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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 Aug 08. 2023

매일 고양이의 날

동물병원을 지나던 중 “고양이 데려가실 분”이라는 글을 봤다. 예전에는 마당이 있는 주택에 살아서 자주 고양이를 봤지만 한 번도 제대로 키워본 적은 없었다. 우리 집은 과거부터 개를 키워왔고, 고양이는 부모님 세대의 관습상 두려운 동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길에서 어미에게 버려진 고양이를 데려온 적은 있지만 그마저도 이미 상태가 나빠 병원에 데려가도 금방 숨을 거두었다. 여러 번 그런 일을 겪다 보니 쉽사리 생명을 데려오지 못했다. 그렇지만 어쩐지 유리창 너머의 고양이들이 신경 쓰였다.    

 

병원에서 말하길 본래 사무실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돌보기 어려워 입양을 부탁했다고 한다. 오른편에는 암컷 턱시도 세 마리, 왼 편에는 수컷 점박이 네 마리가 있었다. 그중 한 마리가 유독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달려왔다. 유리문에 붙어서 작은 발로 긁어대고 울었다. 7년 전 폴과의 첫 만남이 생각났다. 폴도 지인의 꽃농장 한편에서 형제들 중 가장 먼저 내게 달려왔다. 허스키였던 폴도 털이 흑백이었다. 가벼운 발놀림이나 짓궂은 얼굴이 마음에 들어 입양했다. 이번에도 가장 먼저 내게 달려온 아이를 입양했다.   

  

병원에서는 파양이나 유기를 대비해서 기본 예방주사와 책임 비용을 미리 받았다. 사료와 이동장을 구매하고 몇 주 뒤 상태확인과 주사를 위해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이동장 속을 들여다봤다. 집사에겐 평생의 일부지만 이 친구에겐 평생이 될 사람이었다. 고양이는 본래 경계심이 강해서 낯선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들었는데, 이 친구는 곧바로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오히려 폴은 집에 온 후로 일주일 동안 밤중에 하울링을 했던 걸 생각하면, 둘의 성격이 종을 넘어 바뀐 것 같았다. 이 친구는 금방 화장실에 적응하고, 폴의 머리보다 작은 주제에 발톱으로 코를 긁었다. 묘한 박력과 용기, 뻔뻔한 행동이 눈길을 끌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고양이만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2년 정도 내 눈에는 고양이만 보였다.     


이 친구는 자주 잠들었다. 어리기 때문일까 고양이이기 때문일까. 나는 자주 그 옆에 엎드렸다. 나는 고양이의 이상한 움직임과 예상하기 어려운 몸짓을 보고 싶었다. 어서 자라서 덜 자고 나와 놀아주길 바랐다. 관심을 얻으려 레오, 리오, 루오 등등 고양이의 언어와 비슷한 소리를 냈다. 그러다 라오라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흰 얼굴에 반듯하게 가르마진 무늬가 이쪽을 향했다. Y는 그 문양이 나비 같다고 표현했다. 머리에 나비를 얹은 듯한 고양이, 그렇게 라오는 라오가 되었다. 라오는 우유를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사람이 먹는 바닐라맛 아이스크림에 반응했다. 나는 라오를 피해 고개를 돌렸다. 라오는 내가 피하는 곳마다 따라와 아이스크림에 코를 박았다. 나는 다시 피했고, 라오는 짜증 내듯 울었다. 그렇게 쫓고 쫓기는 사이 화가 났는지 라오가 내 앞에 오줌을 싸고 가버렸다. 놀랍도록 분명한 의사표현이었다. 지금도 까다로운 식성으로 츄르와 사료 외에는 손수제작한 간식도 입에 대지 않지만 생크림 냄새가 나면 꼭 한 번은 핥고 지나갔다.

     

라오는 나의 소원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우아한 몸놀림과 달리 우악스러운 면이 있었다. 밤이 되면 놀아달라고 울어댔고 낮에는 방충망을 등반했다. 어쩌다 사놓은 가다랑어포를 물어뜯어 사방에 뿌려놓고 방충망을 열어 마당으로 빠져나가기도 했다. 우당탕탕하는 사이 라오의 몸집은 내 상반신만큼 커졌다. 가슴팍에 눕거나 뛸 때면 갈비뼈가 빠듯할 정도로 묵직해졌다. 혹시라도 밟을까 봐 매일 바닥을 보고 다녔는데, 이제는 엉덩이를 팡팡 두드리고 서로 물고 밀어낼 정도로 비등해졌다. 강인하고 당당한 모습에 안심됐다. 라오가 나를 물고 생채기를 낼 때마다 아프지만 기분이 좋았다. 대등하게 맞서오며 짜증 내는 모습이 기뻐 괜히 시비도 걸었다. 그때마다 라오는 우아한 꼬리를 휘두르며 화냈다.      


폴은 책상 위로 뛰어오르거나 바닥으로 기어들어가지 않지만, 라오는 옷장, 장식장, 심할 때는 문 위까지 뛰어올랐다. 유려한 포물선과 달리 오르지 못하고 툭 떨어지면 놀라서 달려갔는데, 가뿐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라오가 한 살을 먹기까지 하루도 심장이 남아나질 않았다. 심지어 불러도 나타나질 않아서 반나절 동안 찾다 옷장 속이나 침대 밑에서 발견할 때도 많았다. “라오!”하고 부르면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해서 맥이 탁 풀렸다. 잠든 라오의 발바닥을 만지며 이토록 부드러운 생명체가 어떻게 그런 말썽을 부릴 수 있는지 질문했다. 라오는 귀찮다는 듯 발을 탁탁 털곤 다시 잠들었다.

