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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 May 05. 2023

11년의 산책, 폴

반려동물이나 식물과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상처가 생긴다. 내 곁에는 반려견이 있었다. 폴은 광활한 시베리아를 누비던 종이었다. 손바닥에 올라갈 정도로 작았던 개가 커지고 털이 북슬해졌다. 나는 굳이 빽빽한 털 사이를 헤집어 분홍 속살을 보곤 했는데 희고 검은 털 아래에 나와 같은 속살이 있는 게 무척 가깝게 느껴져서였다. 폴이 4개월이 되기 전까지 마당에서만 놀았다. 간혹 바깥에 볼일이 있을 땐 5kg이 넘는 폴을 품에 안고 나갔다. 여름이라 품이 다 젖었지만 내려놓지 않았다. 폴은 답답한 듯 내 팔을 밀어내며 버둥댔다. 지금 생각하면 폴에게 고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어려서 그게 폴을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땀에 젖어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 집에 돌아오면 팔에 붉은 상처가 길게 그어져 있었다. 따끔하다면서도 품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어느덧 폴은 두 발로 서면 내 가슴팍에 발이 닿을 정도로 정도로 자랐다. 그때 나는 열세 살이었다. 폴에게 하네스를 채우고 밖으로 나가던 날, 뛰쳐나가는 허스키의 박력에 밀려 문턱에서 넘어졌다. 턱을 다친 건 처음이었다. 억울한 맘에 울컥해서 폴을 나무랐지만 폴은 나갈 생각 밖에 없었다. 반창고를 붙이고 다시 문 앞에 섰다. 폴을 키우기 시작하며 읽었던 반려견 훈련책을 떠올리며 줄을 꽉 쥐었다. 교육하려 했지만 산책은 도무지 조절할 수 없었다. 첫 산책을 기점으로 우리의 관계가 변했다. 우리는 매일 산책을 나가야 했고, 어렸던 나는 폴의 힘이 버거웠다. 마냥 귀엽게 느껴지던 옛날과 달리 귀찮거나 짜증나는 경우도 생겼다. 나는 조금이라도 덜 힘들기 위해 줄을 당겼고, 폴은 더 달리기 위해 줄을 당겼다. 그렇게 산책 동안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폴이 열 살이 되도록 전쟁 같은 산책이 벌어졌다. 비가 내리는 날에도 무더위에도 살을 베는 겨울에도 달렸다. 우리는 5년이 넘도록 계절을 가로질렀다. 그동안 나는 허스키의 전속력을 따라 가느라 아스팔트에 무릎이 갈리고, 대형 트럭에 부딪히며, 놓쳐버린 목줄을 잡으러 한 밤중에 산속을 달렸다. 그때마다 연고와 반창고를 사들였더니 구급상자가 불룩해졌다. 몇몇 상처는 하얗게 굳어 지금까지 남아있다. 일부 사람들은 매일 같은 시간 벌어지는 퍼포먼스를 맞이하듯 우리가 지나갈 때 인사나 응원을 건넸다. 사춘기였던 나는 그 시선이 부끄러워서 어두운 골목으로 코스를 바꿨다.


내가 17살이 된 무렵, 폴의 두 발이 내 어깨에 닿았다. 나란히 서면 서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어 기뻤다. 나의 신체도 폴의 힘을 감당할 정도로 단련됐다. 내가 폴을 향해 뛰기 시작하자 팽팽하던 줄이 느슨해졌다. 폴을 위한 산책을, 드디어 폴에게 맞춰 할 수 있었다. 산책할 때마다 신경전을 벌이느라 매일 눈이 붉게 상기되는 일도 없어졌다. 그렇게 폴과 나의 속도가 맞다는 사실에 들떠 몹시도 뛰어다녔다. 한밤 중 골목을 달리면 발소리가 울렸다. 탁 탁 탁 박자에 맞춰 폴과 나의 발이 움직였다. 폴은 내 앞이 아니라 옆에 있었고 가끔 고개를 돌리면 폴이 나를 올려봤다. 그제야 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듯한 기분이 들어 기뻤다. 비록 광활한 대지는 아니지만 인적이 드물어진 한밤의 골목과 산은 우리의 공간이었다. 봄에는 아카시아 꽃이, 여름에는 초파일 연등이 산기슭을 따라 이어졌다. 가끔은 매미소리가 머리맡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지금도 가끔 그때 들은 소리가 떠오른다. 가을이면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길을 걸었고, 겨울에는 환하게 내려쬐는 별을 따라 달렸다. 밤을 달려도 무섭지 않은 까닭이었다.


대부분의 삶이 그렇듯, 우리의 속도가 맞아떨어진 순간은 긴 세월에 비하면 몹시도 짧았다. 폴은 점점 나이가 들고 있었고 나는 점점 자라고 있었다. 내가 23살이 되었을 때 폴은 조금씩 느려졌다. 나는 그 사실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외면했다. 그저 오늘은 폴의 컨디션이 좀 나빴을 거라 생각하고 속도를 낮춰 천천히 달렸다. 하루 3시간을 내리 달리던 걸 2시간으로, 1시간으로 점차 줄였다. 아무리 산책해도 부족하다고 문을 쾅쾅 치던 폴은 어느새 먼저 집으로 돌아섰다.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던 폴은 10분 정도 달리다 멈췄다. 언제부턴가 걷는 시간이 달리는 시간보다 많아졌다. 나는 폴의 뒤를 따르며 하늘대는 꼬리를, 하얀 부분이 많아진 등과 얼굴을 마주했다. 어쩌면 그 시기가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처음 엄마의 지인이 지내는 시골로 허스키를 마중 나가던 때부터 폴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던 때, 부레옥잠을 물고 도망치던 폴과 다퉜던 때, 산책 중 내게 더 빨리 뛰라고 폴이 화를 내서 따라가다가 아스팔트에 넘어져 울다가 싸우던 때, 그러다 화해해서 집에 도착해 같이 상처를 치료하고 밥을 먹던 때 등이 산발적으로 떠올랐다. 천천히 걸으며 폴의 나이를 헤아렸다. 남은 날을 원치 않아도 셈하고 있었다.


