기가 울고, 가을 감이 뭉그러질 무렵 물까치가 날아와 감을 땄다. 감이 익기를 기다리는 사이 여러 새가 쪼고 가서 우리는 새와 경쟁해야 했다. 참새나 딱새 같은 작은 새들은 낡은 지붕 틈새로 들어가 밤을 보내고 아침이 밝기 전 차례로 나섰다.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달력을 보지 않아도 적합한 순간에 새들이 나타났다. 그에 비해 도시는 몹시 단조롭고 조용하다. 벨소리나 사람들의 인기척 외에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지구에서 우주공간으로 내몰린 적막과 비슷할까라고 자주 생각한다. 시골은 온갖 동식물로 매일 소란하다.


식량을 구매하기 위해선 자전거로 강둑과 들판을 지나야 했다. 길은 강변에서 땅으로 다시 강 위로 이어졌다. 나는 달릴 때마다 새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전거를 타고 보는 풍경은 새의 감각에 비해 투박했다. 자주 고개를 들었고 전설로만 여기던 황조롱이와 마주했다. 나는 평생 매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다. 그건 고전 소설이나 영화에나 등장하는 환상이었다. 신기한 맘에 연거푸 고개를 들었다. 마주 달려오던 자전거나 뒷사람은 불안했겠지만 나는 당장 머리 위의 새가, 선명한 깃털의 모양이 아쉬웠다. 황조롱이는 나와 같은 방향으로 5분 남짓 날았다. 새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빠르고 선명했다. 황조롱이는 매일 오후 무렵 그곳에 나타났다. 까마귀와 경쟁하듯 날거나 낡은 전봇대 위에 홀로 서 있었다. 어떤 날은 머리에 닿을 듯 바싹 다가와서 부딪히지 않게 고개를 푹 숙여야 했다. 자전거는 사계절 내내 돌아갔다. 봄에는 황로가 파릇한 논 위를 거닐었다. 여름에는 백로가 초록 벼 사이에서 고개를 길게 빼들었다. 가을에는 오리가 남은 곡식을 쪼고, 겨울에는 가마우지와 고니가 마을로 찾아왔다. 강물은 매 계절마다 빛과 색을 달리했다. 강에는 수달가족이 나타나 경계하듯 우리를 쫓아왔다. 어릴 적 도감에서나 보던 생물이 눈앞에 등장했다. 처음 제주도에서 목격한 저어새와 휘파람새가 떠올랐다. 아직 보지 못한 새가 더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싶었다. 이대로 세계여행도 가능할 것 같았다. 박물관도 도서관도 없는 촌이었지만 매일 즐거웠다. 자전거를 타느라 온몸이 까맣게 탔지만 개의치 않았다. 연일 새를 보느라 고개가 꺾일 지경이었다.


어떤 이유로 밭에서 캠핑을 시작했다. 밭을 경계로 아래는 이웃집의 전깃불이, 위로는 문명이 닿지 않은 산이 존재했다. 시골주택에 지내며 이미 많은 새를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텐트 밖은 난장판이었다. 텐트 속에서 새벽시장에 가는 꿈을 꿨다. 시장 바닥은 온갖 사람의 목소리로 빈틈이 없었다. 웅성거림은 시장 저 끄트머리에서 여기까지 이어졌다. 소란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떴을 때 아직 꿈속이라 생각했다. 한참이 지나 이게 새소리인지 물었다. 마치 온갖 중년 남성이 산을 둘러싸고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정신이 들어서야 닭소리였음을 알았다. 시장바닥처럼 서로 소리를 질러서 어떤 새가 우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다들 제 목소리를 들으라고 소리치는 게 꽉 찬 카페 안 같았다. 나는 귀를 막았다가 풀었다. 새소리에 귀가 먹먹했다. 완전히 해가 밝은 후의 산은 고요했다. 간혹 쏙독새, 물까치, 장끼 울음이 들릴 뿐 모두 출근한 뒤의 산은 적막했다. 뜨거운 한낮, 쑥을 캐다 고개를 들었다. 매가 산맥을 넘어 지척까지 날아왔다. 삐유, 하는 특유의 울음을 뿜으며 머리 위를 몇 차례 빙글빙글 돌다 나무 꼭대기에 앉았다. 해는 매의 머리 위를 지나 풀숲 아래로 떨어졌다. 저녁이면 개구리가, 밤이면 개가 짖었다. 저녁 9시가 되었구나 생각하며 잠들 찰나 끼익- 소리가 들렸다. 칼로 쇠를 긁는 듯한 높고 신경질적인 소리였다. 소리는 어렴풋한 바람처럼 간간이 이어졌다. 삐-익- 끼-익- 소리에 한참 신경을 곤두세우다 호랑지빠귀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귀신새는 캄캄한 산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대화를 나눴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잠들었다. 낮에 우는 새가 있듯 밤에 우는 새가 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도시에서 나의 방은 북쪽에 있다. 특정 물건을 보호하기 위해 햇볕이 적은 방을 택했기 때문에 창도 작다. 창문을 열고 뒷베란다 문까지 열어야 바깥과 통한다. 창밖에는 다른 건물의 창이 닿을 듯 붙어 있다. 좁은 틈새로 비둘기가 날아든다. 그 소리라도 듣기 위해 창을 연다. 인지하기 전에는 몰랐던 고독이 이제 와서야 몰려온다. 그때마다 새가 되는 상상을 한다. 먼발치에서도 들리도록 목청 크게 우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늘이 밝기 전 창공으로 뻗는 날개를, 지저귀는 입을, 가느다란 두 다리를 그린다. 제 목소리를 줄여가는 삶 속에서 쾌청한 울음을 본다. 긴 침묵 속에서 새를 듣는다. 구구- 구구- 유해생물로 지정되었다는 비둘기의 울음은 몹시 다정하다. 도시에는 유해생물로 지정된 동물이 많다. 정작 그들에게 위협이 되는 유해물질이 더 많음에도 기준이라는 법칙으로 존엄성을 위협받는다. 기준과 법마저 임의적으로 변하지만 타당한 규칙으로 자리 잡는다. 상대의 입장에서 사회는 역시 이상하고 불합리하다. 나는 태고의 공간에서 도시까지 내려와 적응하는 새들을 보면 먼 곳에서 적응한 유학생을 만난 듯 놀랍다. 자신들은 대화를 나눌 뿐이겠지만 그 소리를 들을 때 가슴이 트인다. 나는 매일 새벽 일어난다. 사람이 깨어나는 시간보다 조금 일찍 새가 출근하는 소리를 듣는다. 나도 새가 되어 사회로 나선다. 어찌 되었건 사람이 집으로 되돌아오듯 매일 무사히 창가로 돌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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