     

귀엽기만한 반려는 없다. 나는 자주 라오를 웬수라고 불렀다. 잠든 얼굴을 밟고 창가로 뛰어오르거나, 양장본 책을 머리맡에 떨어뜨리곤 사라지거나, 새벽부터 일어나라고 발을 물어댔기 때문이다. 한 번 안으려 들면 뒷발로 힘껏 쳐내고, 발톱이라도 다듬으려 하면 갓 잡은 고등어처럼 튀어 올랐다. 내 손의 쫀드기를 들고 도망가거나 유독 내 앞에서만 토를 하거나 내 이불에만 오줌을 싸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라오가 내게만 심하게 군다고 투덜대면 Y가 무슨 의도가 있겠냐며 무시했다. 라오는 Y의 무릎에 얌전히 누워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으로 Y를 올려다봤다. 라오는 어째서인지 Y를 따랐다. 곤히 잠들었다가도 Y가 일어나면 순식간에 쫓아갔다. 반면 화장실 정돈과 이빨 닦이기, 발톱 깎이 등 성가신 업무를 맡은 나는 라오의 적이나 다름없었다. 우리의 다툼은 필연이었다.


라오는 다른 가정이나 길에서 본 고양이들 중에서도 큰 편이었다. 반면 얼굴은 작았다. 놀러 온 친구들이 라오를 부르자 침대 밑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친구들은 생각보다 작다고 말하다가, 길게 이어져 나오는 몸을 보고 놀라움을 표했다. 그래도 집에서만 살던 라오라 싸움은 못할 줄 알았는데, 시골집에서 사는 동안 마당을 오가던 턱시도가 창가로 다가왔을 때 하루 종일 마주 보며 울었다. 턱시도도 창문 뒤에서 라오를 빤히 보며 울었다. 턱시도는 그 집의 터줏대감으로 우리보다 먼저 살고 있었다. 우리도 예의를 표하기 위해 밥을 챙겨줬는데, 아침이 점심, 저녁으로 늘어났다. 본인의 부인이나 새끼들도 데려와 마당의 닭들과 햇볕을 쬐고 누워 잠들었다. 서로 가까워진 뒤였다. 여름 열대야에 눈을 뜨면 창가의 초록 안광과 마주쳤다. 특유의 묵직하고 검은 그림자는 거실부터 방, 부엌까지 다가왔다. 턱시도가 자주 찾아오다 보니 라오와의 싸움도 아침부터 새벽까지 이어졌다. 새벽 창가에 바짝 붙어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을 잠결에 목격하곤 했다. 그래도 직접 만날 일은 없었는데, 어느 날 턱시도가 현관으로 들어오고 라오가 발톱을 휘둘러 쫓아냈지만, 다음날 턱시도는 다시 창가에 나타나 제 털을 혀로 다듬었다. 잘 모르지만 라오는 조금 약이 오르지 않았을까. 아무튼 라오는 다시 턱시도와 유리를 사이에 두고 등을 맞댄 채 싸웠다.     


지금은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시골에 비해 잠든 시간이 길어졌다. 건너 지붕에 비둘기라도 오면 라오를 안아 창가로 달려갔다. 라오는 귀찮은 듯 버둥대다 비둘기에게 집중한다. 도도한 라오는 오늘도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옷장 위에서 꼬리를 늘어뜨리고 잠들었다. 앞발은 벽을 짚고, 평소의 예민한 눈초리가 아닌 부드러운 눈빛으로 아래를 바라본다. 발톱을 다듬고, 털을 매만지다, 밥그릇 앞에 앉아 울지도 않고 기다린다. 절대 재촉하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는다. 품위와 격식 있는 모습이 옛 양반을 떠오르게 한다.    

  

어느덧 7살이 넘은 라오는 양반의 일상처럼 매일 같은 순서로 방을 확인하고, 코를 내밀어 집안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작은 얼굴을 들고 줄무늬 꼬리를 살랑이며 이곳저곳을 확인한다. 숨겨둔 검은 옷에 몸을 파묻고 다시 잠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사람들을 마중하러 나온다. 고양이가 두렵다던 부모님은 문을 열자마자 내가 아닌 라오를 찾는다. 마지못한 듯 라오는 천천히 걸어와 인사한다. 나도 문을 열면 “라오”하고 부른다. 라오는 이미 앞사람을 반겼는지 나오지 않는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잠든 라오를 만진다. 라오는 귀를 세우고 눈을 뜬다. 함부로 만지지 말라는 듯 손을 물다가 핥는다. 오늘이 세계고양이의 날이라고 속삭여도 라오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내년에도 수년 뒤에도 반겨올 라오를 상상하며 끌어안았다. 묵직한 열기가 몸에 스며온다. 더위로 예민해진 라오는 뒷발을 뻗어 가슴팍을 밀어냈다. 벌써 7년이 흘렀지만 라오는 매일 새롭다. 라오에게도 그럴까. 나는 이 웬수와 더 오래 다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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