내 나이 24살, 폴 나이 11살이 되었다. 여느 날처럼 폴을 품에 안고 하네스를 채웠다. 산책 전이면 펄쩍 뛰어올라서 꽉 움켜 안아야 했는데, 폴이 얌전했다. 나는 쪼그려 앉아 폴을 마주 봤다. 하얗게 변한 눈가에 내가 비쳤다. 괜히 볼도 쓰다듬고 코도 만져봤다. 천방지축 뛰어다니던 말썽쟁이가 어디 갔나 싶어졌다. 쌀쌀한 가을이었다. 더위가 꺾이고 가뿐해진 몸으로 달렸다. 앞서가던 폴의 발이 느려지더니 뒤쳐졌다. 나는 쪼그려 앉아 폴이 곁에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내가 폴을 기다려본 적이 있던가, 어둑한 가로등 아래 앉아 기억을 되짚었다. 폴의 노화는 갑작스러웠다. 분명 매일 봤는데도 전혀 달랐다. 서로 악다구니를 벌이던 것도 잊을 듯 느긋한 산책이 이어졌다. 폴은 내 옆에서 뒤로, 물살에 밀리듯 떠내려갔다. 앞서 걷던 나는 멀찍이 서서 이쪽까지 오길 바랐지만 폴은 집으로 돌아가자는 듯 왔던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찌륵찌륵 귀뚜라미 소리가 이어졌다. 집에 도착했을 땐 추위 탓인지 눈과 코가 시큰했다.


한낮, 폴이 한창 뛰어다닐 시간에 정원이 조용했다. 창을 열자 모과나무 아래 길게 엎드린 폴이 보였다. 폴은 잠깐 일어나 몸을 털고 옆으로 눕다가 다시 엎드리며 하루를 보냈다. 나도 달리는 시간보다 책 읽는 시간이 길어졌다. 가만히 앉아 창과 책을 번갈아 봤다. 팔랑팔랑 주변을 날아다니던 나비가 폴 머리에 내려앉았다. 짹짹 참새가 모과 위를 맴돌다 나갔다. 바람이 고요한 마당을 쓸며 지나갔다. 불쾌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폴의 귀와 눈을 보다가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그제야 폴이 눈을 떴다. 내가 볼을 비비고 코를 만지며 숨소리를 확인하는 동안 폴은 내 볼을 핥았다. 그 후로도 마당은 바람 지나는 소리 외엔 나지 않았다. 폴과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싸우던 동네 고양이가 찾아와도 폴은 짖지 않았다. 이상하게 밥이 빨리 줄어든다고 생각했는데 고양이와 나눠먹고 있었다. 그때부터 가끔 폴의 집에선 새나 고양이가 나왔다. 등교 전 인사하러 가면 폴의 품 속에 고양이가 둥글게 들어있었다. 장난스레 성격이 많이 둥글어졌다며 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가의 흰털을 어루만지는 동안 폴이 나를 마주 봤다. 밝아진 털빛 때문인가 유독 눈이 깊어 보였다. 폴은 사는 동안 많은 걸 품어가고 있었다.


폴하면 어릴 적 모습보다 떠나기 직전의 눈이 떠오른다. 같이 누워 지내던 어린 시절보다 골목에서 서로 싸우던 때가 기억난다. 내가 아파보니 폴의 무릎에 생긴 생채기가 보였다. 내가 소독할 때 눈을 질끈 감듯 폴도 눈을 질끈 감곤 했다. 떠나기 전 폴은 걷지 못했다. 산책 중에 생겼던 생채기나 흉터를 살살 매만져도 눈만 깜빡였다. 폴을 떠올리면 살갗이 벌어지는 느낌이 든다. 아프지만 그 흉터가 마음에 든다. 이따금 무릎의 상처를 만져본다. 이후로 사람이나 생물을 볼 때 흠집에 눈이 간다. 그곳에는 그만큼의 사연이 맺혀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내 편견이지만 상처가 많은 것은 그만큼 외부를 내부로 받아들이려 시도했던 자국이 아닐까, 그 치열함이 맘에 든다. 무엇이든 접촉이란 행위는 서로에게 흔적을 남기는 법이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닭들도 혈기가 넘친다. 서로 치고박는 걸 말리거나 함께 생활하다 보면 손과 팔에 상처가 생긴다. 연고를 바르던 나는 소독제를 챙겨 닭들에게로 간다. 벼슬에 맺힌 핏방울이 사람과 같은 붉은색이다. 소독제가 따끔한지 삐육 소리도 낸다. 이겨내라고 고기수염을 살살 만져주면 고개를 끄덕인다. 니들이 뭘 아니, 라고 말해보지만 내가 닭인지 쟤네가 사람인지, 너인지 나인지 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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